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할러데이 명장면 10

로이 할러데이(사진: mlb.com 영상 캡처)

 

[야구공작소 반승주] 너무 갑자기 떠났다. 그것도 너무 일찍. ‘할교수’ 로이 할러데이의 사망 소식이 지난 8일 오전 들려왔다. 2013년 12월 9일(이하 현지 시간) 갑작스런 은퇴 발표로 그라운드에서 사라졌던 그가 세상과 영원히 이별하고 말았다. 그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그가 뛰었던 토론토와 필라델피아 구단을 비롯한 많은 선수들이 깊은 애도를 표했다.

할러데이는 짧으면 짧고 길면 길다고 할 수 있는 16년을 메이저리그에서 뛰면서 수많은 하이라이트 필름을 남겼다. 그의 명장면을 간추려봤다.

 

1. 그다운 데뷔(1998년 9월 27일)

콜로라도 주 덴버 출신인 할러데이는 알바다 웨스트 고등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1995년 드래프트 1라운드 17순위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지명됐다. 4년여의 마이너 기간을 거친 뒤 1998년 9월 20일 데뷔전(5이닝 3실점)을 가진 할러데이는 2번째 경기에서 대형사고를 칠 뻔했다. 9회 2아웃까지 오는 동안 단 하나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5회 2루수의 실책으로 토니 클락에게 1루를 내준 것 외에는 디트로이트 타자들을 모두 범타로 처리했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남겨두고 디트로이트는 대타를 투입했는데, 할러데이는 이 대타 바비 히긴슨을 상대로 초구 홈런을 내주고 말았다. 순식간에 노히터와 완봉승이 날아가버린 순간이었다. 하지만 할러데이는 후속 타자를 잡아내면서 95구 완투승을 따냈다. 이날 할러데이의 완투는 1979년 필 허프먼 이후 토론토 최연소 기록. 또한 데뷔 첫 2경기 이내에 1피안타 완투를 기록한 역대 11번째 선수였으며, 여기에 무사사구 기준을 추가하면 그와 1986년 지미 존스만이 남는다.

 

2. 싱글A부터 메이저리그까지(2001년 10월 5일)

할러데이는 1999시즌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로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빅리그 무대에서 보여준 투구는 유망주 시절 기대했던 모습과는 달랐다.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위력적이었던 싱커와 너클커브의 조합은 여전했으나 제구가 말썽이었다. 할러데이는 첫 풀타임 시즌이었던 1999년 149.1이닝을 던지면서 79볼넷을 내줬으며, 2000년에 기록한 10.64의 평균자책점은 지금까지도 60이닝 기준 최악의 평균자책점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는 싱글A로 내려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총체적인 점검을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멜 퀸 투수 인스트럭터였다. 할러데이는 퀸과 함께 팔 각도를 낮추면서 공의 움직임을 만드는데 힘을 기울이는 한편 정신적인 부분을 다잡는데도 노력했다. 할러데이는 그의 투구 자료를 보관하며 분석했고, 이 과정에서 진정한 투구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3개월여의 교정 끝에 다시 메이저리그에 복귀한 할러데이는 복귀 첫 구원등판에서 다소 부진(2.1이닝 6실점)했으나 이후 선발 15경기에서 4승 3패 평균 자책점 2.97을 기록한 뒤, 시즌 마지막 경기인 클리블랜드전에서 9이닝 8K 무사사구 완봉승을 달성하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그가 경기를 마무리 짓는데 필요했던 투구수는 단 83구. 그의 67번의 완투 경기 가운데 최소 투구수 경기였다.

 

3. 10이닝 완봉(2003년 9월 6일)

2003년 첫 4월을 승리 없이 2패 평균 자책점 4.89로 마친 할러데이는 이후 3달 동안 15연승을 내달렸다. 9월 첫 등판에서도 시즌 4번째 완투승을 따낸 할러데이는 또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8회 2사까지 노히터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라몬 산티아고 대신 들어선 대타 케빈 위트에게 2루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9회에도 올라온 할러데이는 첫 두 타자에게 안타를 내줬으나 후속 타자를 병살타와 뜬공으로 마무리하며 9이닝을 모두 책임졌다. 문제는 토론토 타선이 단 1점도 내지 못한 것. 9회까지 89구에 그친 할러데이는 10회에도 무리 없이 마운드에 올라섰고 공 10개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결국 10회말 터진 끝내기로 할러데이는 10이닝 완봉승을 이끌어냈다.

이날 할러데이가 만들어낸 10이닝 완봉승은 라이브볼 시대 이후 262번밖에 나오지 않은 희귀한 기록이다(같은 기간 노히터 217회, 이후 2005년에 마크 멀더가 한 차례 달성). 할러데이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한 2이닝 정도는 더 던질 수 있었다”고 답했다. 카를로스 토스카 감독도 비슷한 생각이었고, 할러데이의 공을 받았던 케빈 캐시는 “할러데이는 내일까지 던질 기세였다”는 대답을 했다. 경기 내용도 좋았다. 싱커와 커터가 빛을 발하며 무려 21개의 땅볼을 유도했으며, 5개의 삼진은 모두 너클커브로 이끌어냈다. 10이닝 경기를 진행했음에도 경기 시간은 단 2시간 3분.

 

4. 팀 한 시즌 역대 최다승 달성(2003년 9월 27일)

9월 17일 디트로이트 원정에서 완봉승으로 21승을 따낸 할러데이는 시즌 막판까지 에스테반 로아이자, 팀 허드슨 등과 치열한 사이영상 경쟁을 펼쳤다. 시즌 최종전에서 클리블랜드를 만난 할러데이는 1회부터 2실점했으나 타선의 지원으로 승리투수 요건을 갖춰 나갔다. 이후 5회에는 자니 페랄타에게, 7회에는 브랜든 필립스에게 적시타를 내주며 추격을 허용했지만 동점을 허용하지 않고 끝까지 경기를 마쳤다. 22승째를 거둔 할러데이는 1992년의 데이브 스튜어트, 1997년의 로저 클레멘스가 갖고 있던 토론토 역대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또한 2003년 9월에만 무려 5번의 완투를 만들어냈다. 1995년 이후 월간 완투 5차례를 달성한 선수는 할러데이와 팻 행트겐(1996년 8월), 그리고 커트 실링뿐이다(1999년 5월). 시즌 후 수상자 발표에서 할러데이는 통산 첫 번째 사이영상을 따냈다.

 

5. 3경기 연속 완투패(2008년 4월 29일)

4월 13일 텍사스 원정에서 9이닝 1실점 완투승을 따낸 할러데이는 이후 등판에서 9이닝 4실점, 8이닝 5실점 완투패로 물러났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고전했던 경기장 중 하나인 펜웨이 파크로 원정을 떠났다. 상대 투수는 보스턴의 젊은 투수 존 레스터. 당시 섭씨 8도의 쌀쌀한 날씨에도 양팀 선발투수는 치열한 투수전을 펼쳤다. 8회까지 양팀이 쳐낸 안타수는 4개에 불과했다. 0-0으로 맞선 9회말 또다시 마운드에 올라선 할러데이는 2사 후 데이빗 오티스에게 볼넷을 허용했고, 매니 라미레스와 케빈 유킬리스에게 연속 안타를 내주면서 3경기 연속으로 완투패를 당했다.

할러데이는 2008시즌 첫 6경기에서 49.2이닝을 던졌는데, 이 6경기에서 토론토 불펜진이 투구한 이닝은 단 2이닝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할러데이는 3경기 연속 완투패를 포함한 4패를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토론토 타선이 같은 기간 동안 평균 2.8점을 지원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6. 마지막이지도 모를 경기에서(2009년 7월 24일)

할러데이는 16시즌을 활약하면서 선수 생활 마지막을 제외하고는 FA 권리를 행사한 적이 없다. FA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2004년 4년 4200만 달러, 2006년 3년 4000만 달러의 팀 친화적인 연장 계약을 맺으며 팀이 포스트시즌 컨텐더로 올라서길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의 맹주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가 버티고 있는 포스트시즌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FA가 1년여 남은 상황에서 할러데이의 트레이드 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소문은 데드라인인 7월말에 접어들수록 더욱 심해졌고, 그중에는 필라델피아로 이적할 수도 있는 소문도 있었다. 이에 진짜로 할러데이가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품은 토론토 팬들이 할러데이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경기에 모이기 시작했다.

할러데이는 단 하나의 적시타도 허용하지 않은 채 삼진 10개를 뽑아내며 9이닝을 책임졌다(희생플라이 2개로 2실점). 하지만 승부가 2-2에서 결정되지 않았고, 토론토는 연장에서 패했다. 자신의 처지와는 상관없이 할러데이는 다시 한 번 최고의 경기를 펼쳤다. 할러데이는 시즌 마지막 2경기를 완봉승으로 마무리하고 평균 자책점을 2점대로 끌어내렸다. 그리고 필라델피아로 떠났다.

 

7. 퍼펙트 게임(2010년 5월 29일)

지명타자 제도의 아메리칸리그에서도 최고의 격전지로 불리던 동부지구에서 활약해온 할러데이가 내셔널리그로 이적하면서 그의 활약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고조됐다. 내셔널리그의 할러데이는 기대대로였다. 첫 4경기에서 완투 2회(완봉 1회)포함 4연승 평균자책점 0.82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 정점은 한 달 후에 발생했다. 메이저리그 20번째 퍼펙트게임이었다.

상대 플로리다 타선은 할러데이의 피칭에 홀린 듯한 모습이었다. 할러데이의 싱커, 커터, 너클커브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9회 선두타자로 나선 마이크 램의 깊숙한 중견수 방면 타구가 거의 유일한 저항이었다. 간판 타자인 3번 핸리 라미레스를 상대로 잡아낸 2번의 루킹 삼진 아웃은 이날 투구의 백미였다.

한편, 같은 해 5월 9일 오클랜드의 댈러스 브레이든이 할러데이보다 조금 앞서 역대 19번째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바 있는데, 할러데이의 달성으로 2010시즌은 1880년 이후 처음으로 한 시즌에 퍼펙트게임이 2차례 나온 시즌으로 기록됐다(이후 2012년 3차례 달성).

8. 가을 대관식(2010년 10월 6일)

할러데이는 9월 27일 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9이닝 2피안타 6K 무실점 완봉승으로 필라델피아의 4년 연속 지구 우승을 이끌었다. 드디어 할러데이에게도 그리고 그리던 가을야구 무대가 눈앞에 찾아왔다. 상대는 쉽지 않았다. 팀 득점, 홈런, 타율, OPS 모두에서 리그 1위를 차지했던 신시내티였다.

첫 가을 야구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할러데이의 피칭은 거침이 없었다. 리그 최강 타선을 자랑하던 신시내티가 메이저리그 최고 에이스를 상대로 해낸 출루는 제이 브루스가 5회에 얻어낸 볼넷 하나뿐이었다. 할러데이는 28타자만을 상대하며 역대 포스트시즌 2번째 노히터 경기를 완성했다. 5월 퍼펙트게임을 만들어낸 지 130일 만의 일이었다. 이 포스트시즌 노히터 달성으로 할러데이는 자니 반더미어(1938), 앨리 레이놀즈(1951), 버질 트럭스(1952), 놀란 라이언(1973)에 이어 한 시즌에 2번의 노히터를 달성한 5번째 선수가 됐다(이후 2015년 맥스 슈어저 달성).

 

9. 카펜터와의 만남(2011년 10월 7일)

2010년 챔피언십시리즈 문턱에서 무너진 필라델피아는 당시 선발 최대어인 클리프 리마저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2011년 정규시즌 동안 필라델피아는 ‘판타스틱 4’로 불리던 강력한 선발진을 앞세워 팀 역대 최다승인 102승을 거뒀다. 디비전시리즈 상대였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도 4차전까지 2승 2패로 호각세를 이뤘다. 1차전에 나섰던 할러데이는 5차전 출격을 준비했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상대는 토론토 시절 함께했던 크리스 카펜터였다(정규시즌 맞대결 없음).

할러데이는 첫 두 타자에게 연속으로 장타를 허용하며 선취점을 내줬다. 하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으며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문제는 필라델피아 타선도 카펜터를 상대로 1점도 따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카펜터는 9회까지 마운드에 서 있었다.

할러데이는 5차전 경기를 마치고 유니폼을 갈아입기에 앞서 자신의 라커 앞에서 20분 남짓을 앉아 있었다. 승리하지 못한 경기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었다. 이내 마음을 가다듬은 할러데이는 카펜터에게 승리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시즌이 끝나고 이 둘은 남아메리카 아마존으로 낚시 여행을 떠났다고.

 

10. 마지막 Holiday(2013년 4월 19일)

2012년 4월 동안 할러데이는 3승 2패 평균 자책점 1.95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후 등과 어깨 부상에 시달리면서 2005년 이후 처음으로 200이닝 투구에 실패하고 말았다. 부상 복귀 이후에도 구속이 현저히 감소된 모습이었다.

2013년 개막 첫 2경기에서 크게 부진했던 할러데이는 3번째 마이애미 원정에서 8이닝 1실점으로 첫 승을 거두고 홈으로 돌아왔다. 시즌 4번째 경기의 상대는 세인트루이스. 할러데이는 카를로스 벨트란과 맷 할러데이에 홈런을 내주면서 2실점했지만, 홈런 외에는 단 하나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고 7회까지 호투했다. 사실 7회까지 기록된 투구수가 109개였던 만큼 완투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 내린 비로 인해 경기는 7회초가 끝나고 중단되었고, 그대로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할러데이의 통산 67번째 완투 경기. 그가 동료 불펜 투수들에게 선물한 마지막 휴식 선물이었다.

기록 출처: Baseball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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