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반등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1)

[야구공작소 오정택] SK 와이번스의 2017년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다. 투수진에서는 김광현이라는 대체불가의 1선발이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했고, 타선에서는 ‘파워’ 이외의 뚜렷한 강점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오프시즌 동안 선수단의 보강 외에도 코치진을 개편하는 등 시스템 전반의 ‘체질개선’에 힘을 쏟았다는 점은 분명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는 드물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진행된 야구공작소 필진들의 오프시즌 평가에서 SK가 8위로 처졌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2017시즌이 막을 올리고, SK는 중상위권을 다투며 기대 이상의 좋은 페이스를 이어 나가고 있다. 6위를 차지했던 지난해보다 다소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들이 오히려 훨씬 나아진 성적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에, SK의 선전을 구성하고 있는 요인들을 투수편과 야수편으로 나누어 2부작으로 다뤄보려 한다.

 

<투수편>

왕조가 저문 이후, 작년까지 SK의 과제는 한결같았다. 바로 김광현의 부담을 덜어줄 새로운 국내 선발투수를 발굴하는 일이었다. 이만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11~12년도부터 윤희상이 국내 2선발로 자리를 잡았지만 그 이후로 4년이 지난 작년까지 새 얼굴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올해는 이 역동적인 투구폼을 보지 못 한다. (사진제공=SK와이번스)

2016년 SK는 김광현의 부상, 세든의 부진하며 선발진을 꾸리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더군다나 세든의 대타였던 라라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켈리와 윤희상을 제외한 후반기의 선발 3자리를 어쩔 수 없이 국내 투수들로 채워야 했다. 박종훈, 문승원, 김태훈, 임준혁까지 다양한 카드를 시도했지만 박종훈만이 선발 로테이션에서 살아남았고, 그마저도 좋은 활약은 아니었다(ERA 5.66/WAR 0.69). 2016년 SK 선발진이 기록한 WAR 5위의 성적은 켈리와 잔부상이 있던 윤희상, 김광현 3명이 만들어낸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세 선수 WAR 12.40 / 선발진 전체 WAR 10.78).

국내 선발진 ‘뉴 페이스’들의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 작년은 SK 불펜의 부담이 유난히 컸던 해였다. 작년 SK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불펜투수는 채병용(83.2이닝 / 구원투수 4위)과 김주한(59.1이닝 / 신인 투수 최다 구원이닝)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많은 이닝을 소화했던 이유는 SK의 어린 선발투수들의 이닝 소화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표1. 2016년 선발 후보들의 부족했던 이닝소화력

*IP/GS : 경기당 소화이닝

표1에서 보듯, 박종훈만이 간신히 승리요건에 턱걸이 하는 정도였고 나머지 세 선수들은 경기당 평균 5이닝도 소화하지 못했다. 특히, 10번 이상의 선발 기회를 받은 박종훈, 문승원은 약점을 그대로 노출하며 상대타자를 이겨내지 못했다. 박종훈의 경우 제구불안을 끝내 해결하지 못했으며(BB/9 5.85), 문승원은 꾸준히 장타를 허용했다. (피장타율 .548 / WHIP 1.87) 결과적으로 불펜진의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놀랍게도 SK의 불펜진은 그 부담을 극복하며 시즌 내내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길고 긴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온 전천후 카드 채병용과 클로저 박희수, 새 얼굴 김주한이 이끄는 불펜진은 구원 WAR 4위(7.50)와 구원 WPA* 2위(-2.49)를 기록하며 흔들렸던 선발진의 구멍을 메꿔주었다(링크).

*WPA(Win Probability Added): 승리 확률 기여도

재밌게도 올 시즌 SK의 투수진은 작년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불펜의 비중이 컸던 작년과는 달리, 김광현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선발야구를 표방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활약의 주역은 지난 시즌 자리를 잡지 못했던 ‘미운 오리’들이다.

 

미운 오리들의 반등

앞서 기술하였듯 ‘미운 오리’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이닝소화력이었다. 이들에게 5이닝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웠고 자연스럽게 불펜에게 긴 이닝을 맡기며 현대야구에 역행하는 도박을 걸어야 했던 SK였다. 하지만 올 시즌 SK의 경기운영에서는 이러한 면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선발진의 투구내용이 좋아지며 소화이닝이 늘어난 것이다. 좋은 투구내용이 이어지면 그만큼 피칭을 오래 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다. 먼저 주목해야 할 선수는 현재 로테이션을 소화하고 있는 박종훈과 문승원이다.

그림1. 박종훈의 투구 분포도 2017(좌)/2016(우), 투수시점

박종훈은 와타나베 슌스케를 떠올리게 하는 흔치 않은 언더핸드 투구폼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작년 시즌엔 9이닝당 볼넷비율 1위*를 기록하며 SK 팬들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지난 시즌 급격하게 높아진 볼넷의 원인은 스트라이크 존을 소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유난히 우타자 바깥쪽에 집착했던 작년과 달리(그림1 오른쪽 그래프 참조), 올 시즌엔 확대된 스트라이크존의 양 끝을 적극 활용하며 볼넷을 줄이는데(전년도 대비 BB/9 1.85 감소) 성공하였다(그림1 왼쪽 그래프 참조). 또한, 직구-커브-싱커로 이어지던 투구패턴에서 부진한 결과를 낸 싱커 구사율을 줄이고 포크볼을 사용한 것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100이닝 이상 소화기준

문승원은 지난 시즌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지만 5선발로 살아남지 못하고 불펜에서 시즌을 마감했다(2016 선발 ERA 6.66). 올 시즌엔 커브의 구사비율을 5% 가량 끌어올려 본인의 ‘마구’로 만드는데 성공하였고(커브 피안타율 .156), 터질 듯 했던 WHIP도 크게 끌어내리는데 성공하였다(WHIP 전년도 대비 0.37하락). 자신감이 붙자 소화 이닝도 자연스럽게 늘기 시작하며 구위에 비해 결정구와 이닝을 끌어가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바꿔가고 있다. 140중반대의 직구를 맘껏 뿌리는 모습에서 왕조시절의 송은범을 볼 수 있었다.

두 선수 모두 다양한 시도를 통해 경기당 소화 이닝과 한계투구수를 늘려가고 있으며 자신의 커리어하이 시즌을 기록중이다.(표2)

표2. 모든 면에서 커리어하이를 기록하고 있는 박종훈/문승원

두 선수 외에도 수년 전 아마추어 시절 첫 퍼펙트게임을 기록하며 많은 기대를 모았던 김태훈도 본인의 야구인생에서 처음으로 빛을 보고 있다. 대체 선발투수로 개인 첫 승리를 따내며 스캇 다이아몬드의 공백을 잘 메꿔주었으며(선발 4경기 4.66 ERA), 부진한 채병용을 대신하여 전천후 카드로 SK 불펜진에 시너지를 더하는 중이다.

 

선발과 불펜, 어긋난 퍼즐

켈리는 이미 리그 탑 수준의 외국인 투수이며 다이아몬드는 출장 경기수는 적지만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덧 선발진의 터줏대감이 된 윤희상에 영건 박종훈과 문승원의 활약을 더하며 SK는 선발야구를 보여주고 있다(선발진 WAR 3위).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다. 이들의 뒤를 받쳐줄 불펜진은 계속해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구원진 WAR 6위).

먼저 가장 큰 문제점은 클로저의 연이은 부진이다. 시즌 초 기대를 모았던 서진용이 연이은 블론세이브(5개)로 박희수에게 자리를 넘겨줬으며 박희수마저 허리부상으로 물러났다. 문광은, 김주한 등의 집단마무리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9회는 여전히 SK의 약점이다. 베테랑 선수들의 노쇠화도 경계해야 한다. 지난 시즌 버팀목이 돼주었던 채병용, 올시즌 셋업맨을 맡은 박정배, 향후 마무리를 맡아줄 박희수의 평균 나이는 34.6세이다. 노쇠화로 인한 부진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며 분명히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이 올 것이다. 이미 채병용은 꽤 긴 부진을 겪고 있다(6.27 ERA).

불펜의 키가 되어야만 하는 서진용 (사진제공=SK와이번스)

물론 불펜에 긍정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선발 등판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던 김태훈이 부족한 좌완불펜진에 힘을 더 할 것이며 지난 시즌 부진했던 박정배도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3.06 ERA/10홀드/1세이브) 부담이 사라진 탓일까? 마무리에서 내려온 서진용도 3~4점대의 평균자책점을 유지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글을 마치며

선발진이 지난 시즌 많은 변화를 겪었듯이 올해는 불펜진의 변화가 필요한 해이다. 작년에 김주한이 필승조로 자리를 잡았듯, 서진용이 마무리 자리에 정착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최선의 선택지일 것이다. 과거 왕조시절 SK는 선발과 불펜이 모두 최상급의 모습을 보여주며 ‘투수의 팀’이란 평가를 받았었다. 현재 SK의 선발진은 서서히 틀이 잡히고 있는 가운데, SK가 불펜 정비마저 성공하며 투수의 팀으로 거듭난다면 SK의 ‘홈런군단’과 더불어 팬들에게 왕조 시절의 향수 그 이상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기록 출처: STAT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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