[야구공작소 17시즌 리뷰] 한화 이글스 – 또다시 새 출발선에서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시즌 성적 – 61승 81패 2무 (8위)

[야구공작소 박기태] 3년 계약 감독의 3년 차 시즌. KBO리그에서 이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감독이 반드시 성적을 내야만 하는 해라는 것, 그리고 결과에 따라 중도하차까지 가능하다는 것. 김성근 감독의 삶에선 안타깝게도 두 번째 의미가 더 두드러질 때가 많았다.

이번에도 바로 그 익숙한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한화 그룹 고위 관계자는 2년간 대전을 둘러싸고 펼쳐진 갑론을박을 좌시하지 않았다. 박종훈이라는 ‘빅 네임’의 등장이 뜻하는 것은 명확했다. ‘탈(脫) 김성근 선언’이었다. 그러나 그 실현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두 명의 선장이 키를 잡는 어설픈 모양새로 이루어졌다.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두 사람은 사사건건 부딪치며 치열하게 파열음을 냈다. 마찰을 숨길 생각도 없었다. 언론을 통해 운동장 안팎에서 두 사람은 고성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모두가 예상한 대로 파국이 찾아왔다. 부끄러운 시간이었다.

마지막 때는 기어코 찾아왔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김성근 감독의 실각 이후, 한화는 조용히 시즌을 마무리하고자 힘썼다. 그러나 그 과정도 완만하지 않았다. 감독 대행에게 잔여 시즌을 맡기기로 했지만, 그 결정은 감독 해임 3주가 지나서야 나왔다. 경기장 안에서는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 끊이지 않았다. 가라앉은 분위기와 구멍 난 전력으로는 성적을 낼 수 없었다. 8월 13승 10패로 희망을 보였지만, 그에 앞선 7월 이미 5승 15패로 대세가 기울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우여곡절 속에서 이상군 대행 체제는 조용히 혼란을 수습해나갔다. 로스터를 가득 메웠던 베테랑 선수들의 자리에 점차 젊은 선수들이 들어섰다. 정확한 보직이 없던 투수들의 출장 일지도 점점 일정한 간격을 갖춰갔다. 성적이 나지 않는 것은 똑같지만, 팀은 좀 더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야구보다 정치적 의미가 다분했던 시즌. 돈을 있는대로 쏟아 부었지만 손에 쥔 성과는 희미했다. 그러나 새 출발을 희망하는 눈으로 볼 때 건진 것이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경기장 안의 내용보다는 밖의 소음으로 기억될 만한, KBO리그 역사에서 가장 기이한 시즌 중 하나로 남을 법한 한 해였다.

한화 월별 성적 & 기록

 

최고의 선수 – 윌린 로사리오

0.339/0.414/0.661 37홈런 111타점 5.07 WAR

2016시즌이 끝났을 때, KBO리그에 완벽하게 적응하며 호성적을 낸 로사리오의 한화 잔류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그러나 한화는 통 크게 200만 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몸값을 지급하며 구단 최고의 타자가 된 그를 붙잡았다. 그리고 로사리오는 한화 이글스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타자 시즌을 만들어냈다.

과다지출이라는 비판은 가능할지언정, 올해 로사리오의 성적을 폄훼할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됐다. 로사리오는 KBO리그 투수들의 스타일에 적응하면서 지난해 약점으로 꼽혔던 볼넷/삼진 비율을 완벽하게 개선했다. 로사리오의 61삼진은 OPS 0.850이 넘는 타자(규정타석) 중 김선빈(40개), 박민우(51개)에 이어 두 번째로 적은 것이다. 다른 두 명이 전형적인 교타자지만 로사리오는 전형적인 파워히터라는 점에서 이 기록은 더욱 놀랍게 다가온다.

유일한 아쉬움은 풀타임 출장에 실패했다는 것. 그런데도 장종훈(1991-1992) 이후 처음이자 한화 역대 2번째로 2년 연속 30홈런 100타점 시즌 달성에 성공했다. 부상으로 중심 전력이 줄줄이 이탈하는 가운데 이뤄낸 기록이기에 더욱 값지게 다가온다.

아직 로사리오의 거취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KBO리그를 지배한 올 시즌 성적을 인정받아 해외 이적이 유력한 것으로 점쳐진다. 역사에 남을 타자와 함께한 시즌이 정치적 의미로 얼룩진 시간이었다는 것, 그 점이 한화 팬들의 비극이었다.

로사리오는 올해 팬들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냉탕과 온탕 – 이성열, 배영수

프로 14년 차 이성열의 타격 폭발은 예상하기 쉽지 않았다. 타석 수가 적었지만, 부상 전까지 이성열은 리그를 초토화하고 있었다. 전반기 OPS 1.091은 리그 3위에 해당했다(200타석 이상). 이성열 위로는 최정, 최형우의 이름만이 있었다. 구장 효과, 앞뒤를 뒷받침하는 타자의 수준을 고려하면 이성열의 존재감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나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 햄스트링 파열 진단을 받았고, 6주가 지나 복귀한 뒤 밸런스를 완전히 잃어버렸다(후반기 타율 0.205, OPS 0.694). 커리어가 쌓일 대로 쌓인 타자인 만큼 ‘진화’는 쉽지 않겠지만, 전반기 삼진을 줄였던(K% 통산 30%, 전반기 20%) 모습을 내년에도 이어간다면 무시무시한 타자가 될 수도 있다.

배영수의 성적은 화려했던 그의 전성기를 떠올리기엔 한없이 초라하다. 하지만 그가 2년 만에 돌아와 펼친 투구는, 숱한 퀵후크 논란과 성적 부진 속에서 부상으로 또다시 야구장을 떠나있던 대투수가 간절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선, 숙연한 감정마저 빚어졌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뜻밖의 논란이 열정을 퇴색시키기도 했다. 그의 성적이나 국내외의 여러 사례를 되돌아보면 논란의 부정투구 행위는 일종의 습관에 가깝지, 큰 효과를 더하는 비열한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행위가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면 자제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으면 될 일이었다. 문자 그대로 ‘불필요한’ 일 때문에 오점이 남은 시즌이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내실 있는 시즌을 보낸 배영수. 다음 목표는 11계단이 필요한 선동열의 146승이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아쉬운 선수 – 부상자들, (특히) 외국인 선수

올해 한화 로스터에는 공백이 지나치게 많이, 지나치게 오래 있었다. 100경기 이상 출전한 야수는 5명뿐이다. 다른 팀의 경우 대부분 10명 수준이었다. 시즌 120경기 이상 체제가 갖춰진 1989년 이후, 이글스(빙그레 포함)에서 120경기 출장 선수가 없었던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너무 극단적이었기 때문에 내년에도 이 정도 수준의 악재가 닥치리라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당장 벌어진 결과는 눈 뜨고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정경운, 김태연, 강상원, 김원석, 이동훈 등 비교적 젊은 야수들이 더 많은 기회를 잡았으나, 이는 기존 주전(하주석, 송광민, 이성열, 이용규 등)이 부상을 당했기에 불가피하게 주어진 기회에 가까웠다. 냉정히 말해 최재훈을 제외하면 실력으로 기회를 낚아챈 선수는 없었다. 9월에는 오선진의 분전이 눈에 띄었으나 그는 신인 선수가 아니다(1989년생, 2008년 데뷔).

지난 3년간 타선의 중심축이 됐던 FA 3인조, 정근우-이용규-김태균의 이탈은 올해 극에 달했다. 정근우는 2011년(90경기) 이후 최소(105경기), 이용규는 2009년(50경기) 이후 최소(57경기), 김태균은 데뷔 시즌인 2001년(88경기) 이후 최소(94경기) 출장에 그쳤다. 세 선수의 합작 WAR은 5.52로 로사리오 한 명분(5.02)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이탈은 역시 외국인 투수 카를로스 비야누에바와 알렉시 오간도였다. 두 선수가 합작한 기록은 39경기 222이닝 4.05 ERA, WAR은 4.93. 타 구단 에이스 1명이 세운 기록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심지어 두 선수의 개별 WAR은 구원투수 정우람 1인에 미치지 못했다(정우람 2.87, 오간도 2.56, 비야누에바 2.37).

양 날개가 부러진 독수리. 오간도와 비야누에바의 공백 기간은 합쳐서150일에 달했다(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두 선수가 적은 연봉을 받는 선수라면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각각 150만 달러, 180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거물치고는 지나치게 모자란 성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닝 소화량이 적다는 것이 최악이었다. 1선발과 2선발이 100이닝을 겨우 넘기자 수수깡처럼 취약했던 선발진은 태산 같은 무게를 떠안아야 했다. 결과적으로 한화는 베테랑 윤규진과 안영명을 다시 선발로 기용하는 등, 시즌 중에 선발 오디션을 치르며 가뜩이나 어려웠던 시즌을 더욱 어렵게 보내게 됐다.

주요 부상자 부상으로 인한 엔트리 말소 기간 및 성적

 

결정적 순간 – 2017년 5월 23일

5월 23일, 한화의 김성근 시대가 종막을 맞이했다. 막말 논란에 권고사직이냐 자진사퇴냐는 형식상의 논란까지 일어나는 등, 원만한 점은 하나도 찾을 수 없는 결말이었다.

오프닝데이에는 또 다른 얼굴이 등장하게 됐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우스꽝스러웠던 과정을 떠나서, 이날 이후 한화는 고위 관계자들의 뜻대로 십분 다른 운영을 시작했다. 비록 결과가 초라한 것은 지난 10년과 다르지 않았으나, 잇따른 주전 선수들의 부상 속에서 받아든 성적표임에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은 작은 희망을 품게 한다.

김성근 감독 재임 기간 한화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즉시 전력감, 베테랑 선수를 영입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이 중 대부분이 플러스 전력이 아닌 마이너스 전력이 됐고, 오히려 노수광, 오준혁 등 유출된 유망주가 더 아픈 손가락으로 여겨졌다. 올 시즌에는 임기영(송은범 FA 보상선수)이 KIA에서 선발로 자리매김하며 최악의 사례가 됐다.

2016년 말미 박종훈 단장이 새롭게 부임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이즈음부터 한화는 외부전력 수혈보다는 집안 정리정돈에 힘을 쏟았다. 주목할만한 움직임은 트레이드로 20대 후반의 즉시 전력감 포수(최재훈)를 데려온 것 정도였다.

그리고 5월 23일, 김성근 감독의 사퇴가 공식 발표되며 이상군 감독 대행 체제가 시작됐다. 이때부터 한화는 최대한 어린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부여했다(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이것이 주전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한 고육지책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달라진 점은 야수 기용보다는 투수 기용이었다. 이상군 감독 대행이 지휘를 맡은 이후, 한화 투수진의 기용에서는 지난 2년간 등장했던 ‘퀵후크’, ‘혹사’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비교적 상황에 맞는 기용도 다시 시작됐다.

앞선 2년간 한화에는 70경기 출장 선수가 3명 있었고(2015년 권혁 박정진, 2016년 박정진) 구원 등판 80이닝 이상이 7차례 있었다(2015년 권혁 박정진, 2016년 권혁 송창식 박정진 정우람 심수창). 장민재와 송창식처럼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100이닝 이상 소화한 기이한 시즌도 있었다. 필승조 권혁은 8회말 7점차로 앞선 상황에 등판했고, 심수창은 5일 연속으로 투구하기도 했다. 안영명은 일주일 동안 선발로 세 번 나서는 어처구니없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이상군 감독 대행 체제 이후, 마구잡이식 기용은 사라지고 ‘관리 야구’가 시작됐다.

이러한 관리 속에서 가장 두드러진 소득은 박정진의 부활이었다. 지난해 81이닝을 소화했던 정우람은 59이닝만 소화하며 예전의 압도적인 모습을 되찾았다. 더 놀라운 것은 박정진이다. 박정진은 6월 말부터 퓨처스리그에서 밸런스를 되찾은 뒤, 후반기 21이닝을 소화하며 철벽 불펜으로 부활했다. 말보다 숫자로 보는 것이 그 놀라움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

후반기 정우람 in KBO리그 구원투수(후반기 구원 20이닝 이상 44명 중)

  • ERA : 1.74 – 1위
  • K% : 39.1% – 1위
  • WHIP : 1.16 – 8위
  • 피안타율 : 0.218 – 7위
  • 피OPS : 0.624 – 8위

후반기 박정진 in KBO리그 구원투수(후반기 구원 20이닝 이상 44명 중)

  • ERA : 2.14 – 4위
  • K% : 28.2% – 5위
  • WHIP : 0.81 – 1위
  • 피안타율 : 0.147 – 1위
  • 피OPS : 0.454 – 1위

지친 불혹의 투수가 다시 일어서리라 그 누가 예상했을까. 박정진이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박정진의 사례는 비교적 정상적인 기용을 한다면, 가능성 있는 투수진이 앞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다. 이해할 수 없는 기용을 거쳐 2년 가까이 마운드를 떠났던 김민우의 복귀 역시 비슷한 메시지를 던진다. 10년 동안 한화 팬들은 헛된 희망만을 곱씹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흉작 속에서 씨앗까지 파먹던 지난 2년보다는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게 됐다.

 

마무리 – 새로운 시작, 그러나 갈 길이 멀다

온갖 비판을 떠안은 채 김성근 감독은 팀을 떠났다. 하지만 벌써 달라진 모습을 기대하기엔 이르다. 김성근 감독은 기본 체력조차 갖춰지지 않은 한화에 전력 질주를 지시하는 무리수를 뒀다. 분명 체질에 맞지 않는 근시안적인 선택이었고, 안 그래도 얕은 뿌리를 더 얕게 만드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한화가 두산처럼 기틀이 잡힌 강팀이었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김성근 감독은 SK 시절에도 비슷한 전략을 펼쳤으나 한국시리즈 우승 3회, 준우승 1회(시즌 중 경질된 2011년 제외)라는 대업을 이룩했다. 결국, 선수가 하는 것이 야구이기 때문에 잘하는 선수가 많았던 SK는 성적을 낸 것이고, 그렇지 않았던 한화는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이다.

한화의 선발, 불펜, 중심타선 등은 여전히 다른 5강 팀들의 그것에 비교해 엉성하기 짝이 없다. 단순히 ERA, OPS만 봐도 처음부터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는 로스터였다. 특히 젊은 기대주들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 하주석을 제외하면 20대 초중반의 젊은 타자가 두각을 드러낸 적이 없으며, 로사리오가 빠진 타선의 무게감은 크게 떨어진다. 선발진과 불펜진의 중심은 여전히 30대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용규를 제외한 외야진의 수비력은 여전히 ‘한화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뒤처진다.

KIA처럼 야수진의 절반을 외부에서 영입하지 않는 이상 단기간에 성적을 끌어올리는 일은 요원하다. 몇 년간 지출을 확대했던 한화이기에 외부 수혈에 신경을 쓸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어차피 장기적인 해결책은 육성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지난해 말부터 한화는 신인 육성에 신경 쓰는 티를 내고 있다. 물론 티를 내는 데만 그칠 수도 있겠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사실 이런 면모가 2년 전 부임했던 김성근 감독에게 기대했던 점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어찌 됐든, 긴 굴곡을 거쳐 한화는 다시 출발선에 섰다.

기록 출처 – STAT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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