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의 차세대 ‘킬러 비’ 혹은 ‘코어 4’

마이애미 말린스 감독 돈 매팅리(55)는 선수로는 불운했다.

그는 명문 뉴욕 양키스를 이끈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가 뛰던 첫 13년 동안 양키스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렇게 쌓이던 한이 14년째인 1995년 플레이오프 진출로 해소되는가 했다. 그마저도 첫 관문인 아메리칸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끝이 났다. 이 시리즈를 끝으로 매팅리는 유니폼을 벗었다. 양키스는 간판 스타였지만, 그가 뛰던 시절에는 ‘양키스의 암흑기’라는 오명이 붙어 있다.

그의 뒤를 이은 세대는 달랐다. 마치 매팅리의 은퇴를 기다렸다는 듯이 1996년 양키스는 곧바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1년을 쉰 뒤 1998년, 1999년, 2000년까지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뤄냈다. 다시금 양키스의 전성기가 펼쳐졌다. 그 중심에는 4명의 팀 유망주 출신 선수들이 있었다. 선발 앤디 페티트, 포수 호르헤 포사다,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 그리고 유격수 데릭 지터. 4명의 중심축, 일명 ‘코어 4(Core 4)’였다.

조금 시기를 달리하여 19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초반. 당시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의 휴스턴 애스트로스에도 코어 4에 비견될 막강한 타선이 있었다. 크레이그 비지오(Biggio), 데릭 벨(Bell), 제프 배그웰(Bagwell) 등으로 이뤄진 ‘킬러 비(Killer Bs)’ 타선이었다. 데릭 벨이 2000년 팀을 떠난 뒤에는 2001년 랜스 버크만(Berkman)이 킬러 비의 새 일원으로 합류했다.

코어 4와 킬러 비는 비슷한 시기에 중흥기를 가졌던 서로 다른 두 팀을 이끈 축이었다. 양키스는 코어 4와 함께 4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했고, 휴스턴은 킬러 비와 함께 1998년 팀 기록인 시즌 102승을 거머쥐었다. 이후 킬러 비는 2005년 배그웰, 2007년 비지오의 잇따른 은퇴로 자연스럽게 해체됐다. 코어 4는 2011년 포사다의 은퇴를 시작으로 2014년 지터가 유니폼을 벗으며 시대에 작별을 고했다.

[전문 읽기 – 일간스포츠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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