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궁.해] 주루방해, 수비방해 그 무엇도 아닌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

“심판이 궁금해, 심궁해”는 현역 야구 심판이 심판에 대한 억울함을 스스로 해소하기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는 칼럼 시리즈입니다.

야구 심판과 규칙에 대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달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평소에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댓글로 질문을 남겨주세요. 

지난 6번의 글을 통해 야구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방해 상황에 대해 알아봤다. 이른바 ‘방해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할 주제는 타자(주자)와 야수 간의 접촉이 있어서 눈으로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방해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방해가 아닌 상황을 살펴볼 것이다.

 

밤비노의 저주는 이어진다

야수와 주자가 충돌을 일으켰는데도 주루방해, 수비방해 그 어떠한 판정도 나오지 않는 상황이 있다. 공식야구규칙 6.01(a)(11)의 원주에 나와 있는 상황이다. 

1975년 월드시리즈 3차전 10회 말. 홈팀 신시내티 레즈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정규 이닝에서 서로 5점을 주고받은 후 10회 초를 삼자범퇴로 마무리하고 10회 말을 맞이했다. 선두타자 세자르 제로니모가 우익수 앞 안타로 출루한 상황. 에드 암브리스터가 희생번트를 시도한다. 

타구는 앞으로 뻗기보다는 땅에 맞고 위로 높게 뛰었고, 포수 칼튼 피스크는 홈 플레이트 앞에서 손을 높게 들어 잡았다. 그때 번트를 대고 1루로 가려던 암브리스터가 피스크와 충돌했다. 충돌의 여파로 피스크는 중심이 흔들린 상황에서 2루로 송구를 시도했고, 2루가 아닌 중견수 앞으로 멀리 공을 보내버리고 만다. 그 결과 1사 1루가 될 상황이 무사 2·3루가 되어버렸고, 끝내 레드삭스는 끝내기 안타를 맞아 경기를 내줬다. 포수 피스크는 주심 래리 바넷이 수비방해를 선언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바넷 주심은 수비방해를 끝까지 선언하지 않았다. 

바넷 주심은 어필에 대항해 암브리스터가 ‘방해할 의도가 없었다’라는 논리를 펼쳤다. 하지만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규칙에 어긋났다는 지적을 받았다. 암브리스터는 첫 번째는 당시 기준 OBR 7.08(b) 타구를 수비하는 야수를 방해하면 주자는 아웃, 두 번째는 7.09(l) 타자 혹은 주자가 수비하려는 야수를 방해하면 수비방해라는 규정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바넷 주심은 애매모호한 논리를 제시한 이유로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바넷 주심을 옹호하는 의견도 있었다. 내셔널리그의 다른 심판인 프레드 플라이그는 내셔널리그 심판들에게만 제공되는 규칙 해설집(아메리칸리그 심판에게는 이런 것이 없었고, 바넷은 아메리칸리그 심판이었다)의 7.06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면서 바넷의 판정은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타구를 처리하려는 포수와 1루로 달리려는 타자주자가 부딪쳤을 경우 일반적으로 아무런 선고를 하지 않는다’는 OBR 7.06 해석을 제시하면서 바넷을 변호했다. 그러나 7.06 조항은 수비방해가 아닌 주루방해를 규정했기 때문에 합당한 근거가 아니라는 지적을 곧바로 받았다. 

아무튼 1975년 월드시리즈는 베이브 루스의 저주가 이어지면서 레즈의 우승으로 끝난 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7.08(b)에 ‘타구를 처리하고 있는 야수를 방해하였다고 심판원이 제정한 주자는 고의 여부에 관계없이 아웃된다’는 내용의 주석을 신설한다. 따라서 암브리스터와 같은 행동은 당연히 수비방해가 되어야만 했다. 

 

길을 잃어버린, 하지만 모두에게 적용되기 시작한

그러나 내셔널리그 규칙 해설집에만 있던 해석본이 어느 순간 야구규칙 속으로 들어왔다. 필자가 확보한 메이저리그 규칙 가장 오래된 판본이 2001년인데, 상술한 ‘포수와 1루로 달리려는 타자주자가 부딪쳤을 경우 일반적으로 아무런 선고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7.09(l), 다시 말해 수비방해 조항에 추가가 되어있다. 분명 바로 전 단락에서 언급한 내셔널리그 규칙 해설집에는 포수와 타자주자의 충돌 상황이 주루방해 상황에 대한 해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이 상황을 적용하는 맥락이 달라진 것일까?

답은 ‘아니다.’ 계속 언급한 그 주석 바로 이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추가되었다. “타구를 처리하려는 야수에 의한 주루방해는 매우 악의적이거나 난폭한 경우에 한하여 선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규칙은 야수에게도 공정한 권리를 주기 때문이다.”  즉, 수비방해 조항에 주석으로 달렸지만, 이 주석은 수비방해와 주루방해를 모두 아우르는 규칙이 되었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2023년 3월 8일 파나마와 대만의 WBC 경기에서 나온 상황이다. 타자 가오위제가 희생번트를 댄 직후 이를 잡으러 나온 포수 크리스티안 베탄코트(NC에서 뛰었던 그 베탄코트다)와 부딪혀 넘어졌다. 베탄코트는 즉각 공을 잡아 2루로 송구해 1루주자를 잡았으며, 이어 2-6-3 병살로 이어졌다. 대만 벤치는 포수의 방해로 인해 주자가 제대로 주루하지 못했다고 어필하러 나왔다. 

하지만 주심은 수비방해도, 주루방해도 선언하지 않았다. 우리가 계속 언급한 7.09(l)의 주석은 이제 공식야구규칙 6.01(a)(11)의 [원주] 혹은 OBR 6.01(a)(10)의 Comment로 성문화되었기 때문이다. 

 

공식야구규칙 6.01(a)(11) [원주]

타구를 처리하려는 포수와 1루로 달리려는 타자주자가 부딪쳤을 경우 일반적으로 수비방해도, 주루방해도 없었던 것으로 보고 아무런 선고도 하지 않는다. 타구를 처리하려는 야수에 의한 주루방해는 매우 악의적이거나 난폭한 경우에 한하여 선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규칙은 야수에게도 공정한 권리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방해다

2011년 7월 3일 애너하임에서 열린 다저스와 에인절스의 경기. 8회초 1아웃에 타석에 들어선 맷 켐프는 포수 앞 높이 뜬공을 치고 자신의 타구를 지켜봤다. 포수인 행크 콩거를 그 타구를 잡으려고 앞으로 나서다가 켐프와 접촉하면서 포구에 실패했다. 판정은? 주심 댄 아이소냐는 곧바로 수비방해를 선언하고 켐프는 아웃되었다. 

2018년 7월 28일 마이애미에서 열린 워싱턴과의 경기. 10회 말 타자 미겔 로하스는 1루주자를 2루로 보내기 위해 번트를 했다. 1루로 가려던 로하스는 포수 스펜서 키에붐과 충돌했다. 이 상황에서 주심 팀 티몬스는 키에붐의 주루방해 6.01(h)(1)항에 따라 볼데드를 선언하고 주자 상황을 무사 12루로 지시했다. 

얼핏 보면 포수와 주자가 충돌한 똑같아 보이는 상황이지만, 무슨 차이가 있어서 수비방해와 주루방해라는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일까? 

첫 번째 상황에서 문제가 되는 점은 타자주자 켐프가 곧바로 1루로 달려가지 않고 자신의 타구를 지켜보기 위해 멈춰버린 것이다. 전술한 공식야구규칙 6.01(a)(11)의 [원주]에 따르면 타자주자가 1루로 달려야만 포수와 접촉해도 아무런 선고를 받지 않는다. 반대로 두 번째 상황에서는 누가 번트 타구를 잡았는지가 관건이다. 번트를 잡은 선수는 투수 켈빈 에레라였다. (수비할 권리가 보장되는 야수는 단 한 명이다.) 즉, 포수 키에붐은 타구를 처리하려는 포수가 아니기 때문에 주루방해를 선고받은 것이다. 

 

혼동하기 쉬운 사례

공식야구규칙 6.01(a)(11)의 [원주]의 적용 대상인지 아닌지에 대해, 미국 심판 커뮤니티에서 최근 꽤 격렬한 토론이 있었던 사례를 소개하고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주자 13루 상황에서 타자가 스퀴즈번트를 댔다. 타구는 투수 앞으로 굴러갔다. 포수는 들어오는 3루주자를 잡기 위해 공을 받을 준비했다. 타자는 주자가 되어 1루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투수에게서 오는 송구를 기다리는 포수와 타자가 정면으로 박아버렸다. 포수는 그 충격에 완전히 나가떨어져서 투수의 송구를 받지 못했다. 

이 상황에 대해 커뮤니티는 두 가지로 의견이 양분되었다. 첫 번째는 현장에 있는 주심이 한 것처럼 수비방해 선언이다. 주심은 타자주자와 포수가 충돌한 후 볼데드를 외치고 타자주자의 수비방해를 선언했다. 주심이 어떠한 이유로 수비방해를 선고했는지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생각을 추측해야 한다. 아마도 수비하는 포수를 과격하게 밀어버렸기 때문에 수비방해를 선고했다고 생각한다. 해당 상황이 수비방해라고 설명하는 규칙은 없지만, 고의적인 혹은 정도를 넘는 과격한 접촉은 규제의 대상이다. 타자주자가 포수에게 레슬링 기술인 스피어를 시전하듯 강하게 부딪친 점, 그리고 선수 보호에 좀 더 신경을 쓰는 고등학교 야구라는 점을 감안해 주심이 수비방해를 선언했을 것이다. 눈으로만 보기엔 수비방해가 통상적으로 더 납득할 만한 판정처럼 보인다. 

 

두 번째 의견은 좀 더 야구규칙에 근거한 것이다. 수비방해는 ‘플레이하는 야수’를 공격팀 선수가 방해했을 때 발생한다. 그러나 이번 사례를 보면 ‘플레이하는 야수’, 즉 공을 잡으러 가는 선수는 투수이다. 즉, 포수는 타자가 1루로 진루할 수 있도록 길을 비켜줘야 하며, 타자가 일부러 경로를 바꿔가면서 야수와 접촉하지 않는 이상 주루방해가 나왔어야 한다. 타자가 비록 격하게 포수와 박았지만 포수가 홈 플레이트와 1루 사이를 막고 서있던 점을 고려하면 주심은 수비방해를 선언해서는 안 되며, 타자주자가 1루에 도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방해가 발생한 만큼 볼데드 선언과 함께 주루방해 (1)항을 선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판이 되어 어떠한 선고를 내리더라도, 위 사례는 오늘의 주제인 공식야구규칙 6.01(a)(11)의 [원주]의 대상이 되어,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송구를 기다리는 포수는 ‘타구를 처리하는’ 야수가 아니기에 3루와 홈 사이 외에도 홈과 1루 사이도 비워줘야 한다. 만약 과격한 충돌을 가지고 수비방해를 선언한다 해도 이는 절대로 [원주]에 해당되지 않는 사례이다. 

심판이 궁금해, 심궁해 시리즈는 이번 편을 끝으로 2023년 연재 일정을 마칩니다. 2024년에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는 주제로 찾아 뵙기를 약속합니다. 오랫동안 꾸준히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 = Spitters, Beanballs, and the Incredible Shrinking Strike Zone: The Stories Behind the Rules of Baseball,  Classic MLB1, WBC, Close Call Sports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야구공작소 오연우,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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