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리빌딩이 될까요?

[야구공작소 이승호] 11월 22일, LG 트윈스는 여러 명의 선수를 떠나보냈다. 그중에서도 정성훈의 방출은 LG 팬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꾸준한 활약으로 팀을 지탱해온 베테랑이 이런 말로를 맞을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2008년 LG와 4년 15억 5천만 원에 인연을 맺은 정성훈은 기대대로의 좋은 활약을 펼쳤고, 2012시즌을 마치고 얻은 재자격 FA에서도 4년 34억 원에 LG에 잔류했다. 2012시즌 당시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던 그에게 더 많은 돈을 제시한 구단도 있었으나 그는 LG를 선택했다. 많게는 수십억을 포기하며 LG맨으로 남기를 자처한 것이다. 이후 2013시즌 도중에는 “LG에 남길 잘했다.”고 말하며 LG 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했다. 팀에 대한 그의 애정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정성훈은 프랜차이즈 스타는 아니다. 해태에서 데뷔했고, 현대를 거쳐 29세의 나이에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선수다. 하지만 정성훈은 단순한 이적생도 아니었다. 이적 후 매년 꾸준한 활약을 펼치면서 LG에서만 1000개가 넘는 안타를 때려냈고, 통산 WAR의 절반 이상을 LG 소속으로 쌓았다.

정성훈은 LG에서 27.19의 WAR을 쌓았다. LG의 3루수로서는 18.6 남짓의 WAR을 기록했는데, 이는 역대 LG 3루수 중 최고 기록이다. 3루수 부문 최다 안타와 최다 홈런의 주인공도 정성훈이다. LG 팬들에게는 역대 최고의 3루수였던 셈이다

이런 지속적인 활약 속에서 맞이한 2016시즌, 정성훈은 마침내 우타자로는 두 번째로 통산 2천 안타를 달성한 선수가 됐다. 어느덧 LG는 그가 가장 오랜 기간 몸담은 팀이 되어 있었고, 팬들도 그를 진정한 LG맨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2017시즌에도 다르지 않았다. 늘 그랬듯 본인에게 불리한 조건(1년 7억)으로 계약하며 시즌을 시작했다. 그리고 팀 타선의 파괴력이 지독히도 약했던  2017시즌에도 적은 출장 기회 속에서 쏠쏠한 활약을 보이며 팀의 기둥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비록 나이가 들면서 수비는 점점 쇠퇴했지만 타격은 여전히 건재했다. 올 시즌까지도 그는 어떤 타순을 맡든 든든한 존재였다. 몇몇 1루수들이 가능성을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정성훈을 확실히 밀어낼 선수는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팀 타선을 이끌며 자신의 가치를 발휘하던 정성훈의 방출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 대다수 팬들의 반응이었다.

LG 트윈스의 1루 자원들이 기록한 성적. 이들은 정성훈보다 훨씬 많은 기회를 받았다. 풀타임을 뛸 수 없다고는 해도, 정성훈은 명백히 팀에서 손꼽히는 타격능력을 보유한 타자였다.

 

무엇이 팬들의 분노를 샀는가

근본적으로는 팀에 헌신한 베테랑에 대한 소홀한 대우가 가장 큰 문제다. LG는 이미 2016시즌을 마치고 이병규를 밀어내듯 은퇴시켰다. 비록 프랜차이즈는 아니지만, 이진영도 40인 외로 분류하면서 사실상 포기해버리기도 했다. 여기에 남아 있던 정성훈마저 방출되니 팬들의 공분은 당연한 일이었다.

팬들의 분노는 단순히 정성훈의 방출만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다. LG는 2016시즌에도 프랜차이즈 스타 이병규를 반강제로 은퇴시켰다. 2군에서의 맹활약에도 구단은 끝내 이병규를 외면했다. (사진=LG 트윈스 제공)

또한 구단의 허울에 대한 분노도 포함돼 있다. “리빌딩”, 정성훈을 방출한 이유다. 지난 3년을 관통했던 이 단어가 이번 겨울에도 등장한 것이다. 3년간 습관처럼 외쳐온 리빌딩의 결과가 부질없다는 걸 LG 팬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구단은 이번에도 리빌딩을 비난의 면죄부로 이용하고 있다. 몇 년째 모든 상황을 리빌딩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리빌딩은 프로구단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과정임이 사실이다. 구단이 추가적인 1~2승을 위해 정성훈을 끌어안고 가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 있다는 것도 납득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건 순리가 아니다. 구단은 정성훈과 최소한이라도 소통했어야 했다. 팀에 헌신해온 황혼의 선수와 최소한의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그리도 어려웠을까?

이미 수차례의 계약에서 불리한 조건을 수용해왔던 정성훈이다. 2009년 이후로 리그에서 FA 계약을 맺은 선수들의 1 WAR당 금액은 4억 원이 넘는다. 반면 정성훈이 맺은 계약들의 1 WAR당 금액은 그 절반인 2억 원 정도였다. 그만큼 그는 대표적인 ‘모범 FA’로 팀에 기여해왔다. 그러나 구단은 끝까지 그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지 않았다.

만약 정성훈이 구단이 내민 최소한의 금액에 계약했다면 팬들은 내년에도 그와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했을 것이다. 설령 그가 구단의 제안에 만족하지 못하고 시장으로 나갔다 해도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하며 그를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구단의 처사는 일방적이고 극단적이었다. 숱한 비난을 받았던 지난 이병규, 이진영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끝내 구단을 등지지 못했던 이상훈. LG에 몸 담은 선수들에 대한 대우는 늘 형편없었다. 구단은 스타들의 충섬심에 언제쯤 응답할까. (사진=방송화면 캡쳐)

 

팬이 원하는 것,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것

프로구단은 팬이 있기에 존재한다. 팬들이 우승을 원하기에 구단은 승리를 위해 싸운다. 이러한 논리에 입각하면 구단은 철저히 효율 중심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어쩌면 구단은 메이저리그식 운영이라는 명목하에 일을 진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프랜차이즈 스타들과의 거듭된 갈등 속에서도 우승을 거머쥔 테오 엡스타인의 성공신화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팬들의 우승 갈증은 무조건적인 승리지향과는 다르다. 극단적인 예로, 수천억을 쏟아 특급 선수들로 라인업을 꾸려 우승한다면 그 우승이 팬들에게 대단한 가치로 다가갈까? 아마 아닐 것이다. 팬들은 우승 그 자체보다 우승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감동을 얻는다.

팬들의 응원에는 팀에 헌신한 선수들에 대한 애정이 크게 묻어 있다. 그리고 LG 팬들에게 정성훈은 팀에 가장 헌신한 선수이며 대들보였다. 때문에 팬들이 꿈꿨던 LG의 우승 장면에는 반지를 낀 정성훈의 모습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벌써부터 두렵다

내년 시즌을 끝으로 박용택의 계약이 종료된다. 박용택은 이미 수차례 자신의 몸값을 낮추며 LG에 남았던 바 있는 선수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구단이 그를 정당하게 대우해주려 할지가 걱정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불혹에 다가선 박용택의 충성심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면 지나친 걱정일까?

따뜻한 스토브리그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올겨울이 유난히 더 춥게 느껴진다. 구단의 칼날이 결국에는 심장마저 도려내지 않을까? 이제는 두렵기만 하다.

 

기록 출처: stat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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