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야구, 새로운 교실 이데아를 찾아라

[야구공작소 차승윤] 프로야구 800만 관중 시대에도 불구하고 근래 프로야구는 몇 가지 사건에 휘말리며 비판에 직면했다. 2015년 원정도박 사건, 2016년 승부조작 스캔들, 여기에 강정호의 음주운전 사건까지 연이어 터지면서 선수들에게 보내던 응원의 손길은 실망과 의심의 눈길로 변했다.

프로선수들에 대한 비판은 그들을 배출한 아마야구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일반 학생들과 달리 교실에서의 교과과정을 밟지 않고 학창 시절을 운동장에서 보낸 것이 이러한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라 전체를 뒤흔든 한 대학 특기자와 그녀의 부모에 관한 사건도 이러한 비판에 힘을 실었다. 편법으로 입학하고 수업에도 빠진 채 특혜를 만끽한 한 특기생에 대한 문제는 체육 특기생 전반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되었다. 선수들도 다른 학생과 같은 교육을 받고 공정하게 평가 받아야 체육계가 겪은 스캔들 전반이 방지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가 올해부터 시행한 대학스포츠 운영 규정 제25조(학점관리와 불이익처분)에 따라 이제 대학선수들은 직전 2개 학기에서 평점 C⁰ 이상을 받아야만 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과연 문제는 ‘교실’일까

하지만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해야 한다는 소위 ‘전인교육’은 이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높은 시험 성적이 인성 형성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게다가 인성교육 차원이 아닌 교육 측면에서만 살펴보더라도 대회와 훈련으로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는 선수들에게 별다른 해결책 없이 일반 교과과정까지 모두 요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입시 비리, 선수의 도덕성 등이 체육계에 계속 제기되는 현재 시점에서 아마 스포츠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선수들에게 정녕 어떤 교육이 필요한 것일까. 바로 ‘사회성’이다.

사회가 의무교육을 통해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은 비단 지식만이 아니다. 다양한 성격의 수많은 사람과 학문을 접하면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재탄생한다. 그러나 많은 선수들은 이 과정을 완전하게 겪지 못한다. 어린 나이부터 철저히 그들끼리 모여서 지내게 되며, 철저히 운동에만 몰두하며 특별하지만 제한된 삶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내야 한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오로지 프로선수가 되는 것이지만 프로의 영광에 도달하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학생들은 젊은 나이에 그라운드와 작별하고 운동장 밖의 경쟁에 뒤늦게 던져진다.

요컨대 아마야구, 나아가 아마 엘리트 스포츠의 교육 현실은 소수의 프로선수만을 양성할 뿐 그 안의 학생선수들을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야구만 하는 ‘운동 기계’로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로 인해 성공한 선수들도 도덕적, 사회적 문제로 미성숙한 태도를 보이며, 성공하지 못한 선수들은 대책도 없이 사회에 던져져 방치되어 버린다.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교실로 불러들여야 하지만, 일반 학생들에게 요구하듯이 국영수에 충실하며 전교 몇 등 안에 들어야 한다는 방법은 이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 옛날 노래 가사처럼, 그들을 위한 ‘교실 이데아’는 과연 무엇일까.

 

교육의 재구성-교실의 이데아를 찾아

과연 선수들이 일정 이상인 평균 학점을 받아놓는 것이 그들의 새로운 진로를 도와줄 수 있을까. 많은 대학은 운동부를 사범대 체육교육과로 입학시켜 선수들이 교직 이수를 할 수 있게 하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대안은 될 수 없다. 대학 4년동안 그라운드에 머물렀던 선수들을 치열한 고시 경쟁에 뒤늦게 던져주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이들의 선수 경력을 살릴 만한 대안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선수들이 야구를 하면서도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실낱같은 드래프트 기회와 육성선수 모집에만 매달리지 않아야 건전한 아마야구가 가능하다. 점차 성장하는 스포츠 시장에서 그라운드에서 직접 뛰어본 선수들의 경험은 사회적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자원이다. 과거 양승호 전 고려대 감독이 학생들에게 심판, 트레이너 등 체육 자격증을 요구했던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비단 체육계에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그들이 경험한 특별한 학창시절을 유기적으로 사회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순히 자격증을 따는 것뿐 아니라 학교 생활의 구성과 그 속에서 선수들의 마음가짐 역시 변해야 한다. 선수들은 프로선수뿐 아니라 프런트를 비롯한 여러 체육계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학교와 지도자들도 이들과 함께 고민하며 진로를 제시해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교실’과 시험은 거추장스러운 대회 참여 자격이 아닌 그들의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는 발판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학에서도 체육계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는 새로운 대학/대학원 입시 전형을 준비하고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목표와 연계될 수 있는 더 넓은 차원의 교육은 선수들의 삶의 시야를 넓혀줄 것이다. 또한 그로 인해 얻은 다양한 경험과 이를 통해 접하는 더 넓은 세계는 선수들의 인격 형성과도 연결된다. 승부 조작, 원정 도박, 음주 운전 등 야구계를 강타한 도덕성 문제는 단순히 도덕, 윤리 수업을 한 시간 더 듣는 것으로 예방할 수 없는 문제다. 구단들 역시 신인 선수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한다지만 이는 피상적인 문제 해결에 불과하다. ‘해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감각은 사회적 경험으로만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한 교실에서의 배움은 그들에게 사회 전반에 대한 더 넓은 교류와 관심, 선수 스스로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선물할 수 있다.

이는 폐쇄된 조직 자체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법조계, 의료계 등 소위 ‘배운 이’들의 조직조차도 폐쇄적 성격으로 인해 도덕적 문제를 빈번하게 일으킨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는 군대나 학과 단톡방 사건 등에서도 폐쇄적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변질된 도덕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린 선수들에게 열린 세계를 제공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이다.

 

교육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는 비단 체육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입시에, 취직에 매몰된 채 살아가는 한국 교육 전반이 바뀌어야 할 공통의 문제다. 하지만 ‘너희들만 힘든 게 아니다’ 라고 넘어가기에 너무 많은 선수들의 미래가 철저히 방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엘리트 스포츠는 그 동안 늦은 출발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빠른 발전을 이뤄왔다. 국내 각 리그의 발전과 국제대회에서의 성과물은 분명 그러한 노력의 산물일 것이다. 그러나 어두운 이면에서 일련의 문제가 터져 나온 지금, 바로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변화를 위해 우리 사회 전체가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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