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KBO리그 포스트시즌은 잘못됐다

<2016 한국시리즈 챔피언 두산 베어스, 사진 = 두산 베어스>

[야구공작소 오연우] 2014년 삼성은 페넌트 레이스와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삼성 팀으로서는 4년 연속 통합 우승이었고, KBO 리그로서는 2002년부터 13년 연속으로 통합 우승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렇게 페넌트 레이스 우승 팀이 계속 한국시리즈까지 석권하자 자연히 한국시리즈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었다.

한편 2015년에는 준플레이오프부터 올라간 두산이 페넌트 레이스 1위 삼성을 꺾고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그 결과 모든 영광은 페넌트 레이스 3위였던 두산에게 돌아갔고, 이번에는 삼성 팬들이 억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1년 농사에서 이겼는데 7판 4선승제 시리즈에서 졌다고 최종 우승을 박탈당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터져 나왔다.

현행 KBO 포스트시즌 제도는 누가 우승해도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페넌트 레이스 우승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 한국시리즈 무용론이 제기되고, 페넌트 레이스 우승을 하지 못한 팀이 우승하면 제도의 빈틈을 노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1989년 최초로 단일시즌 제도가 채택된 이후 꾸준히 같은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뾰족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소소한 제도의 개정은 있었지만 본질과는 동떨어진 것들이었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먼저 포스트시즌의 기원을 살펴 보자.

 

최초의 포스트시즌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NL)가 처음 생긴 때는 1876년이다. 이 때는 포스트시즌이라는 제도가 없었고 페넌트레이스 우승 팀이 그대로 최종 우승 팀이었다. 1876년에는 시카고 화이트 스타킹스(現 시카고 컵스)가 52승 14패로 첫 우승 팀이 되었다.

NL은 흥행에 성공했지만 8개 팀으로 구성된 NL 로는 미국의 야구 자원을 모두 담을 수 없었다. 자연히 새로운 리그가 만들어진다. 1882년부터 메이저리그에 참가한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AA)이 그것이다. 그리고 1884년, 두 리그는 정규 시즌이 끝난 뒤 “세계 야구 챔피언을 가리기 위한 시리즈(the series for the baseball championship of the world)”, 곧 월드 시리즈를 치르기로 한다. 최초의 포스트시즌이다.

이후 두 리그는 공존하면서 발전해 나간다. 그러나 1890년 NL 소속 선수들이 플레이어스 리그(PL)라는 제 3의 리그를 결성한다. 그 결과 한정된 관중을 두고 3개 리그가 다투게 되었고, 이를 버텨내지 못한 PL는 첫 해를 끝으로 해체된다. 또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던 AA도 경영 악화로 인해 1891년을 끝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리그에는 NL만 남았다.

결국 1892년의 메이저리그는 처음 NL이 생겼을 때인 1876년과 같은 단일리그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첫 해에는 포스트시즌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포스트시즌도 사라져야 했다. 그러나 이미 포스트시즌의 흥행을 맛본 NL은 이제 와서 포스트시즌을 포기하지는 못했고, 결국 단일리그에서 억지로 포스트시즌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방식은 KBO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일리그 첫 해였던 1892년에는 80년대 KBO와 같이 전, 후기로 시즌을 나누어 전기 우승팀과 후기 우승팀이 월드 시리즈를 치렀다. 전기 우승팀인 보스턴이 우승했다. 하지만 그다지 흥행이 되지 않았는지 이 방식은 1년 만에 사라진다.

1893년에는 포스트시즌이 없었고, 1894년부터 1897년까지는 페넌트 레이스 1, 2위 팀이 맞붙는 템플 컵 대회(Temple Cup Series)를 열었다. 컵을 내놓은 당시 피츠버그 구단주 윌리엄 템플(William C. Temple)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과거의 월드시리즈와 같은 느낌은 나지 않았고, 1898년부터는 다시 포스트시즌이 사라진다.

현재의 월드시리즈가 생긴 것은 좀 더 뒤의 일이다. 원래 마이너리그였던 아메리칸 리그(AL)가 1901년부터 스스로 메이저리그임을 선언한 후 1903년 처음으로 AL과 NL이 맞붙는 월드시리즈가 열렸다. 1904년에는 NL 우승팀인 뉴욕 자이언츠의 구단주 존 브러시의 반대로 한 차례 월드시리즈가 생략되었지만 1905년부터는 완전히 정례화되었고, 그 명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명분

미국의 사례에서 눈여겨 볼 점은 3가지다. 첫째는 NL이 처음 생겨서 단일리그일 때는 포스트시즌이 없었다는 점, 둘째는 양대리그일 때 포스트시즌이 생겼다는 점, 셋째는 잠시 단일리그로 돌아갔을 때 억지로 만든 포스트시즌은 그리 흥행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흥행의 핵심은 포스트시즌이 열리는 명분에 있다. 양대리그에서의 포스트시즌은 서로 다른 리그의 우승자끼리 최종 승자를 가린다는 ‘명분’이 있다. 서로 다른 리그라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독립적으로 운영된 두 리그의 우승자끼리 결승전을 치르기에 월드시리즈는 리그 내 페넌트 레이스 결과와 무관한 완전히 새로운 이벤트가 된다.

AL과 NL의 우승자 결정전을 리그 내 승률 순으로 일괄적으로 줄 세워서 시행하지 않는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만약 15팀 중에서 단순히 승률 순으로 상위 다섯 팀을 뽑아서 포스트시즌을 시행했다면 현재 KBO와 완전히 같은 문제에 봉착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를 나누어 운영하고 지구 간 대진에 충분히 차이를 두기 때문에 각 지구의 1위 팀들이 ‘지구 우승자’라는 이름을 갖고 리그 우승자 자리를 가릴 수 있다.

그러나 단일리그에서는 이런 명분이 없다. 팀 간의 순위가 이미 페넌트 레이스에서 결정된 상태다. 이미 순위가 결정돼 있는데 새삼 포스트시즌을 열어 다시 순위를 가르겠다는 것은 명분이 떨어지고, 명분이 옅으면 비판받기 쉽다.

 

KBO 포스트시즌

이것이 KBO 포스트시즌이 해마다 비판받는 이유다. KBO는 단일리그로 시작했고, 99-00년 잠시 양대리그를 시행한 것 외에는 쭉 단일리그로 진행되었다. 만약 한국에서 프로야구가 최초로 기원했다면 NL이 처음 그랬던 것처럼 포스트시즌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KBO는 흥행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포스트시즌이 있어야 했고, 억지로라도 포스트시즌을 열 명분을 만들려다 보니 뭔가 어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80년대에 시행된 전후기 리그 분할 방식은 리그 내 팀을 둘로 나눌 수 없으니 시간을 기준으로 한 리그를 둘로 나누자는 발상이다. 그 나름의 명분은 있었지만 결국 같은 팀들을 시간에 따라 인위적으로 기간별 승자를 나눈 것에 불과했다.

99-00년에 시행된 양대리그는 이와 반대로 시간은 통일하되 팀을 넷씩 분리했다. 그러나 전체 팀이 어우러져 페넌트 레이스를 치르는데 억지로 두 리그로 분리한다는 발상은 전후기 리그 방식보다 더욱 공감을 얻지 못했다. 유일한 차이는 같은 리그 팀과는 20경기를, 다른 리그 팀과는 18경기를 치른다는 점이었는데 그나마도 99년에만 적용되었다. 거기에 2000년에는 드림리그 3위인 삼성이 매직리그 1위 LG보다 승률이 높은 기형적 상황까지 연출된다. 결국 명분을 만들기 위해 나눈 양대리그는 그 명분을 완전히 잃었고, 2년 만에 폐지되고 만다.

한편 일본은 보다 ‘정상적인’ 과정을 거쳤다. 일본에서 처음 프로야구가 시작된 것은 1936년이나 당시에는 포스트시즌이 없었다. 처음 포스트시즌이 열린 것은 리그가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로 분리된 1950년. 양대리그가 되고 나서야 양 리그 승자가 맞붙는 저팬 시리즈가 열린 것이다. 미국 포스트시즌의 흥행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일리그 시절에는 포스트시즌을 시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본은 훨씬 명분을 중요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흥행과 명분 사이

물론 KBO에서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다. KBO 창립 당시에도 우선은 단일리그로 운영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양대리그로 운영하겠다는 복안이 있었다. 쌍방울이 여덟 번째 구단으로 가입한 것도 7개 구단 제도에서 오는 기형적 일정 해소라는 목적도 있었지만 양대리그 시행이라는 목적이 강했다.

그러나 8개 구단을 둘로 나눠 양대리그를 시행하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이 점은 10개 구단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본처럼 12개 구단으로 늘리기에는 인구의 한계에 부딪친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굳이 리그를 분리하는 것은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리그 창립 당시 KBO는 흥행과 명분 중에서 흥행을 선택했고, 그 결과 흥행은 잡았지만 명분은 완전히 놓쳐 버렸다. 과연 KBO는 흥행이라는 ‘집토끼’를 단속하면서 ‘집 나간 토끼’인 명분까지 잡을 수 있을 것인가. 팬들은 아직 만난 적 없는 해답을, 기다리고 있다.

3 Comments

  1. 1947년 실업야구리그에서 이미 양대리그제가 시행되었습니다
    그 뒤에 전쟁으로 리그가 없어졌다 다시 실업야구리그가 생겼을때도 금융리그 / 실업리그로 리그를 나눴죠
    70년대에 리그도 나누고 전기 후기도 나눴다가 프로야구가 생기면서 그 제도를 그대로 가져왔는데
    프로는 팀 숫자가 작아서 전기 후기만 나누고 리그를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코리언시리즈는 그대로 갖고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리그 형태가 나온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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