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두 번째 스무살] 1988년 – 최동원 없이 선동열을 이기는 법

  • 이 연재물은 ‘KBO 박스스코어 프로젝트’와 함께 합니다.

2021년 6월 현재 KBO 연감을 한 번 펼쳐보자. 그리고 책을 중간쯤 넘겨서 ‘전반, 타격, 투수, 수비 진기록’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자. 개인 투수 부문을 보면 투수들의 승리와 관련된 각종 기록이 나온다. 여러 익숙한 기록을 뒤로하고 지나가면 ‘특정팀 상대 연승’ 기록이 나온다. 그곳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20… 선동열(해태) 88. 8. 11 사직 롯데~95. 9. 26 무등 롯데

지난 1993년 5월 7일 새로 경신된 ‘특정팀 상대 연승’은 2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고 있는 기록이다.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어느 팀이 선동열을 안 무서워했겠는가. 그래도 특정 투수에게 20연패를 기록한다는 건 훌륭하다고 박수를 칠 일은 아니다. KBO 리그의 수많은 패배와 관련한 기록을 보유한 롯데 자이언츠지만 특히 이 기록은 투수 한 명에게 당했다는 점에서 더욱더 부끄러운 기록일 것이다.

그렇지만 ‘무쇠팔’ 최동원이 선동열과의 맞대결에서 패배를 안겼던 적이 있다는 걸 이 시리즈를 계속 읽고 있는 독자라면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1987년편 참고) 그렇다면 분명 롯데도 선동열에게 마지막으로 이긴 날이 있을 것이다. 과연 한 선수에게 승리 없이 스무 번이나 패배했던 롯데가 언제 선동열을 고개 숙이게 했을까?

달력을 조금 많이 넘겨서 1988년으로 가보자. 당시 롯데는 전반기 내내 해태 타이거즈를 만나면 패배와 관중 난동이라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첫 대결이었던 4월 9일 사직 경기에서는 9회 초 해태 이순철의 홈스틸 시도를 잡아낼 뻔했으나 포수 김용운이 볼을 떨어뜨려 세이프 선언을 받았다. 그러자 경기장에 들어찬 관중들이 빈병 등 이물질을 던지며 경기가 9분가량 중단되기도 했다. (경기는 해태의 6대 3 승리)

이어 5월 31일에는 1대 4로 뒤지던 롯데가 8회 말에만 7점을 얻어내며 극적인 역전승을 따내는 듯싶었으나 9회 초 롯데 세 번째 투수 박동수가 무려 5점을 내주면서 8대 9 역전패라는 참혹한 엔딩을 썼다. 롯데가 역전을 허용하자 흥분한 팬들은 술병과 캔을 던지면서 관중 8명이 부상을 입었고 경기는 16분 동안 중단됐다. 그 와중에 한 팬이 쇼크사하는 비극까지 일어났다. 다음날 KBO 이웅희 총재가 관중 난동 관련 담화문을 발표하는 등 이날 경기는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렇듯 롯데는 5월 말까지 열린 해태와의 7차례 맞대결에서 매너도 지고 실력도 지면서 ‘영호남 라이벌’, ‘제과 라이벌’로서의 체면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 여기에 에이스 최동원까지 연봉 협상에서 시작된 감정싸움으로 인해 전반기 내내 그라운드에 나서기는커녕 계약서에 도장도 찍지 못했다. 거대한 벽과도 같은 선동열을 잡아낼 무기 하나를 두고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롯데에는 ‘황제’ 최동원의 뒤를 이을 ‘고독한 황태자’ 윤학길이 있었다. 1987년부터 본격적으로 프로 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윤학길은 1988년 들어 더욱 원숙한 모습으로 롯데 마운드를 이끌고 있었다. 윤학길은 이해 5월 11일부터 6월 9일까지 7연승을 거두며 29.1이닝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5월 28일에는 리그에서 가장 먼저 10승 고지를 밟으면서 다승왕 레이스에서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전반기 해태를 두 차례 만나 완봉승과 8이닝 2실점 완투패를 기록한 윤학길을 롯데는 ‘호랑이 잡을 창’으로 내세우기로 했다. 전반기 마지막 해태와의 시리즈였던 6월 12일 더블헤더에서 롯데는 윤학길을 불펜으로 대기시켰다. 불과 3일 전 9이닝 동안 6피안타 2실점을 기록하며 완투승을 기록한 윤학길이었지만 롯데에는 그 외에는 꺼낼 카드가 없었다.

다행히 롯데는 1차전에서 한영준과 김민호, 유두열의 홈런포와 재일교포 김정행의 호투(2실점 완투승) 속에 5대 2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2차전, 해태는 드디어 선동열을 꺼냈다. 롯데는 선동열의 고려대 4년 선배였던 사이드암 노상수를 선동열의 맞상대로 내세웠다. 노상수는 1회 먼저 실점하기는 했지만 7회까지 해태 타선을 4피안타 7탈삼진으로 틀어막으며 순항했다.

그러자 롯데 타선도 응답하기 시작했다. 롯데는 6회 한영준의 중전 적시타가 나오면서 1대 1 동점을 만들었다. 선동열은 평소 고려대 출신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였는데, 선동열의 대학 동기였던 한영준도 예외는 아니었다. 훗날 선동열의 통산 24번째 피홈런의 주인공이 된 한영준은 이날 무려 4안타나 뽑아내며 친구를 철저히 괴롭혔다.

비록 한 점을 내주기는 했지만 선동열은 8회까지 롯데 타선을 6안타로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롯데의 승리 의지도 무서웠다. 롯데는 8회 시작과 함께 드디어 윤학길을 투입했다. 윤학길은 안타 하나를 맞기는 했으나 8회와 9회 해태 타선을 잘 막아냈다. 선동열과 노상수+윤학길의 팽팽한 투수전 속에 경기는 9회 말로 접어들었다.

선두타자 김용철을 잘 잡아낸 선동열은 그러나 1사 후 유두열에게 볼넷을 내줬다. 경기 막판 잡은 찬스에 롯데는 곧바로 대주자 김재상을 투입했다. 벤치의 기대에 부응하듯 김재상은 도루에 성공하며 득점권 찬스를 만들어냈다. 상황은 1사 2루로 바뀌었고, 타석에는 경기 중반 교체 출전한 지명타자 조성옥이 들어섰다.

조성옥은 여기서 2루수 앞쪽으로 느린 타구를 날렸고, 대수비로 출전한 2루수 서정환이 이를 처리하기 위해 달렸다. 그런데 이때 발 빠르기로 소문난 2루 주자였던 김재상이 3루를 지나 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결국 김재상이 먼저 홈플레이트를 터치하면서 롯데는 극적인 2대 1 끝내기 승리를 거두게 됐다. 철저히 막혔던 선동열에게 패배를 안긴 것은 덤이었다.

이날 경기에서 이겼다면 10승 고지에 오를 수 있었던 선동열은 대신 시즌 4패째를 기록하며 다승왕 레이스에 빨간 불이 켜졌다. 반면 이날 전까지 다승 단독 1위에 올라있던 윤학길은 시즌 13번째 승리를 거두면서 생애 첫 20승 달성에 한 걸음 다가갔다.

해태와의 전반기 마지막 2경기를 모두 이긴 롯데는 이후 6월 29일 최동원과 극적으로 계약을 맺으면서 희망찬 후반기를 꿈꿨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후반기 9번의 맞대결에서 롯데는 첫 3경기를 모두 이기고도 4승 5패로 마감했다.

8월 11일 경기에서 선동열과 최동원은 모두 3회 1사 후 마운드에 올랐다. 최동원은 1.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이미 뒤지던 상황에 올라와 경기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반면 리드를 지키기 위해 올라온 선동열은 비록 2점을 내주기는 했으나 6.2이닝을 던지면서 구원승을 챙겼다.

그리고 이날 이후 롯데는 단 한 번도 선동열의 이름 옆에 ‘패’라는 글자를 새기지 못했다. 기록이 종료된 것도 자신들의 능력이 아닌 선동열의 일본 진출과 은퇴로 인해 끝났다는 점이 롯데에는 더욱더 굴욕이었으리라.

1988년 6월 12일 해태-롯데 더블헤더 2차전 박스스코어(사진=KBO 박스스코어 프로젝트)

사진=KBO

야구공작소 양철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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