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궁.해] 누군가 다치면서 만들어진 규칙 – 버스터 포지와 강정호(2)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

“심판이 궁금해, 심궁해”는 현역 야구 심판이 심판에 대한 억울함을 스스로 해소하기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는 칼럼 시리즈입니다.

야구 심판과 규칙에 대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달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평소에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댓글로 질문을 남겨주세요. 

이번 시간에는 지난 화에 이어서 선수가 경기장에서 다친 이후 새롭게 생겨난 야구 규칙을 알아보고자 한다. 홈 충돌 방지 규정처럼 이번 규정 또한 관습처럼 이어져 오던 물리적 충돌이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부상으로 이어지자, 여론이 바뀌면서 생겨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리나라 팬들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그 이름이 있다. 

 

상대방의 다리를 걷어차서 병살을 막았다

2015년 9월 17일 피츠버그의 PNC 파크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 1회 초 병살 수비를 하던 강정호는 크리스 코글란에게 무릎과 정강이를 걷어차이며 시즌을 일찍 마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1루 주자가 2루에서 병살을 시도하는 야수와 과격하게 충돌해 송구를 방해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위 사진은 당시만 해도 당연한 플레이였으며 야수가 이로 인해 악송구를 하더라도 수비 방해가 아니었다. 하지만 강정호가 큰 부상을 입고, 한 달 후에는 루벤 테하다가 2루 위에서 체이스 어틀리의 태클로 다치자 여론이 달라졌다. 이제는 병살을 막기 위해 고의로 야수를 가격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버려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가 되었다. 

 

Bona Fide Slide(정당한 슬라이딩)의 등장

2016년 메이저리그는 ‘정당한 슬라이딩(Bona Fide Slide)’ 규정을 추가한다. KBO에는 2019년부터 공식야구규칙 6.01(j)로 추가되었는데, 주자가 더블 플레이(정확하게 말하면 6-4-3, 4-6-3과 같은 선행주자가 포스 상황인 상태의 더블 플레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슬라이딩 방식을 제한하고 있다. 

정당한 슬라이딩을 정의하는 요소는 네 가지이다. 첫째, 슬라이딩은 베이스에 닿기 전에 시작되어야 한다. 둘째, 손과 발로 베이스에 도달해야 한다. 셋째, 슬라이딩 후 베이스(홈 플레이트 제외)에 머물러야 한다. 넷째, 야수와의 접촉을 목적으로 하는 주로 변경 없이 베이스에 도달해야 한다. 주자가 포스아웃 상황에서 정당한 슬라이딩으로 베이스에 도달하려 한다면 수비와 다소 접촉이 있더라도 수비 방해가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자가 전술한 요소 어느 하나라도 위반하면 정당하지 않은 슬라이딩이 되며, 수비 방해가 성립된다. 

첫째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베이스에 닿은 후에 슬라이딩했다는 것은 서서 베이스에 들어간 다음에 어딘가로 슬라이딩했다는 말이다. 베이스에 들어가기 위한 슬라이딩이라고 볼 수 없다. 

둘째에서 손으로 베이스에 도달하는 것은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Head First Sliding), 발로 베이스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은 혹은 벤트 레그 슬라이딩(Bent-leg Sliding)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조항에서 두 슬라이딩의 구체적인 방식을 정의하고 있지는 않으나 홈 충돌 방지 규정을 다룬 6.01(i)(1)의 [주]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6.01(i)(1)에서는

① ‘머리 슬라이딩’은 “포수와의 접촉이 있기 전 주자의 몸이 먼저 그라운드에 닿는” 경우에 적절하고, 

② ‘다리 슬라이딩’은 “포수와의 접촉이 있기 전 주자의 엉덩이와 다리가 먼저 그라운드에 닿는” 경우에 적절하다

고 말한다. 여기서 포수를 베이스로 치환하면 손과 발로 베이스에 도달하는 정당한 슬라이딩을 정의할 수 있다.

 

물론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했다고 꼭 손으로, 벤트 레그 슬라이딩을 했다고 꼭 다리로만 베이스에 닿을 필요는 없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고 베이스를 지나친 뒤 발을 걸쳐도 정당한 슬라이딩이고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규정은 베이스를 향한 점프, 구르기, 다이빙 등을 금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다만 슬라이딩을 한 후 베이스 터치가 이뤄진 후에 이탈했다가 다시 베이스에 닿는 것은 세 번째 요소인 슬라이딩 후 베이스에 머물러야 한다는 요소에 어긋난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정당하지 않은 슬라이딩의 예시에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마지막 요소는 주자가 포스아웃을 방지하기 위해 베이스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슬라이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하면 주자가 베이스에 도달하면서 정당하게 슬라이딩하면 야수와 접촉하더라도 수비 방해가 아니라는 뜻이다. 

 

사례로 확인하는 정당하지 않은 슬라이딩

위 사진은 2019년 4월 24일 NC와 KT 경기 5회 초에 발생한 장면이다. 타자 권희동이 친 타구에 1루 주자 크리스티안 베탄코트가 슬라이딩하고 있는데, 베이스가 아닌 야수 쪽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네 번째 요소를 위반했기 때문에 베탄코트의 슬라이딩은 수비 방해이다. KT 유격수 심우준이 1루에 송구하지 못했지만, 타자주자인 권희동도 아웃됐다. 

위 두 사진은 2022년 4월 8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경기의 6회 말 장면이다. 1루 주자 제이머 칸델라리오가 병살을 막기 위해 2루에 슬라이딩했는데, 2루수 조쉬 해리슨과 충돌했으며, 슬라이딩을 한 후에는 베이스를 완전히 지나쳤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칸델라리오와 해리슨의 충돌 자체는 수비 방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두 선수가 부딪치는 순간까지는 칸델라리오의 슬라이딩이 정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칸델라리오가 아래 사진처럼 베이스 터치가 이뤄진 이후 슬라이딩의 여파로 베이스에서 떨어지는 순간 그의 슬라이딩은 정당성을 잃게 된다. 세 번째 요소인 베이스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규정 없이도 병살은 완성될 수 있었다

위 사진은 2018년 6월 5일 한화와 LG 경기 4회 말에 있었던 장면이다. 1루 주자인 오지환이 병살을 막기 위해 유격수 하주석의 다리를 의도적으로 노리고 들어간 슬라이딩이다. KBO에는 2019년부터 ‘정당한 슬라이딩’ 규정이 도입되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관례로 이 슬라이딩이 정당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로 이런 슬라이딩을 처벌할 수 없었을까?

답은 ‘처벌할 수 있었다’ 이다. 2018년 공식야구규칙 7.09(f)에는 “아웃이 선고된 직후의 타자 또는 주자가 다른 주자에 대한 야수의 플레이를 저지하거나 방해하였을 경우 그 주자는 동료 선수가 상대 수비를 방해한 것에 의하여 아웃된다”고 나와 있다. 하주석이 병살을 완성할 수 있는 상황에서 오지환의 방해로 두 번째 아웃을 올리지 못했다면 이는 수비방해가 되었어야 한다. 즉 과거에도 심판이 병살을 방해하기 위한 주자의 과격한 슬라이딩을 제재할 수 있는 근거는 존재했다. 하지만 필자는 ‘정당한 슬라이딩’ 조항이 신설되기 전 심판진이 7.09(f)를 적용해 과격한 슬라이딩을 수비 방해로 인정한 사례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상술한 조항 7.09(f)는 지금도 존재하는 규정으로, 2019년 공식야구규칙 전면 개정에 따라 새로운 조항 번호인 6.01(a)(5)를 받았다. 그러면 6.01(a)(5) 조항과 ‘정당한 슬라이딩’ 조항인 6.01(j)는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공식야구규칙 6.01(j)

‘정당한 슬라이딩’을 시도하는 주자는 6.01에 따라 방해가 선고되지 않으며, 이는 허용되는 슬라이딩에 따른 결과에 의해 야수와 접촉하는 경우도 포함한다. 또한 주자와 야수의 접촉이 베이스를 향한 주자의 정규 주로에 야수가 위치하여(또는 움직여서) 발생하는 경우도 방해로 선고되지 않는다. 상기 예외 규칙에도 불구하고, 주자가 롤블록을 하거나 야수의 무릎 위로 다리를 들어 올리거나 차는 경우 또는 팔이나 상체를 던져 고의로 접촉할 경우(또는 시도할 경우)에는 ‘정당한 슬라이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정당한 슬라이딩’ 규정의 해석 부분을 보면 ‘정당한 슬라이딩’을 시도하는 주자는 야수와 접촉하더라도 6.01에 따라 방해가 선고되지 않는다. 법률의 신법 우선의 원칙처럼 최근에 탄생한 ‘정당한 슬라이딩’ 규정이 기존의 ‘죽은 주자의 수비 방해’보다 우선한다. 

다만 주자가 굴러서 베이스에 들어가거나, 야수의 무릎 위로 다리를 올리거나, 혹은 고의적으로 야수와 접촉하거나 접촉을 시도한 경우 모든 요건을 갖춘 슬라이딩을 했다 하더라도 정당한 슬라이딩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2023년 6월  23일 롯데와 LG 경기 9회 말 장면인 아래 사진처럼, 홍창기의 슬라이딩은 한 다리가 야수의 무릎 위로 높게 올라갔기 때문에 만약 이 플레이가 병살로 이어지지 않았더라면 수비 방해가 되어야 한다. 

 

더욱 강화될 여지가 있는 ‘정당한 슬라이딩’

한편 ‘정당한 슬라이딩’ 규정은 야수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더 강화될 여지가 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MLB에서 사용하는 Official Baseball Rules를 독자적으로 연구할 뿐만 아니라 대학야구 규칙인 NCAA 야구 규칙을 참고해 개정하기도 하는데, NCAA는 MLB보다 더욱 강력한 ‘정당한 슬라이딩’ 규정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NCAA의 ‘정당한 슬라이딩’ 규정인 ‘포스 플레이 슬라이딩 규정(Force-play-slide Rule)’은 MLB의 OBR과 비교해 세 가지 측면에서 더욱 강력하다. 첫째, 포스 상태의 주자는 베이스 근처에서 반드시 슬라이딩해야 한다. 둘째, 주자는 베이스와 베이스 사이의 공간에서만 슬라이딩할 수 있다. 셋째, 주자가 정당한 슬라이딩을 하더라도 야수의 다리를 손으로 걸거나 다리로 차면 수비방해이다. 

이 중 필자가 주목하는 요건은 두 번째이다. 위 그림은 두 번째 요건을 설명한 NCAA 야구 규칙인데, 포스 상황에서 병살 수비를 하려는 야수에게 성역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포스 상태인 주자가 회색 지역에서 수비하는 야수와 접촉하면 수비 방해가 성립되며, 이를 통해 주자와 야수의 불필요한 접촉을 완전하게 방지해 야수의 부상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NCAA 경기 도중의 장면으로, 베이스 바깥쪽에 위치한 야수와 접촉해 수비 방해를 선고받은 사례이다.

 

부상 관련 신설 규정을 정리하며

여러 선수의 안타까운 부상으로 인해 현대 야구는 과거만큼 거친 모습을 허용하지 않는다. 필자는 이런 변화의 바람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제 포수와 내야수는 주자의 위협적인 주루를 걱정하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해낼 수 있다. 주자 역시 야수의 악의적인 방해를 걱정하지 않고 다음 베이스로 달릴 수 있다. 팬들의 인식 또한 과거의 동물적인 주루와 수비보다는 서로 다치지 않고 최선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모습을 선호하는 쪽으로 변화했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을 아무리 잘 세우고 적용해도 언제든지 다칠 수 있는 위험은 존재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버스터 포지나 강정호처럼 누군가 큰 부상을 당한 후에 새로운 규정을 만들기보다는 예방적 차원에서 미리 규정을 만드는 것이 어떨지 싶다. 

개인적으로 프로야구가 이 규정을 꼭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위 사진처럼 1루에 보조 베이스를 설치하는 것이다. 파울선 안쪽에 들어온 베이스로 인해 1루수와 타자주자는 3피트 라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충돌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소프트볼과 사회인 야구 일부에서 볼 수 있는 보조 베이스가 있다면 1루수와 타자주자의 불가피한 충돌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참고 = CBS Sports, Daum, MLB, Naver, Close Call Sports, NCAA, The New York Times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오연우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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