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저스의 만능열쇠, 크리스 테일러

[야구공작소 오정택] 2016년 LA다저스는 시애틀 매리너스와 사소해 보이는 트레이드를 진행했다. 다저스는 2010년 1라운더로 지명했던 선발투수 잭 리를 시애틀로 보내고, 시애틀은 2012년 5라운드에 지명했던 내야수 크리스 테일러를 다저스로 보냈다. 겉보기엔 잠재력 있는 유망주들의 트레이드로 보였지만 사실 ‘그저 그런 선수들로 뎁스를 채우기 위한 트레이드’라는 평이 다수였다.

잭 리는 다저스에서 1차지명을 받은 탑 유망주였다. 2012년 MLB.COM, Baseball America, Baseball Prospectus에서 모두 70위권의 유망주 순위를 기록하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3년 후 세 곳 모두 랭킹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었고, 이후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MLB 총 4경기 / 8.53 ERA)

크리스 테일러는 팀에 합류한지 2년만에 빅리그의 부름을 받았고, 그 해 46경기 동안 2할 8푼대의 타율로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그 가능성이 전부였던 선수였다. 다음 시즌 테일러는 1할 7푼의 타율을 기록하며 마이너리그로 강등됐다. 이후 토론토에서도 잠깐 기회를 받았지만 부진하였고, 내야수로 다양한 포지션을 설 수 있다는 것 외에는 큰 장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별거 아닌 줄 알았던’ 이 트레이드는 올 시즌 다저스의 함박웃음으로 끝을 맺고 있다. 잭 리는 트리플 A에서 7점대 ERA로 부진한 반면 크리스 테일러는 타격에서 큰 성장을 이뤄내며 다저스의 슈퍼 유틸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작

시애틀 시절의 크리스 테일러 (사진=Wikimedia Commons)

최근 테일러는 LA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작년 트레이드 당시를 떠올리며 “새로운 시작점이 필요했다. 다저스로 트레이드될 때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게 기대됐다”고 말했다. 이런 기대감에도 다저스 합류 직후 .207/.258/.362라는 처참한 슬래시라인을 기록한 그는 2017 시즌을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다저스의 주전 2루수로 예상됐던 로건 포사이드가 부상을 당하며 다시 한번 기회가 왔다. 테일러는 콜업 후 지금까지 3할의 타율과 15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그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타격폼의 교정, 그리고 레그킥

앞서 언급했듯 테일러의 2016 시즌은 앞서 부진했던 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이는 테일러가 본인의 스윙을 고치기로 결심하는데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시즌 종료 후 테일러는 애리조나에서 만난 다저스 산하의 스코요크(Robert Van Scoyoc) 타격 코치를 찾아가 2주 동안 그가 운영하는 훈련장에서 타격폼을 수정했다. 스코요크 코치는 테일러가 속구를 커트할 수 있도록 손의 위치를 조정함과 동시에 레그킥을 더했다. 또 어정쩡한 타구보다는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를 만들어내는데 집중하도록 했다. 레그킥으로 타격에 눈을 뜬 저스틴 터너도 여기에 약간의 조언을 보탰다.

타격폼의 변경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레그킥의 폭을 넓히자 골반을 고정시킬 수 있었고, 불필요한 힘을 줄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타구의 질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올 시즌 테일러의 하드컨택 비율은 기존에 가장 기회를 많이 받았던 2014년의 2배에 이른다(17.2% →34.4%). 80마일 후반대를 유지하던 타구의 속도도 올해는 95마일 이상을 기록 중이다.

그림1. 지난 3년(14~16)과 올 시즌의 히트맵. 타구가 훨씬 고르게 멀리 나가고 있다.

타구의 질이 좋아지자 장타가 크게 늘었다. 테일러의 현재 순수장타율(ISO .222)은 커리어 최대치이며 다저스의 주전 야수들 중에서는 코디 벨린저에 뒤이은 2위다. 속구를 커트할 수 있게 되자 더 많은 공을 볼 수 있게 됐고, 더 신중한 승부를 할 수 있게 됐다 (타석당 투구수 3.98개 커리어 최다). 당겨치는 데만 치중하지 않는 것도 강점이다. 올 시즌 테일러의 당겨친 타구 비율은 역대 최저이다.(Pull% 39.4&)

올 시즌 테일러가 결정적인 상황에서 보여주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득점권에서 극강인 모습(.330/.417/.610 7홈런), 팀 타이 기록인 올 시즌 3개의 만루홈런, 그리고 Late&Close* 상황에서의 맹타(.393/.456/.607)는 팀 동료 저스틴 터너의 ‘터너 타임’을 떠올리게 한다.

*Late&Close : 7회 이후로 자팀이 동점이거나, 1점차거나, 동점주자가 루상에 있는 상황.

또 다른 변신, 외야수?

테일러의 변화는 타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올 시즌 테일러는 수비에서도 큰 변화를 겪었다. 커리어 내내 내야에 머물렀고, 4월 콜업 이후에도 계속 내야 수비를 맡았던 테일러는 로건 포사이드가 부상에서 회복하자 자리를 비워주어야 했다. 하지만 너무나 뜨거운 그의 타격 때문에 다저스는 모험을 결정한다. 시즌아웃을 당한 앤드류 톨스, 장기부상을 당한 작 피더슨을 대신해 테일러를 수비부담이 큰 중견수로 전환시킨 것이다. 이는 다저스 벤치에 테일러를 각인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표1. 올 시즌 크리스 테일러의 주요 수비 스탯

위의 표에서 보듯(표1), 테일러는 내야에서보다 외야에서 오히려 좋은 수비를 보여주고 있다. 외야 전 포지션에서 DRS, UZR 모두 플러스 수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좌익수로서의 수비 수치는 팀의 어느 선수보다도 좋다. 여태까지 단 한번도 외야에 서지 않은 선수가, 시즌 중에 포지션 전향을 했음에도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내야수에서 중견수로 전향해 성공한 경우는 이안 데스몬드, 빌리 해밀턴 정도를 제외하고는 흔치 않다. 결과적으로 테일러는 다저스의 벤치에 더 많은 옵션을 부여하며 2루, 3루, 유격, 중견, 좌익수 등 다양한 위치에서 선발기회를 잡고 있다.

제2의 터너가 아닌, 제1의 테일러

그렇다면 테일러는 앞으로 어떤 선수로 남을 수 있을까? 올 시즌 그의 기록에서는 하나의 특이점이 눈에 띈다. 바로 BABIP*가 .394으로 매우 높게 형성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아직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다. 테일러의 높은 BABIP가 운이 좋았던 덕분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는 유망주 시절부터 높은 BABIP를 기록해왔기 때문이다(표2). 그 이유는 테일러의 높은 라인드라이브 타구 비율에 있다.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계속해서 20%이상의 수치를 기록한 테일러의 올해 라인드라이브 타구 비율은 25%에 달한다. 이는 테일러의 빠른 주력에 더해 타구가 안타가 될 확률을 높여줬다.

결국 그의 높은 BABIP는 그의 타격 성향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지금 같은 높은 수치를 유지하기는 어렵겠지만, 올 시즌이 단순히 ‘플루크’가 아닐 것이라는 예상을 해볼 수는 있다.

*BABIP : 타구 인플레이시 안타%

표2. 크리스 테일러의 마이너리그 BABIP와 라인드라이브 타구 비율

백업 선수로서의 커리어, 레그킥 장착 후 변화한 타격, 뛰어난 클러치 본능 등으로 올 시즌의 테일러는 몇 년 전의 저스틴 터너와 비교대상이 되고 있다. 터너는 다저스에서의 변화를 일시적이 아닌 영구적인 변화로 굳히는데 성공하였고, 현재 다저스의 슈퍼스타로 인생역전을 이뤄냈다. 다저스에서 그와 유사한 반등을 이뤄낸 테일러는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나 확실한 것은 30대가 넘어 다저스에서 변화를 이뤄낸 터너에 비해 그는 아직 20대 중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터너를 뛰어넘는 다저스의 ‘미라클 맨’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기록 출처 : Fangraphs, Baseball Savant(*9월 3일 기준), LA Times 

(사진=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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