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진 경기시간, 문제는 타고투저가 아니다

[야구공작소 오연우] “올해 서울 운동장에서 치러진 1백 81게임 평균 소요 시간은 2시간 40분이나 된다. 1백분 야구를 지향하기에 1시간의 군더더기가 있다는 얘기다.” (1981년 6월 9일 동아일보)

“야구위와 각 구단은 지난 82년 경기의 신속 진행을 위해 14개 사항에 합의했으나 관중의 쾌적한 관전 시간으로 인정되는 2시간 30분 내외의 경기 시간에 좀처럼 가까와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1986년 5월 13일 동아일보)
“또 경기 평균 시간을 2시간 40분대로 단축시키기 위해 ~ 묘안을 짜내고 있다.” (1999년 3월 30일 경향신문)

 

길어지는 경기 시간은 프로야구의 영원한 숙제다.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고대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듯이 “요즘 야구는 경기 시간이 너무 길다.”는 말도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경기 시간을 줄이기 위한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기 시간은 늘어만 갔고, 지난해에는 단축 목표 시간이 3시간 17분으로 늘어나기에 이르렀다. ‘99년의 단축 목표가 2시간 40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차이다.

경기 시간 증가의 이유로 다양한 가설이 제시되고 있는데, 최근 가장 힘을 얻고 있는 가설은 경기 시간 증가가 KBO 리그에 몰아치고 있는 타고투저 광풍 때문이라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서로 많이 치고 받을수록 경기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최장 시간 경기는 7월 9일 롯데 대 LG의 연장 11회 13-12 경기로, 양팀 합쳐 25점을 득점한 난타전이었다.

그러나 타고투저가 늘어난 경기 시간의 주범이라는 생각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격이다. 타고투저 때문에 경기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맞지만 타고투저는 주범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경기 시간에 D라는 학점을 준다면, 타고투저는 D에 -를 다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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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가장 긴 경기시간을 보이고 있는 한화 이글스, 사진=한화이글스>

 

왜 아닌가?

타고투저가 경기 시간 증가의 주범이 아닌 가장 큰 이유는, 타고투저와는 무관하게 경기 시간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ea%b2%bd%ea%b8%b0%ec%8b%9c%ea%b0%841 <연도별 경기시간과 리그 평균자책점(리그 ERA)>

위 그래프는 연도별 경기시간(파란색)과 리그 평균자책점(주황색)을 나타낸 것이다. 80-90년대에는 평균자책점과 경기시간이 어느 정도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 리그 평균자책점과는 큰 관계 없이 경기 시간은 계속 늘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경향성은 유사한 평균자책점을 보였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역대급’ 타고투저였던 1999년과 2015년, 리그 평균자책점은 각각 4.98과 4.89로 비슷하지만 경기 시간은 3시간 7분과 3시간 21분으로2015년이 훨씬 길다. 심지어 93년 이후 최악의 투고타저로 불리는 2006년(리그 ERA 3.58)의 경기 시간도 3시간 10분으로, 1999년보다 3분 더 길다.

리그 평균자책점이 경기 시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1982년부터 2015년까지 연도별 경기 시간을 리그 평균자책점과 경기당 평균 등판 투수 수에 대해 선형 회귀분석을 시행하였을 때 평균자책점 1점 증가는 약 3.76분의 경기 시간 증가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리그 평균자책점만 두고 보면 역대 최저인 ‘86년(3.08)에서 역대 최고인 올해(5.24)로 바뀌어도 경기 시간은 약 8분 정도밖에 증가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경기 시간이 늘어나는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경기 시간을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인을 생각해야 한다. 바로 경기 총 투구수이다. 점수가 많이 나는 경기의 경기 시간이 긴 이유도 본질적으로는 경기 총 투구수가 많기 때문이다. 타격이나 수비는 애당초 일어나는 빈도도 적고 걸리는 시간도 짧다. 뜬공의 체공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10초를 넘지 못하고 안타를 아무리 많이 쳐도 양 팀 합해 30개 넘기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투구수는 한 경기에 평균 300개 이상 기록된다. 투구수에 대한 고민 없이 경기 시간 문제를 논할 수 없는 이유다.

투구수가 문제라면 해결책은 두 가지다. 첫째는 투구수를 줄이는 것이고, 둘째는 투구 사이 인터벌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투구수를 인위적으로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타자에게 빨리 치라고 지시할 수도 없고 투수에게 스트라이크만 던지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인터벌 줄이기’이다. 한국시리즈 경기 시간과 정규시즌 경기 시간을 비교해보면, 경기 시간에서 인터벌이 미치는 영향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시리즈는 그 해 최고의 팀이 맞붙는다는 것 외에는 기본적으로 경기 구성이 정규시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국시리즈는 비슷한 점수가 나도 정규시즌에 비해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린다. 더 많은 고민, 더 많은 견제 속에 자연스럽게 투구 간 인터벌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ea%b2%bd%ea%b8%b0%ec%8b%9c%ea%b0%842 <연도별 한국시리즈, 정규시즌 소요 시간>

위 그래프는 연도별 한국시리즈(파란색), 정규시즌(주황색) 소요 시간을 나타낸 것이다.(단,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은 ‘85년과 자료를 구할 수 없었던 ‘94, ’01, ‘03년은 제외) 일부 예외는 있지만 명백히 한국시리즈에서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음을 알 수 있다. ‘82년부터 ‘15년까지 전체 평균으로 보아도 정규시즌은 한 경기에 약 3시간 5분이 걸린 반면 한국시리즈는 한 경기에 약 3시간 20분이 걸렸다.(중간값 3시간 15분) 한국시리즈 경기가 평균적으로 15분이 더 걸린 셈이다. 평균의 차이가 아닌 아닌 연도별 차이의 평균 역시 14분으로 비슷했다.

 

그럴싸한 오답이 가장 위험하다

 

경기 시간 증가를 가져오고 있는 진짜 원인은 타고투저가 아니고 투구 간 인터벌이다. 타고투저가 경기 시간 증가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다. 때문에 타고투저의 완화를 통해 경기 시간을 단축시키려는 시도는 ‘언 발에 오줌누기’식의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완전한 오답은 위험하지 않다. 아무도 그 선택지를 고르지 않기 때문이다. 위험한 것은 그럴싸한 오답이다. 그럴싸하기 때문에 진짜 정답을 놓치기 쉽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최근 제시되고 있는 많은 해결책들은 그럴싸한 오답에 가까운 미봉책들이다.

KBO가 2015년 시즌을 시작하며 새롭게 손질한 경기 스피드업 규정에는 타석 이탈 금지, 공수교대시간 엄격 적용, 이닝 중 투수 교체시간 단축(15초), 타석 입장 시간 단축(10초 제한), 볼넷 및 사구 출루 시 뛰어 가기, 감독 어필 시 코치 대동 금지 등이 있다. 이 중 투구 인터벌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할 만한 규정은 타석 이탈 금지 규정뿐이다. 그나마도 현장에서는 거의 적용되지 않아 실제로 벌금을 문 사례는 지난해 5월 1일 김태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나머지 규정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대세에는 거의 영향이 없는 오답임을 알 수 있다. 공수교대시간 엄격 적용은 새롭게 시간을 줄이는 것도 아니고, 이닝 중 투수 교체 시간 줄이기는 한 경기에 이닝 중 투수교체가 8번 있어야 겨우 2분 줄일 수 있는 규정이다. 타석 입장 시간 단축이나 볼넷/사구 시 뛰어가기는 유명무실해서 거의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고, 감독 어필 시 코치 대동 금지는 스피드업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조차 모호하다.

프로야구는 산업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고객을 유치해야 한다. 이전부터 야구를 보아 온 팬들은 경기 시간이 길어도 내용만 재밌으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야구를 모르는 사람이 새로 야구 팬이 되기에는 3시간 20분에 달하는 현행 경기 시간은 길어도 너무 길다. 늘어난 경기 시간은 서서히 프로야구를 좀먹는 암 덩어리이며, 무관심과 잘못된 치료 속에 이미 말기에 왔다. 아직 가시적인 관중 수의 감소로 드러나지 않아 문제가 과소평가되고 있을 뿐이다. 왜 경기 시간이 며칠씩 걸리는 크리켓은 야구가 생기기 전부터 인기가 있었음에도 야구만큼 프로화되지 못했고 야구는 널리 프로화될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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