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은 실밥 쪽으로 휠까? – SSW의 물리학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찬희 >

2020년에 Seam-Shifted Wake(SSW)를 소개하는 글을 몇 개 번역한 적이 있다. 최근 그 인연으로 한 기자님으로부터 SSW의 원리에 대해 질문을 받았는데, 막상 SSW의 구체적인 원리로 들어가자 스스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일을 계기로 SSW의 구체적인 원리에 대해 공부해 보았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이해한 SSW의 원리를 소개하려 한다. 최대한 노력했으나 필자의 유체역학에 대한 지식도 독자 여러분과 마찬가지 수준이다. 설명이 미흡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발견한 독자께서는 번거로우시더라도 댓글이나 메일(dhdusx@gmail.com)로 지적해 주시면 더 정확한 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공이 비행하는 과정에 작용하는 힘에 대해 주로 중력과 항력, 마그누스 힘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중력은 단순히 공을 아래로 당기는 힘이고, 항력은 공 진행방향에 반대로 작용하는 힘이며, 마그누스 힘은 공의 회전에 의한 힘이다. 셋 중 어느 것에도 실밥이 등장하진 않는다. 자연히 공의 비행과 관련해 실밥의 물리적 작용에 대한 논의는 많지 않았다. 실밥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기술, 장비가 부족했던 면이 컸다. 

하지만 당연히 실밥은 영향을 미친다. 트래킹 장비와 초고속 카메라가 상용화되면서 중력, 항력, 마그누스 힘만으로 계산한 공의 움직임과 실제 공의 움직임이 다른 경우가 관찰되었다. 특히 너클볼의 경우 회전이 최소화되었으므로 중력과 항력만을 받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어떤 공보다도 움직임이 변화무쌍했다. 이렇게 기존의 이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공의 움직임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개념이 SSW다. 

SSW는 야구공의 실밥(Seam)에 의해 ‘후류(Wake)’가 이동하는(Shifted) 현상과 그에 따른 공의 움직임을 말한다. 후류란 아래 사진에서 오리가 물을 헤치고 나갈 때 뒤로 생기는 물결과 같은 것인데, 야구에서는 공이 공기를 헤치고 나갈 때 생긴다.

SSW 효과는 투구가 회전 방향을 중심으로 양쪽 면이 실밥에 의해 비대칭을 이룰 때 나타난다. 공이 회전하며 날아갈 때, 회전 방향을 기준으로 한쪽 면은 실밥이 두드러져 거칠고 다른 쪽 면은 실밥이 없어 매끄러우면 공은 거친 쪽으로 휘게 된다. 아래 영상은 크리켓 공에서 이 효과를 관찰한 것이다.

흔히 싱커가 SSW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구질로 알려져 있다. 최근 각광받는 스위퍼와 같은 구질도 SSW 효과를 이용한 것이다. 아래 영상은 블레이크 트레이넨이 던진 싱커다.

그리고 이 글의 목표는 물리적으로 왜 하필 공이 거친 면 쪽으로 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Warning! Gory Physics Ahead.

 

경계층

공을 던지면 공이 공기를 헤쳐나간다. 편의를 위해 공이 전진한다기보다 바람이 불어서 공기가 공으로 다가온다고 해 보자.

이때 공기에는 어느 정도 점성이 있으므로 (공기와 공 표면 사이의 마찰력에 의해)공기가 공의 표면에 달라붙는다. 즉 공기의 속력이 느려진다.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면 공기 대신 꿀로 이루어진 바람이 공을 향해 불어온다고 생각해도 좋다. 공과 아주 멀리 떨어진 꿀은 공이 있으나 없으나 자기 속도로 전진하겠지만 공 가까이 있는 꿀은 공 표면에 붙을 것이다.

다시 공기로 돌아와서, 공기가 공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공의 영향을 적게 받게 되고(속도가 적게 느려지고) 어느 시점부터는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다(공과 100m 떨어진 공기가 공에 영향을 받을 리 없다). 공을 중심으로 공에 의해 흐름에 영향을 받는 공기의 영역을 ‘경계층(boundary layer)’이라 한다.

<그림 1> 화살표는 공기의 속도를 나타낸다. 공기가 물체 표면에서 가장 느려지고 물체 표면에서 떨어질수록 속도를 회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림 2> 물체 표면에 인접한 공기 분자일수록 더 속도가 느려서 점점 ‘뒤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속도가 물체에 의해 영향을 받기 시작하는 지점이 경계층의 경계를 형성한다. (그림에서 The edge of boundary layer)

경계층에는 ‘층류 경계층(laminar boundary layer)’ ‘난류 경계층(turbulent boundary layer)’의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층류 경계층은 공기 분자가 공 표면에 평행하게 층을 이루어 이동하는 경계층이다. 아래 <그림 3>의 가장 왼쪽에 있는 ‘laminar boundary layer’ 영역에서 화살표들이 바닥과 평행하게 그려져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화살표가 세 개의 층으로 나뉘어 있고 층 간 공기가 서로 섞이지 않는다.

난류 경계층은 경계층의 공기들이 층 간으로 뒤섞이면서 이동하는 경계층이다. <그림 3>의 가장 오른쪽 ‘turbulent boundary layer’ 영역에서 화살표들이 서로 섞이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층 간 공기가 서로 섞이는지의 여부가 뒤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림 3> 공기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상황이다.  처음에는 층류 경계층을 형성했다가 난류 경계층으로 바뀌는 모습이다.

경계층이 층류로 형성되려면 공기가 가지런하게 이동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반대로 말하면 경계층이 물체(공) 표면을 따라 이동할 때 그 표면에 무언가(실밥)가 튀어나와 있다면 가지런한 흐름이 방해받아 난류 경계층으로 전환되기 쉽다.

정리하자. 공기가 공으로 불어오면 공기와 공의 마찰력으로 공기가 감속되는데 이 감속되는 영역을 경계층이라 한다. 경계층에는 가지런하게 이동하는 층류 경계층과 질서 없이 이동하는 난류 경계층이 있다. 실밥 등에 의해 층류 경계층이 흐트러지면 난류 경계층으로 바뀌기 쉽다.

 

유동 박리

경계층 효과는 잠시 무시하고 다시 공에 바람이 불어 오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아래 <그림 4>에서는 바람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불고 있다.

<그림 4>

공 앞쪽 정면(그림에서 빨간색 stagnation point)에서는 10의 속도로 다가오던 공기가 공에 부딪쳐 일시적으로 완전히 정지한다. 그보다 조금 위의 파란색 점에 부딪친 경우에는 속도가 완전히 0이 되진 않고 (파란색 점에서의 접선 방향의 속도인)6은 남는다. 제일 위의 보라색 점에서는 공에 부딪치지 않으므로 속도가 그대로 10이다.

베르누이 법칙에 따르면 공기의 속도와 압력은 반비례한다.1 공기의 속도가 보라색(10) > 파란색(6) > 빨간색(0) 점 순이므로 공기의 압력은 그 반대인 빨간색 > 파란색 > 보라색이 된다.

공기는 일반적으로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향한다. 그림 4에서 빨간색 점에서 보라색 점으로 올라갈수록 압력이 낮아지므로, 공기의 이동은 그 방향을 따라 힘을 받는다.

<그림 5>

<그림 5>의 초록색 화살표가 그것을 나타낸 것이다. 공기가 공의 표면을 타고 올라가는 동안 공기는 점점 가속되며 공기가 공의 최상단 지점에 도착하면 최고 속도를 갖는다. 이처럼 공기의 진행 방향에 따라 압력이 낮아져 진행 방향으로 가속을 받는 상황을 순압력구배(favorable pressure gradient)라고 한다.

공기가 공의 최상단에 도착한 다음부터는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공기가 공의 표면을 타고 내려올 때는 공의 최상단이 가장 압력이 낮고 공기의 진행방향에 따라 압력이 커진다.

이는 공의 단면적이 가장 두꺼운 시점이 공의 최상단이고, 표면을 타고 내려옴에 따라 공의 단면적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공이 차지하는 면적이 줄어들기 때문에 반대로 공기가 통과할 수 있는 단면적은 넓어진다. 같은 양의 공기가 더 넓은 단면적을 통과하면 속도는 줄어든다. 소방 호스를 손으로 꽉 쥐면 물이 지나가는 단면적이 줄어들어 물이 나오는 속도는 빨라지는 원리와 같다. 다시 속도와 압력은 반비례하므로 압력이 높아진다.

그 결과 <그림 5>의 빨간색 화살표 부분처럼 공기가 공의 표면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은 공기가 점점 감속된다. 이처럼 공기의 진행 방향에 따라 압력이 높아져 감속되는 상황을 역압력구배(adverse pressure gradient)라고 한다.

경계층 공기의 속도가 역압력구배에 의해 감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공 표면 근처에서의 속도가 0이 되어 멈추게 된다. 이 순간 경계층이 공 표면에서 떨어지는데 이것을 유동 박리(flow separation)라고 한다.

유동 박리 지점(separation point)보다 뒤쪽으로는 경계층이 역류한다. 이때 공 뒤쪽으로 움직임이 불규칙한 난류 후류(turbulent wake)가 생기게 된다.

정리하자. 공기가 공 표면을 타고 흐를 때 공의 정면에서 공의 최고점까지 올라갈 때는 압력 차이에 의한 영향을 순방향으로 받아 점점 가속된다. 반대로 최고점에서 공의 후면으로 내려갈 때는 압력 차이에 의한 영향을 역방향으로 받아 점점 감속되며, 속력이 0이 되면 공기가 공 표면에서 떨어진다. 이렇게 공기가 표면에서 떨어지는 현상을 유동 박리라고 한다. 유동 박리가 된 지점보다 뒤쪽으로는 난류 후류가 생긴다.

 

난류 경계층의 유동 박리 지연

유동 박리 현상은 층류 경계층과 난류 경계층에서 모두 나타나지만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바로 난류 경계층에서 유동 박리가 더 늦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유동 박리는 경계층의 속도가 점점 줄어들어 공 표면 근처에서의 속도가 0이 될 때 발생한다. 난류 경계층에서 유동 박리가 더 늦게 일어난다는 것은 난류 경계층의 공기가 더 오래 속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왜일까?

층류 경계층은 공기 분자들이 층 간 이동 없이 가지런히 이동한다. 따라서 공 표면 근처의 ‘아래층’ 공기 분자가 공 표면과의 마찰로 인해 감속되고 있을 때, 마찰력의 영향을 덜 받아 속력이 빠른 ‘위층’ 공기 분자들이 힘을 보태줄 수가 없다.

반면 난류 경계층은 공기 분자들의 층 간 이동이 활발하다. 그러므로 공 표면 근처의 공기 분자들이 감속되어도 표면보다 위쪽의 분자들과 계속 뒤섞이면서 더 오래 속력을 유지할 수 있다. 자연히 경계층이 멈추는 시점도 늦고, 유동 박리도 늦게 일어난다.

<그림 6> 공기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층류 경계층(왼쪽 그림)인 경우에 비해 난류 경계층(오른쪽 그림)이 형성된 경우 유동 박리 지점(그림에서 separation location)이 더 공 뒤쪽에서 나타난다.

 

작용-반작용 법칙

조금만 더 힘내자. 이제 정말 다 왔다.

<그림 7>

<그림 7>을 보자. 날아가는 공을 위에서 바라본 것으로, 공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공 위아래의 A, B가 박리 지점이다. 공 위는 층류 경계층이 형성되어 A가 공 앞쪽에 가깝고 공 아래는 실밥로 인해 난류 경계층이 형성되어 B가 공 뒤쪽에 가깝다.

유동 박리가 일어난 공기 분자는 공 표면에서 떨어진 뒤, 박리 지점의 접선 방향으로 이동한다(빨간 화살표 방향). 접선 방향은 공의 진행 방향과는 조금 틀어지게 된다. 특히 A, B 화살표를 보면 공기가 박리가 늦은 쪽 → 이른 쪽으로 굴절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난류 경계층에서 유동 박리가 지연되어 B가 A보다 더 공 뒤쪽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직진해야 할 공기가, 공 때문에 실밥이 없는 쪽으로 굴절됐다. 공이 공기에 힘을 주어 실밥이 없는 쪽으로 밀어낸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작용-반작용 법칙이 등장한다. 작용-반작용 법칙은 에게 오른쪽으로 1만큼 힘을 주면(작용) 그와 동시에 에게 왼쪽으로 1만큼 힘을 준다(반작용)는 법칙이다.

지금은 공기에게 실밥이 없는 쪽으로 힘을 준 상황이다(작용). 작용-반작용 법칙에 따르면 그와 동시에 공기에게 실밥이 있는 쪽으로 힘을 준다(반작용). 자연히 공은 실밥이 있는 쪽으로 밀려난다.2

이것이 SSW에서 공이 실밥이 있는 쪽(거친 면 쪽)으로 이동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SSW가 작용하는 원리를 정리해 보자.

 

  1. 공기가 공을 지나가면 공 표면 근처에서 속도가 줄어드는 층이 생기는데 이것을 경계층이라 한다.
  2. 경계층에는 가지런하게 이동하는 ‘층류 경계층’과 뒤섞여 이동하는 ‘난류 경계층’이 있다.
  3. 공의 한쪽에만 실밥이 도드라지면 도드라진 쪽에는 난류 경계층이 생기고 매끄러운 쪽 에는 층류 경계층이 생긴다.
  4. 경계층이 공의 표면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표면에서 떨어지는데 이런 현상을 유동 박리라고 한다.
  5. 난류 경계층(실밥이 있는 쪽)은 층류 경계층(매끄러운 쪽)에 비해 유동 박리가 늦게 일어난다.
  6. 유동 박리가 늦게 일어나는 쪽(난류 경계층 쪽 = 실밥이 있는 쪽)에서 일찍 일어나는 쪽(층류 경계층 쪽 = 매끄러운 쪽)으로 공기가 굴절된다.
  7. 공이 공기를 굴절시키는 것과 반대 방향으로 공기가 공을 이동시킨다.

 

특히, 그림 7은 (그림은 크리켓 공이지만 야구로 치면)흔히 보는 우완 투수의 싱커에 해당한다.

 

참고 = 하단 참조

야구공작소 오연우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홍기훈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찬희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개념의 혼란을 겪고 싶지 않은 독자는 읽지 않는 것이 나은 추가 사항 (Page 2)

  1. 베르누이 법칙은 점성이 없는 이상적인 유체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유체는 없고, 공기도 점성은 있지만 베르누이 법칙을 적용하는 데에 큰 무리는 없다.
  2. 공기가 실밥 있는 쪽에서 없는 쪽으로 이동하니, 마치 그 방향으로 바람이 분 것처럼 공이 그 방향으로 이동해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 공기의 이동은 공 뒷부분에서 일어나는 상황이므로 공을 직접 움직이는 요인은 되지 못한다.

1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