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혼의 이면, 혹사의 그림자가 드리운 일본 대학야구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배형빈 >

2023 NPB 드래프트에서는 12개 구단 중 9곳이 대학 선수를 1위(1라운드) 지명자로 선택했다. NPB 드래프트 역사상 대학 선수가 이토록 많이 1위 지명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흥미롭게도 9명의 선수 중 투수가 무려 8명에 달했다. 최근 대학 투수 풀이 예년에 비해 크게 좋아졌다는 프로 스카우트들의 평이 그대로 들어맞은 셈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한 비보가 잇따랐다. 지난 2월 주니치 드래건스의 1위 지명을 받았던 쿠사카 쇼가 오른쪽 팔꿈치 인대 손상 진단을 받아 토미존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한신 타이거스의 1위 지명자였던 시모무라 카이토도 지난 4월 오른쪽 팔꿈치 인대 손상으로 인해 토미존 수술을 받았다. 드래프트가 실시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대학 최고 투수 유망주로 꼽힌 선수가 2명이나 수술대에 오른 것은 일본 야구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본에서 드래프트 지명자가 2군 등판도 하기 전에 큰 수술을 받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혹자는 이 사건을 선수의 부상에 따른 수술과 재활 문제로 단편적으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쿠사카와 시모무라의 부상 뒤에는 그동안 조명받지 못한 일본 대학야구의 투수 혹사 문제가 숨어 있다.

 

일본 대학야구 투수 혹사의 실태

일본 대학야구의 일정은 리그별로 치러지는 춘계·추계 리그전과 전국구 단위로 치러지는 대학야구 대회로 크게 구분된다. 리그전은 보통 대학별로 10~15경기를 치르며 전국 대회에서는 한 대학이 최대 5경기를 치른다. 리그전과 전국 대회가 1년에 2번씩 치러지므로 전력이 갖춰진 대학팀은 한 해에 대략 50경기 내외를 소화하는 셈이다.

NPB의 1군 팀은 포스트시즌 경기까지 모두 소화한다고 가정한다면 1년에 최대 154경기를 치른다. 단순히 경기 수만 놓고 보면 대학야구의 일정이 널널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일본 대학야구 특유의 구조에서 비롯된 몇 가지 이슈가 대학 투수들의 혹사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 표1 = 아지아 대학 야구부의 2023년 추계 리그전 일정 >

대학야구 리그 중 가장 수준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도토대학 야구연맹의 예시를 살펴보자. 위 표는 도토대학야구연맹 소속인 아지아 대학 야구부의 지난해 추계 리그 일정을 나타낸다. 프로 리그의 일정과 달리 대학 리그의 일정은 불규칙적이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일본 대학야구는 리그전 기간임에도 대학에 따라 경기를 치르지 않는 주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같은 대학과의 대전인데도 하루나 이틀을 쉬고 다시 맞붙는 경우가 존재한다.

각 팀의 감독은 이러한 일정 속에 변칙적인 투수 운용을 펼친다. 대학 리그는 경기 수가 많지 않아 1승의 가치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이 에이스 투수에게 휴식일을 충분히 주지 않고 선발 등판시키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지난해 하반기 아지아 대학 야구부의 감독이었던 스즈키 카즈나카는 3경기를 치른 모든 팀을 상대로 쿠사카를 1차전과 3차전에 등판시켰다. 그는 100구 이상을 던진 뒤 3일도 쉬지 않고 다시 등판하는 고된 일정을 세 번이나 소화했다.

< 표2 = 쿠사카 쇼의 2023년 추계 리그전 등판 일지 >

감독이 1승을 더 취하기 위해 에이스에게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게 하는 예시는 다른 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놀랍게도 지난해 드래프트 1위 지명을 받은 대학 투수 8명 중 7명이 추계 리그전에서 100구 이상 던진 뒤 3일 이하의 휴식만 갖고 다시 선발 등판한 경험이 있다. 심지어 코쿠가쿠인 대학의 타케우치 나츠키는 리그전의 마지막 3연전에 마운드에 올라 선발 등판-불펜 등판-선발 등판이라는 가혹한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다.

 

변화를 위한 시도와 한계

수도대학야구연맹은 도토대학야구연맹, 도쿄6대학야구연맹과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대학 리그 중 하나다. 야구부원이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수도대학야구연맹은 팀이 주말에 한해 2경기를 치르는 것을 기본 일정으로 한다.

3연전이 치러지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은 다른 리그에 비해 투수의 부담이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2019년 리그 사무국장 타쿠라 마사오는 선수 보호와 육성의 가치를 더욱 강조하는 차원에서 투구수 제한 기준을 도입했다. 이때 신설된 가이드라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 1차전 선발투수에는 투구 수 제한을 적용하지 않는다.
  • 1차전에서 121구 이상 던진 투수는 그다음 날 50구까지 투구할 수 있다. 투구 도중 50구를 넘긴 경우에는 그 이닝이 끝날 때까지 던질 수 있도록 한다.
  • 1차전 선발투수가 120구 미만을 투구했다면 연투에 제한을 걸지 않는다.
  • 우천 취소로 하루를 쉬었다면 그다음 경기에 투구 수 제한을 적용하지 않는다.

가이드라인을 세운 취지는 좋았으나 이 시도는 여러 측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위 조항을 따르면 선발투수가 1차전에 120구만 넘기지 않는다면 다음 날에 다시 많은 이닝을 소화하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문제는 제한이 지나치게 느슨한 것만이 아니다. 상기한 조항을 위반했을 때의 페널티가 명문화되어 있지 않아 투구 수 제한에 강제성이 결여되어 있다.

다른 대학 리그의 동참을 이끌어내지 못한 점에서도 한계가 뚜렷했다. 도쿄6대학야구연맹의 사무국장 나이토 마사유키는 투구 수 제한을 제도화할 예정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대학 리그의 진행 기간이 짧아 투수가 무리한 연투를 강요받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삼았다. 다른 리그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투구 수 관련 제한 사항이 형식적으로라도 존재하는 일본의 대학 리그는 여전히 수도대학야구연맹 한 곳뿐이다.

 

선수, 그리고 미래를 위한 투구 수 제한 규정

상기한 바와 같이 일본의 대학 리그는 주축 투수 중 상당수가 적정한 휴식일을 받지 못하고 등판을 강행하고 있다. 현행 체제에서는 눈앞의 1승을 위해 선수의 건강을 담보로 거는 선수 기용을 억제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쿠사카와 시모무라의 사례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실효성 있는 투구 수 제한 규정이 절실하다.

투구 수 제한의 핵심은 투수에게 충분한 휴식을 부여해 신체적 부담을 경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1차전에 투입한 선발투수를 하루만 쉬게 하고 3차전에 등판시키는 것은 대학 투수의 대표적인 혹사 패턴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한 번 등판해 많은 공을 던진 투수에게 일정 기간의 휴식을 의무적으로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표3 = 투구 수에 따라 권고되는 대학 투수의 적정 휴식 기간 >

위 표는 19~22세 투수를 대상으로 MLB.com이 제시하는 휴식일의 가이드라인을 나타낸다. 이에 따르면 투수가 한 경기에 50구를 던졌다면 이틀을, 110구를 던졌다면 닷새를 쉬는 것이 적절하다.

미국 투수와 일본 투수의 신체적 차이가 있으므로 위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받아들여 규정으로 삼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투구 수에 따른 휴식일을 리그 간 합의를 통해 조정해 제도화하는 것만으로도 투수의 부상 방지에 큰 보탬이 된다. 신체적 피로가 풀리지 않은 채로 투수가 다음 선발 등판에 나서는 일이 크게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선발 등판 직후에 불펜으로 연투를 시키는 변칙적인 기용도 차단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대학 야구에는 선발투수가 중요한 경기를 책임지고 완투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지도자가 아직 많이 있다. 지난해 토요 대학의 에이스였던 호소노 하루키가 1부 리그 승격이 달린 경기에서 무려 185구를 던진 끝에 완투승을 거두었다. 당시 이노우에 마사루 감독은 이기고 있는 한 투수를 교체할 생각이 없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처럼 무리한 투구 강도도 부상 위험을 크게 높이는 만큼 경기 내의 투구수 제한 규정도 필히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일본의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대학야구부원 수도 감소 추세에 있다. 투구 수 제한 규정은 선수가 더욱 귀해질 미래에 대학 투수들이 안전한 여건에서 야구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또한 대학야구에는 프로 세계를 지망하는 선수들도 다수 뛰고 있다. 투구 수 제한은 대학 선수의 진출로 선수층을 유지하고 있는 프로야구를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지금은 선수, 대학, 그리고 프로야구의 더 밝은 미래를 위해 대학 리그 수장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참고 = 주니치 스포츠, 스포츠 호치, 도토대학야구연맹, Sportsnavi, MLB.com, 전일본대학야구연맹

야구공작소 강상민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금강,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배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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