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23시즌 리뷰] KT 위즈 –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채희 >

야구공작소는 연말을 맞이하여 KBO 팀별 23시즌 리뷰를 발행합니다. 12월 31일까지 매일 한 팀씩 업로드됩니다.

시즌 성적 – 79승 62패 3무 (최종 2위)

 

창단 9년 차, 올해 KT는 역대 가장 드라마틱한 시즌을 보냈다. 앞으로 올해 같은 시즌이 나올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들 정도. 5월 7일 KT는 10위까지 떨어졌다. 20경기 이상 치른 시점에서 10위까지 떨어진 건 2019년 5월 이후 4년 만이었다.

그리고 8월 19일, 105일 만에 2위로 등극했고 정규 시즌 끝까지 2위를 유지했다. 시즌 초반 부진을 털어내고 역대급 반등에 성공한 해였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어쩌면 올해 KT에 가장 어울리는 문구일 지도 모른다.

대망의 플레이오프, 준PO를 3대0으로 이기고 올라온 NC의 상승세에 2패를 내줬다. 하지만 이번에도 ‘중꺾마’의 힘이었을까. KT는 남은 3경기를 모두 이기며 KBO 역대 3번째 PO 역스윕을 해냈다. 한국시리즈는 비록 LG에 졌지만, 올 시즌 KT는 마법사들이 진짜 마법을 부린 듯한 해였다.

 

탄탄한 선발진과 무게감 있는 타선

올 시즌을 앞두고 대부분 전문가가 KT를 높은 순위권으로 예상했다. 단연 가장 큰 강점은 안정된 국내 최고 선발진이었다. 2022년 도합 37승을 일궈낸 고영표, 소형준, 엄상백의 국내 선발진은 10개 구단 중 가장 강력할 것이라고 예상됐다.

이에 더해 2022년 5승 4패 ERA 2.70의 좋은 성적을 거둔 벤자민과 패스트볼과 커터의 평가가 좋았던 슐서로 외인 투수 구성을 마쳤다. 2021년 탄탄한 5선발로의 우승 기억, KT는 소위 ‘선발 야구’의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조현우와 박시영의 부상 복귀가 늦어지고 김민수와 주권이 개막 전에 부상을 당하며 불펜은 다소 뎁스가 약하다는 평가였다.

타자 부문에선 입대한 심우준의 공백을 FA 김상수 영입으로 메꿨다. 작년 OPS 0.871을 기록한 알포드도 재계약했다. 게다가 작년 시즌 초에 합류하지 못했던 강백호가 스프링 캠프에 합류했다. 이에 KT는 시즌 초부터 알-강-박-장-황의 무게감 있는 타선을 만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39살 박경수 대체자의 부재와 2018년 KT 합류 이후 작년에 처음으로 wRC+가 99.6으로 100이 되지 않은 황재균의 노쇠화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걱정, 우려, 그보다 더 컸던 건 부상

올해 시즌 초 KT의 라인업이나 1군 엔트리를 한 번이라도 봤다면 느꼈을 것이다. 올 시즌 초반의 KT를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부상 병동’이다. 개막 전부터 5월까지 부상 명단에 올랐던 1군급 선수는 무려 10명이었다.

< 2023년 시즌 초 KT 부상자 명단 >

설상가상으로 외인 투수 2명도 방황했다. 벤자민이 5월까지 5승을 했지만, ERA 4.96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첫 선발 두 경기를 제외하고 불안한 경기 운영을 보여주던 외인 슐서는 5월 ERA 8.39를 기록하며 사실상 퇴출 수순을 밟고 있었다.

알포드, 강백호가 고군분투했지만 주축 타자들의 부상으로 타선에도 구멍이 났다. 시즌 전에 예상했던 무게감 있는 타선은 쉽게 완성되지 않았다. 처참해진 투수진과 일정하지 못했던 타선, 수많은 부상자 속출로 KT의 팀 지표는 바닥을 쳤다. 5월 7일 KT는 시즌 처음 10위로 떨어졌다. 이후 5월을 마치며 승패마진 -13을 기록했다. 절망적인 시즌 초였다.

 

KT 위즈 2023시즌 개막부터 5월까지 팀 지표

타율 0.255 6위

OPS 0.674 7위

ERA 4.87 10위

피OPS 0.752 10위

승률 0.355 10위

 

결국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간 KT

시즌 예상 순위 상위권, 그러나 5월까지 10위. 그럼에도 그들이 믿는 구석은 있었다. 바로 부상자들의 복귀였다. 아직 칼을 뽑지 않았다는 듯 KT는 부상자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5월 중순부터 부상자들이 하나둘씩 복귀하기 시작했다. 6월3일 황재균의 복귀를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주전 선수가 부상에서 복귀했다.

또 KT는 다른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노력했다. 5월 19일 롯데와의 트레이드로 박경수 대체를 위해 이호연을 데려왔다. 6월 9일 부진한 슐서를 방출하고 KT에서만 33승을 기록한 쿠에바스를 재영입했다.

비교적 약했던 불펜 쪽에서도 올해 상무에서 전역한 손동현이 5월까지 ERA 3.09를 기록하며 불펜 한자리를 채워줬다. 4월 다소 불안했던 박영현도 5월 이후 61.1이닝 64탈삼진 ERA 2.49를 기록하며 불펜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손동현-박영현-김재윤, KT의 승리 공식이었다.

6월부터 KT는 반등하기 시작했다. 소형준의 시즌 아웃과 “아리랑 송구”의 여파로 멘탈이 흔들린 강백호의 휴식이 있었지만, KT는 흔들리지 않았다. 외인 투수와 백업 선수들의 역할이 컸다.

대체 선수로 KBO리그에 복귀한 쿠에바스가 두 번째 선발 경기 6이닝 1실점을 시작으로 8월까지 12경기 75.1이닝 ERA 2.63으로 기대했던  모습을 보여줬다. 벤자민도 7월 이후 14경기 80이닝 ERA 2.59로 반등에 성공했다. 이유는 팔 각도 재수정이었다.

벤자민은 올해 패스트볼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팔 각도를 낮췄다. 3월 1일 NC와의 연습경기에서 최고 구속 150㎞를 기록할 정도로 구속이 상승했다. 하지만 제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공이 가운데로 몰려 안타를 맞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벤자민은 전력 분석팀과 협의해 팔 각도를 높여 지난해 투구폼을 되찾았다. 그렇게 BB/9가 7월 전 3.44에서 7월 이후 1.70으로 하락하며 작년 ‘칼날 제구’의 모습을 되찾았다.

백업 자원들의 활약도 크게 기여했다. 6월부터 8월까지 오윤석이 타율 0.359 OPS 0.989로 팀 타격 1위를 기록했다. 이호연과 안치영도 각각 타율 0.313, 0.290으로 좋은 컨디션을 보여줬다. 세 선수의 수비이닝도 1,200이닝을 돌파했다. 타격과 수비 부문에서 백업 선수들이 순간순간 팀의 빈자리를 메꿔주며 활약했다.

KT는 매달 엄청난 승률을 기록하며 8월 19일, 67일 만에 9위에서 2위까지 등반하는 기염을 토했다. 10연속 위닝시리즈, 그들의 기적을 대변하는 기록이었다. 그리고 KT는 순위를 지키며 2위로 마법 같은 시즌을 마무리했다. 최종 우승은 못했지만 팬들의 가슴에 진한 여운을 남기게 한 시즌이었다.

 

KT 위즈 6월부터 8월까지 팀 지표

6월 승률 0.652 1위 / 타율 0.282 1위 / ERA 3.94 4위

7월 승률 0.684 3위 / 타율 0.284 2위 / ERA 3.72 4위

8월 승률 0.826 1위 / 타율 0.265 7위 / ERA 3.06 1위

 

최고의 선수 – 윌리엄 쿠에바스

시즌 성적 : 18경기 12승 0패 114.1이닝 100탈삼진 ERA 2.60 승률 1.000 무패 승률왕

2021년 KT 통합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한 쿠에바스는 2022년 개막 후 단 2경기만 등판하고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구단은 회복 속도가 더딘 쿠에바스를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결국 5월 방출 통보가 이뤄졌다. 그리고 그는 떠나며 한 마디를 남겼다.

“마지막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만나자.”

쿠에바스는 그 약속을 지켰다. 2023년 6월 9일 KT는 슐서를 방출하고 쿠에바스를 재영입했다. 첫 경기에서 4.2이닝 3자책점으로 아직 완전하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국에서 경험이 있던 덕분인지 잘 적응해 나갔고 점점 제 컨디션을 찾기 시작했다. 이후 쿠에바스는 벤자민과 함께 KBO 최고 외인 원투펀치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올해 압도적인 투구에 가장 큰 이유는 바뀐 투구 자세였다. KBO 리그 합류 전 마이너리그에서 하체 이동 관련해서 많이 배웠으며 덕분에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강한 구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쿠에바스는 비결을 얘기했다. 100구를 넘겨도 150㎞의 빠른 공을 던지는 건 좋은 중심 이동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정민태 위원은 쿠에바스를 칭찬했다. 경기 내내 구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이닝을 거듭해도 타자들이 쉽게 공략하지 못했다.

쿠에바스는 팀이 위기일 때 합류해 좋은 성적을 냈다. 외국인 최초이자 21년 만의 무패 승률왕까지 달성하며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가 없었다면 KT는 지금의 순위까지 갈 수 있었을까. 성적과 감동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쿠에바스는 KT 역대 최고 외인 투수의 수순을 이미 밟고 있다.

 

고난과 역경으로 시작했지만 끝은 아름다웠던 2023년 KT

올해 KT는 마치 한 송이의 진달래꽃 같았다. 진달래는 추운 겨울 척박한 흙에서 겨울바람을 다 맞으며 꽃 피울 시기만을 기다린다. 때론 그 겨울바람을 못 버티고 죽기도 한다. 하지만 그 역경을 이겨내면 따스한 봄에 연분홍색의 이쁜 꽃이 핀다.

올해 KT도 시작은 추운 겨울이었다. 주전 선수들의 잇따른 전력 이탈과 외인 투수의 부진, 삭막한 환경과 겨울바람에 꽃 피우길 포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고난과 역경을 버텨냈고 결국 2위라는 꽃을 피웠다. 팬들의 자존심을 지켜준 아주 고마운 해였다.

올 한해 너무 아름다웠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이강철 감독의 투수 기용이었다. 이강철 감독의 혹사 논란은 꾸준히 있었다. 2022년의 김민수도 80.2이닝을 던지고 올 시즌 전 어깨 부상을 당하며 이번 시즌 13이닝 소화에 그쳤다. 올해도 비슷했다. 박영현 75.1이닝, 손동현 73.2이닝으로 불펜 투수라기엔 비교적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심지어 박영현은 8월까지 불펜 투수 중 연투 1위를 기록했다.

박영현과 손동현이 없는 불펜진은 KT 구단과 팬들도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을 것이다. KT는 2023년 신인 드래프트 110순위의 강건도 1군에 모습을 보일 정도로 좋은 유망주 선수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김민수 같은 사례가 나오지 않으려면 투수 유망주 팜의 강점을 키워 좀 더 다양한 투수들을 기용하는 건 어떨까.

10월 11일 KT는 정규 시즌을 마친 다음 날 바로 이강철 감독과 3년 총액 24억 원에 재계약했다. 현역 감독 최고 대우였다. 이강철 감독에 대한 KT의 엄청난 신뢰가 돋보이는 계약이었다. 그런 만큼 이강철 감독도 이제 1년 성적에 얽매이지 말고 중장기적 관점으로 팀을 운영한다면 어떨까. 구단과 감독, 선수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앞으로 KT가 시련을 겪는 진달래꽃이 아닌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 지지 않는 무궁화가 되려면 조금의 변화는 필요하지 않을까.

 

참고 = STATIZ, KBO 기록실, KT위즈

야구공작소 장호재 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채희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희원, 전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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