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궁.해-번외편] 여전히 아쉬움으로 가득한 심판학교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

“심판이 궁금해, 심궁해”는 현역 야구 심판이 심판에 대한 억울함을 스스로 해소하기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는 칼럼 시리즈입니다.

야구 심판과 규칙에 대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달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평소에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댓글로 질문을 남겨주세요. 

2023년 10월 16일 KBO와 KBSA는 2023년도 제14기 야구심판 양성 과정(이하 심판학교) 모집 안내를 발표했습니다.  야구심판에 관심이 있는 19세 이상의 일반인은 누구나 2023년 11월 18일부터 10주 동안 서울에 있는 명지전문대학에서 진행되는 160시간 교육에 지원할 수 있습니다. 

심판학교는 1982년 개원한 사단법인 한국야구 소프트볼 심판아카데미(이하 UA)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야구심판을 육성하는 두 개의 축이며, 현역 KBO 및 KBSA 소속 심판이 직접 강의하는 과정입니다. 프로 무대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심판과 소통하면서 야구 규칙과 심판을 어떻게 하는지를 배우는 기회는 전 세계에서도 흔하지 않습니다. 저 또한 심판학교 출신으로, 석사 논문을 작성하는 동안 심판학교에 다니며 좀 더 다듬어진 심판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심판이 되고 싶은 제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50만 원이라는 수강료와 한겨울 160시간을 투자해야 할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심판학교를 수료하면 잘 보는 심판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사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제 답은 늘 똑같습니다. 심판이 되고 싶으면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길이 없기에 무조건 듣고 수료해야 한다’이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 또한 지난 몇 년 동안 변하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심판학교만으로는 좋은 심판이 되긴 어렵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왜 그런지에 대한 저의 의견과 우리나라 심판학교가 발전해야 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마무리 부분에서는 미국에서는 심판 교육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소개하겠습니다. 

 

왜 겨울에?

심판학교에 대한 아쉬운 점 첫 번째는 심판학교가 겨울에만 열린다는 것입니다. 전술했듯이 2023년 심판학교는 11월 중순부터 내년 1월 말까지 진행합니다. UA도 12월 한 달 동안 교육을 진행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겨울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해가 떠 있는 시간도 짧으므로 실외 활동을 하기 어려울뿐더러 종종 눈도 내립니다. 야구나 소프트볼은 땅이 얼어버리는 겨울에 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건 이 글을 읽는 독자 모두가 공감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심판 양성 교육은 늘 추운 겨울에 진행됐습니다.

왜 따뜻한 계절에 심판 교육을 진행하지 않는 것일까요? 교육을 진행하는 KBO, KBSA 심판들이 한창 시즌 중이기 때문입니다. 심판학교도 UA도 교육생을 가르쳐야 하는 심판이 시즌 중에는 다른 활동을 하기 어렵기에 경기 일정이 모두 정리된 겨울에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겨울입니다. 특히 서울의 겨울은 춥습니다. 심판은 선수들의 플레이에 따라 움직이면서 최고의 시야각을 확보하고 판정을 내리는 자리입니다. 노련한 심판들도 추운 날씨에 움직이기 쉽지 않은데, 익숙하지 않은 움직임을 해야 하는 교육생들이 이를 잘 따라갈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미국도 겨울에 심판학교를 진행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달력상 겨울’에 진행되는 심판학교가 열리는 지역은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 등 겨울에도 따뜻한 곳입니다. 

 

너무 많은 수강생

심판학교의 또 다른 문제는 수강생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한 기수에 일반과정(과정 Ⅰ)은 100명이, 전문과정(과정 Ⅱ)은 50명이 듣습니다. 제한된 공간에 많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대학교 대형 강의를 듣는 것과 유사합니다. 교관과 학생 간 개별 지도는 간헐적으로만 이뤄집니다. 교육 중 연습 상황을 경험하기도 몹시 어렵습니다. 

하지만 일반과정을 다니는 교육생이 10주 동안 몇 번의 타구를 마주할 수 있을까요? 2심제를 가정하고 50개 조가 있다고 합시다. 운동장을 네 면으로 나눠서 교육을 진행하더라도 한 면에는 12개 혹은 13개 조가 있습니다. 플레이 한 번에 약 1분이 소요된다고 가정하면, 수강생은 12~13분에 한 번 아웃 혹은 세이프 콜을 합니다. 한 시간 교육이 진행되면 많아 봐야 다섯 번입니다. 나머지 55분 동안은 추운 바깥에서 그저 다른 사람의 플레이를 지켜보면서 기다릴 뿐입니다. 아래 사진처럼 두 명이 한 플레이를 동시에 진행하거나 뒤에서 다른 사람들의 플레이를 기다려서 지켜보는 것이 일상입니다. 

 

부족한 실전 경험

최근에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다녀온 강호석 스쿼시 대표팀 감독은 스포츠 환경이 시합 중심으로 바뀐 지 오래됐다고 하면서 경기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심판도 선수와 똑같습니다. 단순 훈련과 연습만으로는 좋은 심판이 될 수 없습니다.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경기 중에 겪는 것이 기억에 더 오래 남고 같은 실수를 덜 반복하게 됩니다.

하지만 겨울에 진행된다는 것과 너무 많은 수강생으로 인해 당연히 심판학교에서 실전 상황을 경험하기란 어렵습니다. 일단 겨울에 심판학교 수강생을 위해 연습경기를 자원할 팀은 극히 드뭅니다. 게다가 심판학교 교육이 진행되는 명지전문학교에는 야구장이 없습니다. 일반적인 흙으로 된 운동장에서 겨울에 실전 경기를 해주는 팀이 있다면 그 팀은 정말 대단한 팀입니다. 

설사 팀을 구해서 경기를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교육생 전체가 충분한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100명이 4심제로 들어간다고 해도 25개 조입니다. 이론상 1개 조가 아웃 두 개씩만 책임지면 한 경기가 끝나고 최소 2시간 30분이 지나갑니다. 아웃 4~5개면 하루 일정이 끝나는 셈입니다. 

전술한 여러 이유로 인해 심판학교 실기교육의 대부분은 다수가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것으로 한정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기본 콜 훈련’이죠. 수강생은 10주 동안 하루 2시간씩 아웃, 세이프, 보크, 인필드플라이 등 기본 콜 동작을 연습합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저도 그랬고, 앞으로도 심판학교에서 이어질 것입니다.

< 2012년 4기 심판학교 기본 콜 훈련 사진 >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제가 생각했을 때 심판이 갖춰야 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을 정작 심판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커뮤니케이션이죠. 규칙에 대한 지식과 이해, 좋은 판정을 내리기 위한 운동 능력과 함께 반드시 심판이 갖춰야 하는 자질입니다. 

심판은 단순하게 아웃과 세이프, 볼과 스트라이크를 판정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해 경기에 참여하는 모든 관계자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를 인정해 메이저리그 심판이 되기 위해 필요한 능력과 자격 7개 중 ‘좋은 커뮤니케이션 기술(Good communication skills)’‘우수한 조정 능력(Good coordination)’을 포함했습니다.

 

심판학교에서는 심판이 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거의 알려주지 않습니다. 한편 제가 지금까지 미국에서 경험한 여러 심판 교육 과정에서는 심판 커뮤니케이션의 비중이 실전 연습의 절반에 가까웠습니다. 여기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심판이 내린 판정에 대한 설명이나 어필에 대한 대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기 전에 동료 심판과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지, 경기 전후로 다른 심판과의 동선을 어떻게 유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지, 경기가 끝나면 어떻게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어떻게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지 등이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서 심판의 커뮤니케이션 단계를 시간의 흐름으로 구분하면 Pre-game(경기 전), In-game(경기 중), Post-game(경기 후)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기서 Pre-game을 확장하면 경기 일주일+ 전, 경기 전날, 경기 직전 등으로 구분할 수도 있죠. 각 단계에서 한 심판은 동료 심판, 심판 배정자, 경기 주최 측, 선수 및 코치 등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며, 심판은 이것을 모두 마쳐야 한 경기가 끝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심판학교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거의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교육 과정에는 야구의 역사, 인성교육, 도박 근절 및 예방책 등이 포함되어 있지만, 정작 하나의 심판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경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심판학교가 바뀌어야 하는가?

그러면 심판학교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우선 근본적으로 따뜻할 때 열려야 합니다. 선선한 날씨와 긴 일조량을 바탕으로 모두가 편하게 교육 과정을 함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저의 주장에 ‘그럼 누가 가르치냐?’라는 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에 저는 KBO와 KBSA가 심판학교 교육만을 담당할 심판을 별도로 배정하면 된다고 말하겠습니다. 최근에 은퇴 혹은 퇴직을 선언한 심판이나 부상 등의 이유로 현재 활동이 어려운 심판 등이 심판 교육에 힘쓰는 것이 하나의 방법입니다. 

 

다음으로는 심판 교육이 적은 인원으로 자주, 그리고 짧고 굵게 이뤄져야 합니다. 좀 더 많은 행정력을 요구하겠지만, 양질의 심판을 배출하기 위해서라면 100명이 듣는 10주짜리 과정 하나를 운영하는 것보다 10명이 듣는 1주짜리 과정을 10차례 진행하는 것이 훨씬 유리할 것입니다. 

 

또 심판학교가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도 열려야 합니다. 제가 심판학교에 다니던 시절 지방에 거주하시던 분들은 심판학교 참석을 위해 매주 금요일마다 기차 혹은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한두 주면 모르겠지만 10주 동안 왕복하려면 수강료 외에도 교통비와 숙박비로 막대한 지출을 해야 합니다. 

마침 좋은 사례로 메이저리그가 올해부터 시행한 심판 캠프(MLB Umpire Camps)를 들 수 있습니다. 메이저리그는 2023년 하루짜리 심판 캠프를 4월 신시내티, 5월 시카고, 6월 휴스턴, 7월 샌 버나디노, 8월 노퍽 총 다섯 지역에서 개최했습니다. 동부, 서부, 중부를 오가면서 전국에 널리 퍼져 있는 메이저리그 심판 지망생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교육 기회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지방의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심판학교가 컴팩트하게 여러 지역에서 번갈아 가면서 열려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효과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육과정이 재편되어야 합니다. 실전 비중을 늘리고 이론 분야에서도 실제 심판에게 필요한 가치관과 능력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변해야 합니다. 규칙은 각자 개별적으로 공부하되 특수한 사례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를 논의하는 자리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미국의 심판 교육 사례 – 3일 캠프

제가 9월 22일부터 24일까지 참가한 3일짜리 전미대학체육협회(NCAA) 소프트볼 심판 캠프를 예로 들며 글을 마니다. 이번 캠프는 15명의 수강생과 6명의 강사로 구성되었습니다. 강사는 NCAA D1과 D2 레벨에서 활동하고 있거나 활동했던 심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은 금요일 이론 4시간, 토요일 이론 2시간, 실기 8시간, 일요일 실기 8시간 총 22시간이었습니다.  

이론 수업에서는 NCAA 소프트볼의 메카닉, 신규 및 변경 규정, 심판 커뮤니케이션의 방식과 모의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심판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이야기했습니다. 실기 16시간은 모두 연습경기로, 세 개의 구장에서 동시에 경기가 진행되었습니다. 각 2시간씩의 경기를 토일 합쳐서 총 네 번 들어가 심판을 연습했습니다. 

저는 지난 몇 년간 고등학교 소프트볼 심판을 봤지만, NCAA 심판들이 사용하는 2심제와 3심제 방식에는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경기 초반에는 매뉴얼에 맞지 않는 움직임을 하면서 당황하기도 했지만 2이닝 정도 겪고 나니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강사들은 경기를 중간에 끊지 않고 공수교대 시간을 이용해 제게 적합한 메카닉을 설명했습니다. 경기가 없는 시간에는 강사들과 함께 다른 수강생이 진행하는 경기를 지켜보면서 자유롭게 질의응답을 했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끝으로 제가 심판한 영상은 모두 촬영되어 제 외장 디스크로 들어왔습니다. 각 수강생이 영상을 통해 복기하며 스스로 어떤 부분에서는 잘 움직였고 어떤 부분에서는 부족했는지 파악하길 바라는 의도일 겁니다. 

 

참고 = OSEN, NCAA, 명지 전문 대학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오연우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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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주구장창 콜100번 하고 끝나는것보다
    타구 판단 포메이션 연습
    볼스트라이크존에 대한 판단력 연습을 해야되는게 맞다 생각함

  2. 참 듣기 좋은 소리만 하시네요 따뜻할 때 하면 좋지요 근데 야구장도 없고, 교육에 참가할 사람들도 없어요 강사들도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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