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머리의 남자, 브랜든 마쉬

< 사진 출처 = 필라델피아 필리스 공식 트위터 >

필리스 데이케어(Philies Daycare, 필리스 유치원).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젊은 선수들을 묶어 부르던 별명이다. 지난해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이 데이케어에 합류한 선수가 있었다. LA 에인절스와의 트레이드로 데려온 브랜든 마쉬다. 마쉬의 성격은 기존 젊은 선수들과 잘 맞아떨어졌고, 클럽하우스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여기에 타고난 수비력은 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은 덤이다.

올 시즌 마쉬는 지난해보다 크게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까지 마쉬는 타격보단  수비와 주루에서 더 돋보이는 선수였다. 하지만 마쉬는 올해 스프링 캠프 두 달 전부터 필리스의 타격 코치인 케빈 롱과 함께 일찍 시즌 준비를 시작했다. 목표는 하나였다. 타자로서 완성도를 높이는 것. 즉, 하위 타순에 배치돼 수비로 팀에 기여하는 타자가 아닌, 좌투 우투를 가리지 않고 공략할 수 있는 타자가 되는 것이다. 마쉬는 ‘꾸준함’이란  단어를 마음에 새기고 훈련했다.

올해 마쉬에게 생긴 변화는 근본적으로 본인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데 있다. “제 역할은 1루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팀엔 홈런 치고, 장타를 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제 역할은 1루에 나가서 그 선수들이 절 불러들일 수 있게 하는 거예요. 하위타순이 시작하는 시점에서 조금 더 일관성을 높여서 상위 타순이 저희를 다 불러들일 수 있게 할 뿐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기 때문에  마쉬는 타석에서 많은 공을 보고 있다. 마쉬는 올 시즌 타석당 4.3개의 공을 보고 있는데 이는  2021, 2022시즌 3.9개였던 것에 비해 0.4개 늘어난 수치다. 여기에 더해 더 많은 컨택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하지만 스윙 비율은 오히려 줄었다. 본인이 원하는 공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특히 초구 스윙률은 10% 이상 줄였다.

< 표1 : 마쉬의 연도별 Plate Discipline >

마쉬의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럽게 타석에서 더 좋은 타구를 생산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wOBACON(컨택트 된 타구에 대한 wOBA)가 0.610으로 현재 메이저리그 1위다. 1루로 나가겠다는 마음은 대폭 상승한 볼넷 비율에서도 드러난다. 올 시즌 마쉬의 타석당 볼넷 비율은 12.7%로 지난해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 표2 : 마쉬의 연도별 지표 >

스윙-테이크 프로파일 역시 이러한 마쉬의 변화를 보여준다. 2022시즌에는 마쉬의 득점 생산력은 공을 지켜 보며 참는 능력에서 나왔다. 스윙을 하면 오히려 본인의 득점 생산력을 반감시켰다. 2023 시즌에는 스윙으로 인한 생산력이 늘어났다. 확실하게 존으로 들어오는 공들에 대해서 반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2022시즌 마쉬의 Swing-Take 프로파일 >

< 2023시즌 마쉬의 Swing-Take 프로파일 >

그렇다면 과연 지난겨울 연습한 대로 마쉬는 좌완 투수를 상대로도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을까? 현재까지 성적은 매우 긍정적이다. 아직 게임 수, 혹은 타석 수가 부족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마쉬가 목표했던 대로 꾸준하게 우완과 좌완을 가리지 않고 공략하고 있다.

< 표3 : 마쉬의 시즌 별 좌투 상대 성적 >

마쉬의  또 하나의 달라진 점은 타격폼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겨울 타격코치 롱과 피닉스 근방에서 한 훈련을 통해 마쉬는 타격폼을 완전히 뜯어고쳤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지난해까지 타격폼을 기억하는 에인절스 팬들이 올해 마쉬가 타석에 들어선 모습을 보면 같은 선수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다. 롱 코치가 2022시즌 후반기에 마쉬를 지켜보면서 느낀 그의 가장 큰 약점은 패스트볼에 타이밍이 늦다는 것이었다. 

< 표4 : 마쉬의 시즌 별 패스트볼 계열 상대 성적 >

타격코치 롱이 판단했을 때마쉬의 문제점은 배터 박스 내에서의 잔 동작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지난해 에인절스에 있을 당시 마쉬의 패스트볼(포심, 투심) 상대 성적은 타율 0.220 장타율 0.346에 그쳤고, 헛스윙 비율은 29%에 달했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패스트볼(포심, 투심)을 상대로 타율 0.338 장타율 0.677을 기록 중일 뿐만 아니라 헛스윙 비율도 23.6%까지 낮췄다.

사실 롱은 마쉬의 타격폼을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조금씩 교정해 왔다. 그리고 겨우내 특훈을 거치면서 현재의 타격폼으로 조정했다.마쉬는 에인절스 시절 하던 토탭을 완전히 없앴다. 그리고 아래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에인절스 시절 어깨너비 정도로 서 있던 마쉬는 현재 거의 기마자세에 가깝게 몸을 낮추고 타격에 임한다.

<마쉬의 타격자제. 2022 시즌과 2023시즌>

지난 5월 19일 MLB 네트워크에 출연한 크리스 영은 마쉬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롱 코치와의 경험을 소개한 바 있다.

“손을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뒷다리를 사용해서 공을 치려고 하면 스트라이크 존을 컨트롤하고, 좋은 공을 골라 칠 수 있습니다. 공이 존으로 들어오면, 손은 그저 같이 움직일 뿐입니다. 그리고 더 좋은 공을 골라내는 것도, 더 원하는 공을 칠 수 있는 겁니다. 멀리 들어오는 공들을 보고 치려고 나가면 손이 돌아 나왔습니다. 뒷다리를 생각하며 치려고 하니 자연스럽게 조금 더 가까운 공들을 치게 되었죠.” 

지난해 월드시리즈 우승 문턱에서 좌절한 필라델피아의 2023시즌 목표는 당연하게도 월드 시리즈 우승일 것이다. 실제로 필라델피아는 지난 오프 시즌 트레이 터너(11년 3억 달러), 타이후안 워커(4년 7,200만 달러), 맷 스트람(2년 1,500만 달러), 크레이그 킴브렐(1년 1,000만 달러) 등 FA 영입에만 4억 달러(5,280억 원)에 가까운 돈을 지출하며 팀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비록 중심타자 중 한 명이었던 1루수 리스 호스킨스가 스프링캠프에서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면서 시즌 아웃이 되는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며 현재까진 22승 26패(.458)로 내셔널리그(NL) 동부지구 4위에 머물고 있지만, ‘주포’ 브라이스 하퍼가 토미 존 수술에서 160일(MLB 역대 최단기간) 만에 복귀하는 등 5월 들어 분위기 반전의 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달라진 마음가짐과 타격폼으로 지난해 대비 타격에서 큰 발전을 이룬 마쉬가 있다. 2023시즌 마쉬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참고 = Baseballsavant, Fangraphs, Theathletic

야구공작소 안세훈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김동민, 도상현,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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