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코빈의 몰락, 그리고 슬라이더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희진 >

2019년은 패트릭 코빈에게 영광의 한해였다. 소속팀인 워싱턴 내셔널스는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키며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했고, 코빈 본인도 워렌 스판상을 차지하며 FA 계약의 희망찬 출발을 알렸다. 2018~2019시즌 2년 연속 20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좋은 성적을 기록했고, 당시 나이도 29살에 불과해 팬들의 기대가 컸다.

그러나 이듬해, 코빈은 소속팀과 함께 거짓말 같이 무너졌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의 부상, 맥스 슈어저의 트레이드 이탈로 인한 공백을 메워야 했지만, 도리어 11경기 2승 7패 평균자책점 4.66을 기록했다. 선발진의 주축 3명이 모두 무너진 2020년 워싱턴은 승률 0.433(26승 34패)으로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최하위에 그쳤다. 

부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워싱턴 이적 첫해 fWAR 4.7을 기록했던 코빈은 지난 3년간 2.2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불명예스러운 기록은 이뿐만이 아니다. 해당 기간 최다 패(42패), 최저 ERA(5.82)의 주인공은 모두 코빈이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걸까?

< 패트릭 코빈 2018~2022시즌 성적(2020년 제외) >

 

슬라이더와 함께 시작된 영광, 그리고 몰락

코빈을 대표하는 구종은 슬라이더다. 평범한 투수에 불과했던 코빈은 2017년부터 조금씩 슬라이더의 구사율을 높이며 리그 최고의 좌완 투수로 발돋움했다. Whiff%(스윙 중 헛스윙 비율)이 50%가 넘을 정도로 위력이 막강했고, 코빈은 슬라이더로만 매년 100개 이상의 삼진을 솎아냈다.

몰락의 원인을 제공한 것도 슬라이더였다. 지난해 코빈의 슬라이더 관련 지표를 보면 4년 전까지 위력적인 슬라이더를 던졌던 투수가 맞는지 의문이다.

< 2018~2022시즌 슬라이더 성적(2020시즌 제외) >

피안타율과 피장타율의 증가 폭도 놀랍지만 가장 집중해서 봐야 할 부분은 Whiff%다. 전성기 시절에는 50%를 능가하던 Whiff%가 지난해에는 30% 중반대까지 추락했다. 중요한 것은 슬라이더 자체에 큰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슬라이더의 구속이 떨어지지도 않았으며 무브먼트가 큰 폭으로 떨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코빈은 2020년부터 슬라이더를 던질 때 익스텐션을 0.7피트 정도 늘렸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슬라이더 체감 구속의 증가로 이어졌다. 실제로 2018년 시속 81마일(실제 구속 81.7마일)이었던 슬라이더의 체감 구속은 2022년 83.5마일(실제 구속 82.7마일)로 증가했다. 타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까다로운 공이 된 것이다.

 

좌타자와 슬라이더, 무너져 버린 제구력

하지만 코빈은 두 가지 부분에서 실패를 범했다. 바로 터널링과 제구다. 먼저 좌타자를 상대할 때 코빈의 슬라이더 활용법을 살펴보자. 2018년 좌타자 상대 시 코빈이 사용하던 구종은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였다(슬라이더 52.7% 포심 35.6%). 당시 이 두 구종의 제구는 완벽했다. 코빈은 서로 정반대로 움직이는 두 구종을 철저하게 좌타자 바깥쪽 코스에 투구하며 그 효과를 극대화했다. 하지만 2022년의 코빈은 달랐다. 슬라이더의 몰리는 공도 소폭 증가했지만(존 중심부 투구비율 18.3%->23.3%), 더욱 중요한 것은 포심 패스트볼의 제구가 무너지며 존 바깥쪽 라인 컨트롤이 전혀 되지 않았다.

< 2018년 피치 히트맵(위) / 2022년 피치 히트맵(아래) >

 

우타자와 슬라이더, 실패한 터널링

이번에는 우타자를 상대로 코빈의 슬라이더가 통하지 않은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자. 우타자를 상대할 때 코빈이 가장 많이 던지는 구종은 싱커와 슬라이더이다. 가끔 포심 패스트볼과 체인지업도 던지지만, 싱커와 슬라이더 조합의 구사율이 70% 중반대를 넘는 만큼 결국 성패는 이 조합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 2018년 피치 히트맵(위) / 2022년 피치 히트맵(아래) >

싱커의 제구가 아쉽긴 했지만, 지난해 우타자 상대 시 슬라이더의 제구력은 전성기에 비해 크게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바로 ‘터널링’이다. ‘터널링’이란 투구 궤적을 최대한 길게 일치시키는 것으로, 두 구종의 터널링에 성공한다면 타자가 스윙 여부를 판단하는 시점(Commit Point)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 이 터널링에는 주로 회전 방향이 반대인 두 구종을 사용하는데, 대표적인 예시로 포심과 커브, 그리고 슬라이더와 싱커가 있다.

< 2018년 3D 투구 궤적(위) / 2022년 3D 투구 궤적(아래) >

< 2018년 3D 투구 로케이션(위) / 2022년 3D 투구 로케이션(아래) >

2019년 코빈의 우타자 상대 터널링은 성공적이었다. 슬라이더(노란색 궤적)와 싱커(주황색 궤적)는 Commit Point(보라색 점)까지 동일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오다가 홈플레이트에서는 로케이션이 분리되었다. 하지만 2022년 코빈은 터널링에 완전히 실패했다. 슬라이더와 싱커는 Commit Point까지 완전히 다른 궤적을 그렸다. 슬라이더의 로케이션은 비슷했지만, 타자 입장에서는 두 구종을 훨씬 수월하게 구분할 수 있었고 이는 슬라이더가 통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졌다.

 

코빈은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슬라이더가 통하지 않자, 코빈은 지난해부터 투구 전략을 바꿨다. 슬라이더의 구사율을 낮추는 대신 싱커의 구사율을 45% 수준까지 높였다. 하지만 싱커 전략 또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피안타율 0.340). 무브먼트도 평범하고 구속도 91.8마일로 리그 평균(93.6마일) 이하인 코빈의 싱커는 타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코빈이 부활하려면 슬라이더가 살아나야 한다. 워싱턴과 FA 계약은 이제 2년이 남았다. 과연 그는 마지막 2년 동안 위력적인 슬라이더와 함께 재기에 성공하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까?

 

참고 = Baseball Savant, Fangraphs

야구공작소 원정현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김동민, 유은호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희진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1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