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무대를 향해 발을 내딛는 야마모토 요시노부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서한 >

야마모토 요시노부(Yoshinobu Yamamoto).

NPB에 별 관심이 없고, 평소 MLB나 KBO만 접하는 야구팬이라도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다. 이유는 각기 다르다. MLB를 보는 이들은 야마모토를 빅리그 진출을 앞둔 투수로서, KBO리그 팬들이라면 2019 프리미어 12에서 한국 대표팀을 무력화한 투수로 알고 있을 것이다.

야마모토는 오타니 쇼헤이처럼 160km/h를 넘나드는 광속구까지는 구사하지 못한다. 체격적으로도 투수로서 상당히 불리한 조건(178cm 80kg)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일찌감치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던 것에는 모두 그만한 까닭이 있다.

 

야마모토를 에이스로 만들어 준 주력 구종의 위력

야마모토의 소속팀 오릭스 버팔로스는 MLB 지도자 경험을 가진 코칭스태프와 우수한 투수 육성 노하우를 모두 가진 구단이다. 그들은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 유망주를 지명해 팀의 주력 자원으로 만드는 역량이 뛰어나다. 팀 육성 시스템의 강점에 힘입어 야마모토는 구속과 변화구의 완성도, 컨트롤을 모두 갖춘 완성형 강속구 투수로 성장했다.

< 표 1 = 야마모토 요시노부의 패스트볼 관련 주요 지표 >

입단 당시 147.8km/h였던 야마모토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커리어를 쌓아가며 꾸준히 상승했다. 고졸 1년 차 시즌에 BB%가 6.4%에 불과했을 정도로 제구력이 있었던 그에게 구속 상승은 엄청난 플러스 효과를 가져왔다. 타자들이 그의 패스트볼에 더 많이 헛스윙을 하게 됐고, 타격해도 이전만큼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올해 들어 야마모토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153km/h까지 상승했다. 이는 올해 1구라도 던진 NPB 투수 중 9위에 해당하며, 규정이닝을 채운 선발투수 중에서는 단연 최고의 수치였다. 그러나 구속보다 더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났다. 그가 패스트볼을 결정구로 사용하는 비중을 크게 늘린 것이었다. 23⅔이닝만을 던진 데뷔 시즌을 제외하면 패스트볼로 잡은 삼진이 가장 많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 그림 = 야마모토가 올해 삼진을 잡아낸 공들의 히트맵 >

야마모토의 탈삼진에서 패스트볼의 비중이 늘어난 것은 구종의 활용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크존을 상하로 양분하는 가상의 선을 그어 보면, 그는 지난해 패스트볼로 잡아낸 삼진 64개 중 18개 만을 선 위에서 잡아냈다. 그러나 올해는 패스트볼로 잡은 삼진 61개 중 과반인 32개를 하이존에서 잡아냈다. 야마모토를 상대로 2스트라이크까지 몰린 타자들이 낮은 스플리터를 생각하다가 높은 패스트볼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였다.

높은 코스의 적극적인 활용이 더 나은 결과를 불러왔다는 것은 다른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야마모토의 패스트볼 피안타율은 데뷔 후 가장 낮은 0.185까지 내려왔다. 그가 1,016구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동안 내준 안타는 43개, 홈런은 1개에 불과했다. 패스트볼을 타격해 인플레이 타구가 된 것 중 강한 타구의 비중(Hard%)도 선발 정착 이후 가장 낮은 29.9%까지 낮아졌다. 이는 야마모토의 패스트볼이 진화했다는 증거였다.

< 표 2 = 야마모토의 스플리터 관련 주요 지표 >

패스트볼의 성능도 뛰어나지만, 야마모토의 구종 중 위력이 가장 잘 알려진 구질은 단연 스플리터다. 그의 스플리터는 평범한 피네스피처의 패스트볼 구속에 육박하는 스피드를 보여준다. 마운드와 홈플레이트 사이의 중간 지점에서 시계의 5시 방향으로 급격히 떨어지며 패스트볼을 의식하고 있던 타자의 허를 찌른다.

1군 정착 이후 야마모토가 줄곧 스플리터를 주 무기로 다루고 있음에도 NPB 타자들은 그 공을 상대로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는 최근 3년간 스플리터를 결정구로 선택한 658번의 승부에서 32%에 달하는 211번을 삼진으로 마무리했다. 스플리터의 헛스윙률은 같은 기간 동안 25% 전후를 유지하며 야마모토의 피칭을 든든하게 지탱해 줬다. 

야마모토의 스플리터는 맞히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맞혀도 좋은 타구를 만들어 내기 어렵다. 최근 3년 동안 NPB 타자들은 그의 스플리터를 상대로 타율 0.145과 홈런 2개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그의 스플리터가 꾸준히 낮게 제구되는 특성 덕에 약한 땅볼을 양산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은 이른 볼카운트에서 스플리터 구사 비중을 늘린 올해 더 극적으로 드러났다. 패스트볼을 노린 타자들이 스플리터에 배트를 자주 내면서 올해 구종 GB/FB 수치가 커리어에서 가장 높은 5.5를 기록했다. 이는 야마모토가 164이닝을 2피홈런으로 끝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야마모토의 구종 중 다른 것들과 가장 이질적인 것은 커브다. 2019시즌에 로테이션에 진입하며 연마한 커브는 NPB 최고의 투수가 되기 위한 마지막 조각이었다. 데뷔 초 그는 많은 이닝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에 포심, 커터, 스플리터만으로 경기 운영이 가능했다. 그러나 로테이션 투수로 풀시즌을 버티기 위해서는 타이밍 싸움에서 이점을 부여할 새 구종이 필요했다.

야마모토가 레퍼토리의 보충을 위해 택한 구종은 커브였다. 그는 커브를 연마하는 동안 릴리스 시 손끝의 미세한 감각 차이로 구속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능력을 터득했다. 오릭스의 주전 포수 와카쓰키 겐야는 한 인터뷰에서 야마모토가 상황에 따라 의도적으로 커브의 구속을 100km부터 130km까지 조절하며 타자의 타이밍을 무너뜨린다고 언급했다.

< 표 3 = 야마모토의 커브 관련 주요 지표 >

더 나은 커브를 위한 야마모토의 연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야마모토는 일류 타자들도 속을 만한 커브를 던질 수 있도록 고심을 거듭했다. 그 결과 패스트볼을 던질 때와 거의 동일한 팔 각도에서 검지와 엄지의 독특한 그립을 활용해 구사하는 야마모토 특유의 커브가 완성되었다. 공들여 완성한 커브는 훌륭한 위력을 보여줬다. 커브의 숙련도가 높아진 2020년 이후 야마모토의 커브는 피안타율이 줄곧 1할대에 머물렀다. 놀랍게도 그는 2023년까지 4시즌에 걸쳐 커브로 158삼진을 잡아내는 동안 홈런을 단 한 번도 내주지 않았다. 

야마모토가 데뷔 초 세컨더리 피치로 사용하던 커터는 헛스윙 유도에 한계가 있는 구질이었다. 변화폭이 크지 않아 타자들의 배트에 걸리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그는 중요한 상황에서 더 많은 삼진을 잡기 위해 2018년에 비중이 29.1%에 달했던 커터의 비중을 조금씩 낮추어 올해는 8.7%까지 줄였다. 그리고 커터의 감소한 지분은 새로운 파트너인 커브가 차지했다. 선택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헛스윙을 많이 유도할 수 있는 구종을 레퍼토리에 추가하면서 그는 4년 연속 25% 이상의 K%를 기록하는 압도적인 성과를 남겼다.

< 표 4 = 커브를 장착한 후 야마모토의 경기 중후반 FIP 변화 >

데뷔 초 야마모토는 패스트볼과 커터의 의존도가 높아 경기 후반부로 갈수록 스피드에 익숙해진 타자들을 상대하기 어려웠다. 커브의 구사로 더 폭넓어진 레퍼토리는 그가 더 많은 이닝을 안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게 했다. 위기 상황에서 자신 있게 다룰 수 있는 구종이 늘어났고, 이닝을 거듭하며 구위가 떨어져도 타이밍을 빼앗는 승부를 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커브를 완전히 손에 넣은 2020년을 기점으로 타선이 한 바퀴 돌 때마다 장악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문제가 개선되며 야마모토는 완성형 선발투수로 거듭났다.

야마모토는 지난 3년 동안 49승 16패 ERA 1.44의 압도적인 기록으로 NPB 최고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와무라상을 독식했다. 올해는 하반기 10경기에서 70⅔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4자책점 만을 내주는 대활약으로 커리어하이인 시즌 ERA 1.21을 남겼다. 다나카 마사히로가 역사에 길이 남을 24승 무패 시즌을 보냈던 2013년의 ERA 1.27을 능가하는 기록이다. 이는 야마모토가 구속의 증가부터 레퍼토리의 완성에 이르는 진화를 이뤘기에 달성할 수 있었던 성과다. 더 나은 피칭을 위한 계속된 도전이 그에게 리그 에이스의 지위를 안겨준 것이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면 ─ 야마모토의 미래에 대한 전망

야마모토가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경우를 상상하면 2선발급 투수로서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NPB 타자들을 상대로 기록한 약 10%의 패스트볼 헛스윙률은 MLB에선 한 자릿수가 될 것이 확실하다. 패스트볼 단독으로 폭발적인 위력을 낼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하이 존 공략 방식을 점차 터득하고 있는 투수의 평균 95마일 패스트볼은 충분히 위협이 될 만한 공이다.

그의 성공 여부는 변화구에 달려 있다. 일본 투수들의 날카로운 스플리터는 오랫동안 빅리그 타자들을 괴롭혀 왔다. 야마모토의 스플리터는 MLB에서도 희소성이 있는 부류의 구질로, 강타자를 상대로도 많은 헛스윙과 땅볼 유도를 기대할 수 있는 구종이다. 최근 MLB에서는 장타를 노리고 어퍼스윙을 하는 타자들을 봉쇄할 무기로 횡적 움직임이 좋은 변화구가 각광을 받고 있다. 평균 구속 145km에 달하는 그의 스플리터는 미국에서도 좌우 타자를 가리지 않고 유효한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릴리스 직후 약간 솟아올랐다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야마모토의 커브 궤적은 LA 다저스 소속 클레이튼 커쇼의 그것과 비견된다. 독특한 궤적으로 타자의 시선을 분산하는 커브는 뛰어난 타자도 잡아낼 수 있는 구종이다. 그러나 최근 야마모토는 투구폼을 미세 조정하는 과정에서 커브의 제구가 잘 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로 인해 패스트볼과 스플리터가 많이 노출되어 포스트시즌 두 경기에서 5실점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오프시즌 재조정을 통해  컨트롤을 되찾는다면 그의 커브는 MLB 타자들을 상대로도 결정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구질의 성능 외의 다른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일본에선 한 번 등판하면 6일 휴식이 보장되지만, MLB에선 휴식이 4일로 줄어든 루틴을 소화해야 한다. 이는 MLB에 진출한 일본인 선배 투수들이 몸소 경험한 문제다. 다나카 마사히로는 미국 진출 후 반복되는 팔꿈치 통증에 시달렸고, 다르빗슈 유와 마에다 겐타는 팔꿈치 수술을 피하지 못했다. 그들보다 체격이 작은 야마모토는 부상 예방을 위해 독자적인 대책을 실천하고 있다. 요가와 스트레칭 등 유연성 강화를 돕는 루틴은 짧은 등판 간격에서 오는 신체적 충격을 완화해 줄 것이다.

미국 땅을 밟은 선배들은 대체로 무난하거나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기대를 밑도는 피칭으로 미국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 야마구치 슌과 아리하라 고헤이와 같은 케이스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 최고의 투수라는 타이틀을 단 선수들은 MLB에서도 경쟁력을 보여주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야마모토의 미래를 낙관하는 이들은 그가 일본 에이스 투수의 성공 계보를 이어 줄 것이라 믿는다. 그가 MLB에서 센가 고다이 이상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스카우트들의 평이 그러한 기대를 뒷받침한다.

 

미국과 일본의 야구를 모두 경험한 야마모토의 대선배 마쓰자카 다이스케는 지난 2월 야마모토의 피칭 연습 장면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들 놀라게 될 겁니다. 투수로서 그렇게 큰 체격은 아니지만 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에는 미국이나 도미니카공화국의 타자들도 상당히 당황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직 야마모토의 공을 본 적이 없는 MLB 타자들은 내년 봄에 마쓰자카의 발언에 공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평범한 체구에 비범한 재능을 품은 NPB의 에이스, 야마모토 요시노부는 미국 무대에서 자신의 역량을 증명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참고 = BASEBALL KING, Full-Count, 요미우리 신문, Sportiva, 닛칸 스포츠, Forbes, 스포니치, SPAIA, 원포인트제로투

야구공작소 강상민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도상현,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서한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Be the first to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