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은 길들여야 제맛?

[야구공작소 이창우] 길들이다. 사전에서는 이를 ‘(짐승을) 부리기 좋게 가르치다’, ‘(물건을) 오래 매만져서 보기 좋거나 쓰기 좋게 만들다’라고 정의한다. 일상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길들인다. 반려동물을 ‘부리기 좋게 가르치기’도 하고, 야구 글러브나 신발을 ‘오래 매만져서 보기 좋거나 쓰기 좋게 만들기’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꼭 짐승이나 물건만이 길들이기의 대상이 되라는 법은 없다. 때로는 사람이 사람을 길들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사수가 신입사원을 길들인다고 할 수 있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선 신인을 못살게 구는 행위를 ‘Rookie Hazing’이라고 지칭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메이저리그에는 매년 9월이 되면 신인에게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입히는 ‘루키 헤이징 데이’도 있었다. 최근 화려한 활약을 보여주는 류현진이나, 리그 최고의 스타인 마이크 트라웃도 루키 헤이징 데이엔 영락없는 신인의 모습 그 자체였다.


류현진 (좌)와 마이크 트라웃(우)의 루키 헤이징 데이 모습 (출처=flickr.com)

루키 헤이징 데이는 팬과 선수단이 가볍게 웃고 떠들 수 있는 좋은 이벤트였다. 하지만 루키 헤이징이 경기 내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면 어떨까?

사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의문을 품어봤을지도 모른다. 심판이 신인을 길들이기 위해 스트라이크 존을 다소 좁게 설정한다는 의문 말이다. 실제로 야구에서 ‘신인 길들이기’에 대한 의혹은 심심찮게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현장이나 팬이 이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손에 꼽을지도 모르겠다. 이 문제가 통계적으로 증명된 바 없는 일종의 도시괴담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련의 이유로 신인 길들이기에 대한 의혹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하지만 호기심은 해결해야 인지상정인 법! 그래서 준비해봤다. 이름하여 야공소 호기심 천국! 신인 길들이기가 과연 허무맹랑한 괴담인지, 아니면 합리적 의심인지 지금부터 살펴보자.

 

조사 조건

조사 대상은 2008년 이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타자 중 베이스볼 서번트에서 기록을 찾을 수 있는 40명이다. 순수 신인으로서의 기록만 보기 위해 데뷔 시즌의 기록만 활용했다. 요컨대 총 40시즌의 기록이 되는 셈이다.

이들과 기록을 비교할 베테랑 집단도 똑같이 40시즌을 선택했다. 먼저 2008년 이후 최소 세 시즌 이상 규정타석(502타석)을 채운 선수를 선택하고, 다시 이 선수들의 단일 시즌들 중 타석수가 많은 순으로 40위까지 시즌을 선택했다. 단, 기록이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선수의 시즌이 여러 번 40위 안에 들었더라도 그 중 가장 타석이 많은 한 시즌만 표본에 포함시켰다.

비교 항목은 각 집단의 ‘스트라이크 존에서 벗어났으나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은 공(이하 A)’과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왔으나 볼 판정을 받은 공(이하 B)’이다. 조사는 타자가 대상으므로 B/A가 높을수록 유리하다.

그리고 만약 ‘신인 길들이기’가 존재한다면 베테랑 집단의 B/A가 신인 집단보다 높을 것이다.

 

그래서 결과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던 신인 길들이기. 지금부터 이미지와 통계 자료로 그 모든 의혹을 종결하겠다. 조사 진행에 앞서 한가지만 밝히고자 한다. 필자는 신인 길들이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를 위해 데이터 조작은 일절 하지 않았다.

다음은 신인 집단과 베테랑 집단의 A를 비교한 자료다.

이미지 상으로는 딱히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단순히 을의 타석 수가 더 많기 때문에 갑보다 색깔이 좀 더 짙을 뿐이다. 다만 전체 투구에서 A의 비중은 신인이 3.55, 베테랑이 3.18로 신인이 약간 더 높았다. 그러면 B는 어땠을까?

마찬가지로 이미지로는 큰 차이를 알기 힘들었다. 다만 A보다 색이 다소 진하고, 베테랑의 B가 신인보다 많아 보인다. 심지어 우측 그림에선 스트라이크 존 한복판에 들어왔는데도 볼 판정을 받은 공도 몇 개 있다. 설마 베테랑이 손해를 본 걸까?

하지만 이 추측도 착각이었다. 전체 투구에서 B의 비중은 신인이 3.16, 베테랑이 2.87로 오히려 B도 신인이 더 많은 편이었다.

볼카운트를 감안하지 않은 단순 비교에서는 눈에 띄는 차이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는 어떨까? 마지막 스트라이크 하나가 삼진을 초래하는 상황이라면 ‘신인 길들이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음은 2S 상황에서 신인과 베테랑의 A를 비교한 것이다.

*2S 상황은 0-2, 1-2, 2-2, 3-2로 총 네 가지 종류다.

2S 상황 또한 큰 차이는 없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투 스트라이크 상황일 때 존의 좌우 판정이 후해진다는 것 정도다. 마지막으로 2S 상황에서 신인과 베테랑의 B를 비교해 보자.

마찬가지다. 볼의 분포 차이보다는 데이터의 양 차이만 느껴질 뿐이었다. 정말 ‘신인 길들이기’는 존재하지 않았던 걸까? 그림으론 명확한 결과를 판별하기 어렵기에 수치를 표로 정리해봤다.

우선 첫 번째 표를 보면 신인과 베테랑 모두 A가 B보다 많음을 알 수 있다. 신인이든 베테랑이든 타자가 투수보다 아주 약간 손해를 본다고 말할 수 있다.

전체 투구수 대비 비율에서는 신인이 베테랑보다 A와 B 모두 약간 많은 편이다. ‘신인 길들이기’가 실재한다면 신인이 베테랑보다 A는 높고 B는 낮아야 하지만 B의 비율도 신인이 더 높았다.

2S 상황에서는 신인과 베테랑 모두 B가 A보다 많았다. 티끌만큼이나마 타자가 투수보다 이득을 봤다. 전체 투구수 대비 비율로는 앞과 마찬가지로 2S 상황에서도 신인의 A와 B 모두 베테랑보다 높았다.

전체적인 비율을 말해주는 B/A에서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첫 번째 표에서는 베테랑의 B/A가 신인보다 높지만 그 차이가 0.04에 불과하기에 유의미하다고 보기 어려웠다.

두 번째 표에선 신인의 B/A가 베테랑보다 높다. 게다가 격차 또한 0.13으로 평소의 3배에 달한다. 하지만 2S 상황은 표본 수가 훨씬 작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신인의 A와 B의 차이는 4개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신인 길들이기’는 허상이었다!

 

괴담은 괴담이었을 뿐…

아쉽게도(?) 필자가 원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수치의 차이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그것이 ‘차별’을 의미하기에는 다소 미약한 수준에 그쳤다.

결국 야구계에 존재하는 ‘신인 길들이기’는 우스꽝스러운 복장 입히기나 커피나 도넛 심부름 정도가 전부였다. 물론 우리가 모르는 다양한 종류의 길들이기가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그것이 경기 내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야공소 호기심 천국은 여기서 막을 내린다. 호기심은 호기심일 뿐, 앞으로 자신의 최애 신인이 ‘신인 길들이기’를 당했다고 억울해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

 

에디터=야구공작소 김남우, 오연우, 조예은

기록 출처 = 베이스볼 서번트, 베이스볼 레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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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 저도 ‘있었다고’ 알고 있었던 사람 중의 1명입니다,, ㅋㅋ
      기회가 된다면 KBO도 한번 실험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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