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궁.해-번외편] 집을 비워줄 의무 혹은 이사 가야 할 의무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

“심판이 궁금해, 심궁해”는 현역 야구 심판이 심판에 대한 억울함을 스스로 해소하기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는 칼럼 시리즈입니다.

야구 심판과 규칙에 대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달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평소에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댓글로 질문을 남겨주세요. 

안녕하세요. ‘심판이 궁금해, 심궁해’의 저자 이금강입니다. 앞으로도 KBO나 MLB 등에서 심판 관련해 큰 이슈가 생기면 심궁해 번외편으로 빠르게 찾아 뵙겠습니다. 오늘은 주제는 9월 21일 LG와 SSG 경기에서 나온 상황입니다. 

우선 상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논쟁거리가 될 부분은 밑줄과 볼드체로 표시하겠습니다. 1사 만루에서 타자 박성한이 1루수 쪽으로 빠르게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쳤습니다. 타구는 1루수 김민성의 미트를 스치고 1루심 우효동에 맞아버렸습니다. ①우효동 1루심은 이 타구가 파울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이윽고 심판들이 모여 페어로 번복했고, 페어 선언을 납득하지 못한 LG 측에서 비디오판독을 신청했습니다. ②비디오판독 결과 원심인 페어가 유지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심판진은 ③1루 주자인 한유섬을 아웃으로 처리합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한유섬은 1루수 태그아웃입니다. 그리고 심판진은 비디오 판독 결과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④SSG 김원형 감독을 퇴장시킵니다. 

하나의 상황인데 정리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그만큼 어제의 상황이 개인적으로 정말 아쉬웠습니다. 그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누가 파울/페어를 선언해야 하는가? 합의심을 통해 첫 파울 선언을 번복할 수 있나? 

가장 근원적인 문제, 박성한의 타구가 1루수 미트에 맞았는지 여부를 판정해야 하는 심판은 누구인지를 설명하겠습니다. 

원칙적으로 내야에서의 파울/페어 선언의 담당은 구심입니다.(공식야구규칙 8.03(a)(3)) 하지만 이는 원칙일 뿐, 공에 대한 판단을 가장 잘 내릴 수 있는 심판 누구든 내릴 수 있습니다. 이번 건의 경우 1루심이 가장 판단을 내리기 좋은 상황입니다. 타구가 워낙 빨라 구심이 자리를 잡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구심이 파울/페어 선언을 할 때는 파울선의 연장선(그림에서 빨간색 선) 위로 올라가 판정을 내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배병두 구심이 빨간선 위로 나가서 보기에 어려울 정도로 타구가 빨랐습니다. 따라서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확인한 1루심이 판정을 내리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1루심이 파울을 선언한 이상 정말 완벽한 오심이 아니라면 번복해서는 안 됩니다. 상황을 보면 1루심의 파울 선언에 맞춰 구심이 두 손을 들면서 볼데드 신호를 하고 있습니다.  심판 두 명이 다른 재정을 내린 것이 아니기에 적어도 이 순간까지만 보면 심판 합의로 번복할 이유는 없는 것이지요. (공식야구규칙 8.03 (c))

한편 1루심은 자신의 판정에 확신이 없는 경우 다른 심판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1루심이 내린 파울 재정을 1루심의 의사에 따라 고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심판원이 자의적으로 합의를 통해 재정을 바꾸려고 한 것이라면 이는 잘못된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공식야구규칙 8.02(c)은 재정을 내린 심판원으로부터 상의를 요청받은 경우를 제외하고 심판원은 다른 심판원의 재정에 대하여 비판하거나 변경을 촉구하거나 간섭할 수 없다”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박기택 심판팀장이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연유로 합의심이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할 필요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② 비디오판독 결과 원심인 페어가 유지?

위 두 사진은 KBO 비디오판독센터가 업로드한 비디오판독 근거 영상의 일부분입니다. 3분을 꼬박 다 채운 이 판독은 원심인 ‘페어’ 유지로 결정되었습니다. 시간을 다 채우도록 결정이 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파울/페어인지 영상만으로 확인할 수 없어 원심을 유지한 것으로 추측됩니다.(“비디오 판독이 시작된 후 3분 안에 판정을 뒤집을만한 근거를 발견하지 못할 경우 원심 유지로 판정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비디오판독센터가 확인한 카메라 각도로는 파울/페어 타구를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파울/페어를 판정하기 가장 좋은 위치는 파울선 바로 위입니다. 베이스 위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설치된 카메라 각도는 파울선을 사선으로 바라보고 있어 좋은 각도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파울/페어 판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스리피트 수비방해 판정을 내릴 때 사용하는 카메라 각도를 왜 사용하지 않았는지가 궁금합니다. KBO 혹은 중계 방송사가 이 각도를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것이 아닌데 말이죠. 

여담이지만 KBO 심판진은 근거 부족으로 인한 원심 유지라고 해도 이를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비디오판독 과정을 보면 비디오판독에 대한 결과는 번복(Overturned), 확정(Confirmed), 유지(Stands) 세 가지가 있고, 2022년부터 심판팀장이 세 단어 중 하나를 밝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디오판독센터도, 경기장 안에 있는 심판진도 셋 중 하나가 아닌 상황에 대한 결과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③1루주자인 한유섬은 왜 아웃인가

가장 큰 논란이 된 부분이죠. 왜 한유섬은 아웃이 되었을까요? 중계영상 및 비디오판독 영상, 그리고 한 팬이 촬영한 영상을 확인하면 LG 수비수 그 누구도 한유섬을 태그하거나 2루에서 한유섬을 포스아웃으로 잡지 않았습니다. 박성한이 1루에 도착한 상황에서 한유섬은 1루 베이스에 머물러 있었고, 나머지 2루와 3루 주자는 각각 한 베이스씩 진루했습니다. 이 상황에 대해 허운 심판위원장은 “1사 만루에서 타자가 치고 인플레이가 되면 주자는 진루할 의무가 있다. 한유섬이 주자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페어 후 볼데드 상황이었고 한유섬도 다른 주자처럼 한 베이스를 가야 했는데 2루로 가지 않았다. 그래서 아웃이 선언됐다”라고 말을 하죠. 

 

주자의 진루 의무를 규정한 규칙은 공식야구규칙 5.09(b)(6) 입니다. ”타자가 주자가 됨에 따라 진루할 의무가 생긴 주자가 베이스에 닿기 전에 야수나 그 주자나 베이스에 태그하였을 경우“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공식야구규칙의 기원인 Official Baseball Rules에는 어떻게 나와 있을까요?

5.09(b)(6) He or the next base is tagged before he touches the next base, after he has been forced to advance by reason of the batter becoming a runner.

원문에서는 포스 상황에 마주한 주자를 ‘has been forced to advance’라고 설명합니다. 달리 말하면 타자주자 혹은 후위주자로 인해 점유하던 베이스에서 쫓겨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진루할 의무가 아니라 “비워줘야 할 의무”가 더 적합한 표현입니다.

게다가 공식야구규칙에서 “비워줘야 할 의무”라는 단어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공식야구규칙 5.06(c)(1)에 보면 “타자가 주자가 됨으로써 베이스를 비워줘야 하는 각 주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OBR의 같은 규정에는 “Runners, if forced, advance”라고 나와 있고요. 즉, 한국 야구 규칙에서도 forced runner가 진루해야 할 의무가 있는 주자가 아니라 점유한 베이스를 비워야 하는 주자라는 개념이 있는 셈입니다. 점유한 베이스를 비운 후 주자가 안전하지 않은 상태에 남아 있는 것은 주자의 자유의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한유섬, 박성한 두 선수가 동시에 1루를 밟고 있던 상태에서 수비수가 두 선수에게 모두에게 태그를 시도했다면, 박성한은 살고 한유섬은 죽습니다. 

 

따라서 주자에게 “진루할 의무”라는 말은 규칙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해석을 잘못한 표현입니다. 포스상태가 된 주자는 계약기간이 끝난 세입자와 같은 입장입니다. 세입자에게는 집을 비워야 하는 의무는 있습니다. 하지만 꼭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분간 노숙(?)을 하거나, 호텔 생활을 하는 등 다른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허운 위원장의 발언은 잘못된 번역에서 기인한 오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1루 주자 한유섬은 1루 베이스 위에서 방황했지만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2루로 진루합니다. 물론 이미 심판진이 볼데드를 선언한 이후이지만요. 그런데 이 상황에서 LG 수비진이 한유섬에 대해 수비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LG 수비수들은 이 상황이 파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한편 1루 주변에서 선수들이 파울을 가정하고 플레이 한 상황에서, SSG의 2루 및 3루주자는 손해볼 것이 없기에 다음 베이스로 진루했고 타자주자 역시 1루로 달렸습니다. 

하지만 이 타구가 최종적으로 페어가 되었다면 결국 볼데드 선언이 없던 것입니다. 따라서 LG가 한유섬에게 수비를 하지 않은 인플레이 상황에서 한유섬은 2루 베이스를 밟았기 때문에 2사 13루가 아니라 1사 만루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만약 한유섬이 덕아웃 쪽으로 걸어갔다면 이는 다른 상황이 됩니다. 5.09(b)(2)에 의거, 주루 포기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유섬은 조심스럽게 2루로 향했다는 것을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주자의 또 다른 의무인 주루의 의무를 포기한 것도 아닙니다. 

 

④김원형 SSG 감독의 퇴장

마지막으로 볼 사안은 김원형 SSG 감독의 퇴장 이유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김 감독은 비디오판독 판정 결과에 항의해서 퇴장당했습니다. 하지만 비디오판독은 박성한 타구의 파울과 페어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김 감독은 1루주자 한유섬이 왜 아웃이 되었는지를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비디오판독 이후 일어난 항의는 맞지만, 김 감독이 페어 타구를 파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닌 이상, 자동적으로 김 감독을 퇴장할 근거는 없습니다. 심판진은 파울/페어에 대한 비디오판독과, 그로 인한 사후 처리는 별개의 것으로 처리했어야 합니다. 만약 김 감독이 어필을 하는 과정에서 심판과 물리적인 접촉을 했거나, 혹은 과격한 반응으로 경기를 지연시키려 했다고 한다면 심판진은 김 감독을 퇴장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 감독은 과거를 교훈 삼아 정중하게 한유섬이 왜 아웃되었는지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명백한 심판진의 잘못입니다. 

 

규정 오적용, 비디오판독 미진함, 규칙 번역의 문제가 모두 섞인 총체적 난국

KBO에서는 우효동 1루심이 공식야구규칙 5.06 (c) 볼데드 (6)을 오적용했다는 이유로 우효동 심판에게 출장정지 징계를 내렸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 심판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타구가 미트에 닿지 않고 파울지역에 있는 자신이 곧바로 맞았다고 판단했기에 파울 판정을 내렸고, 그런 논리라면 정당한 판정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자신의 판정을 올바르게 바꾸기 위해 우 심판이 직접 합의판정을 요구했다고 한다면, 더더욱 우 심판을 징계한다는 것은 더욱 어불성설입니다. 또한 인플레이 상황으로 가정하고, 그에 따른 주자의 진루 결과를 결정한 것은 비디오판독센터이기 때문에 최종 책임은 우 심판이 아닌 비디오판독센터가 져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정리하자면 이번 사건은 규정의 오적용, 비디오판독의 미진함, 규칙에 대한 잘못된 번역이라는 문제가 한 번에 섞이면서 커져 버렸습니다. 만약 1루심이 파울을 선언한 것에 대해 곧바로 비디오판독이 제기되었다면, 혹은 3피트 위반 여부를 확인하는 각도에서 파울/페어 타구를 판정했다면 등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또한 KBO의 공식적인 설명과 사후처리 또한 안타깝습니다. 특정 한 명을 지목해 희생양을 만들어서 사건을 무마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기해보며 글을 마칩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 = Naver, 스타뉴스, Close Call Sports, MLB, 스포츠서울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오연우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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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제가 알기로 야구는 아웃될 상황을 규정하고 해당 규정에 해당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아웃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유섬이 아웃될 근거가 없기 때문에 페어로 번복된 경우 2루로 가야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하는데 제 생각이 틀렸을까요?

  2. 심판님 영상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1루심은 파울을 외친것이 아닌 자신이 공에 맞았다고 볼데드 시그널을 한겁니다 1루선상 빠른 타구였기에 비디오판독으로도 1루미트에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여러번 돌려 봐야 알수있는 상황입니다. 1루심은 미트에 맞지 않고 자신이 다이렉트로 맞았다고 판단하여 볼데드 선언 이후, 스스로 주심에게 조언을 구하러 간 겁니다. 주심을 만나 나 맞았다, 못 봤다고 입 모양에 나옵니다.

    보통 베이스 앞은 주심이 파울페어 선언 하지만 요즘은 번트 빼고 나머지는 루심이 합니다.

    메뉴얼대로 잘했는데 해설자가 파울선언 했다고 중계하고, 구단주가 KBO 찾아가서 중징계를 받은 것으로 안타깝다는 제 의견입니다

  3. 중계에서도 언급했지만 심판이 요청하는 비디오판독은 없어졌다고하니 1루심이 비디오판독을 신청할 순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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