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재판 : 싱커의 역습 (1)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선홍 >

싱커재판

싱커재판, 그 2년 후

2년 전 필자는 싱커의 위기를 다룬 ‘싱커재판’이라는 글을 썼다. 왜 싱커볼러들이 뜬공 시대에 들어 사라져가는지를 다뤘다. 그리고 ‘시대에 적응해가는 싱커볼러’로 잭 에플린(탬파베이 레이스), 식스토 산체스(마이애미 말린스)를 언급하면서 글을 끝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리그 최고의 유망주로 마이애미를 포스트시즌까지 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한 산체스는 팔꿈치 부상으로 그 기간 단 하나의 공도 던지지 못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 소속이었던 에플린 역시 여러 부상으로 신음하며 2년 동안 181.1이닝에 그쳤다. 그리고 올 시즌이 끝나고 탬파베이에 새 둥지를 틀었다.

부상으로 공을 던지지 못한 산체스는 차치해도 에플린의 삼진율은 단축 시즌이 끝나자 바로 커리어 평균으로 돌아갔다(2020년 28.6% > 2021년 22.4%, 커리어 평균 22.1%). 결국 기대만큼의 성장을 보여주지 못한 에플린은 작년 부상 복귀 이후 선발 로테이션에서 밀려나는 수모도 당했다.

그렇다면 싱커볼러들은 적응을 실패한 것일까. 이 두 선수를 본다면 그렇다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2년 동안 리그도 변했다. 정확히 말하면 뒤집혔다. 2015년 이후 계속해서 하향 곡선을 그리던 싱커의 구종 가치는 2020년 단축 시즌 이후 완벽한 반등에 성공했다.

< 2015년부터 2022년까지의 싱커와 포심 패스트볼 구종 가치 변화>

즉 싱커볼러들은 이제 시대에 적응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시대의 물결에 올라탔다.

이런 극적인 상황 반전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이를 보기 위해서는 그동안 싱커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움직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 ‘움직임’에 관한 새로운 이론이 싱커에 대한 ‘역전 재판’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횡 움직임의 반격, SSW(Seam-Shifted Wake)

그동안 공 회전에 대한 연구는 ‘마그누스 효과(Magnus Effect)’에 집중되어 있었다. 마그누스 효과는 회전하는 물체에서 속도가 존재할 때 운동 방향의 수직으로 힘이 발생하는 물리 법칙이다.

12시 방향의 회전축에서 100% 회전 효율의 공을 던질 경우 힘은 중력과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게 되어 ‘덜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회전축을 눕힐수록 힘은 지면과 정확히 수직이 아닌 기울어진 상태로 작용하게 되어 우리가 수평 움직임이라 부르는 테일링이 걸리게 된다. 즉 회전축이 12시에 가까울수록 수직 움직임으로 변환될 가능성이 커지고 3시에 가까워진다면 수평 움직임으로 변환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 힘에 직접적인 변인이 회전 속도다. 이 때문에 회전수가 늘어날수록 공의 움직임으로 바뀌는 값은 더 커지게 된다.

< 마그누스 효과를 받는 공1 >

공의 움직임이 온전히 마그누스 힘을 통해 변환된다는 것은 오랫동안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발사각을 중요시하는 뜬공 시대가 개막되면서 덜 떨어지는 패스트볼을 가진 투수들에게 시선이 쏠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2020년 하이 패스트볼 로우 브레이킹볼을 중심으로 한 탬파베이의 성공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템파베이의 셋업맨이었던 피트 페어뱅크스는 정확히 12시의 회전축에서 하이 패스트볼과 그 반대인 회전축을 가진 슬라이더를 구사했다. 뒤이어 나오는 회전 효율 97%에 달하는 높은 회전 효율로 포심 패스트볼을 존 상단에 연신 꽂았다. 이 둘은  템파베이의 ‘필승 공식’으로 월드시리즈 진출에 혁혁한 공을 했다.

월드시리즈에서 탬파베이는 6차전, 앞서가던 경기를 공교롭게도 앤더슨과 페어뱅크스가 차례로 실점을 내주며 우승을 내줬다. 그리고 그해 12월, 드라이브 라인에는 SSW의 개념이 소개됐다(한글 번역 링크). 수직 움직임의 독주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SSW는 실밥과 공기가 부딪칠 때 생기는 기류 차이가 공의 움직임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 공의 거친 면과 만나는 난기류가 부드러운 부분과 만나는 부드러운 기류보다 공의 접촉 시간이 더 길다는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공의 거친 부분은 실밥이다.

< SSW 효과를 설명한 그림2 >

이렇게 된다면 물리 법칙을 통해 공은 난기류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회전축과 무관하게 움직임이 발생하면서 같은 회전축이라도 공을 잡는 그립에 따라 많은 움직임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호크아이가 측정한 공의 회전축과 실제 공의 움직임이 다른 경우가 발견되면서 SSW의 아이디어는 힘을 얻었다.

SSW가 소개되기 전까지 공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변인은 회전축과 회전 방향이라는 것이 야구계의 통념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회전축에 수직 방향으로 작용하는 마그누스 힘과 공이 나아가면서 작용하는 중력이 공의 움직임을 결정짓는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SSW 효과로 두 가지 변인 이외의 추가적인 움직임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남으로써 공 움직임에 대한 연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SSW로 큰 이득을 얻은 투수들은 누구일까?

SSW의 아이디어로 돌아가 보자. SSW의 효과로 인해 공이 난기류 쪽으로 이동하면서 실밥 쪽으로 추가적인 움직임을 얻는다. 의도적으로 기류를 실밥에 접속하도록 공을 잡아야지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야구공의 두 실밥의 균형을 무너뜨려야 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은 횡 움직임을 가진 싱커에서 두드러진다.

< 포심(왼쪽)과 싱커(오른쪽)의 회전3 >

그렇다. 싱커볼러들은 시대에 대항할 새로운 무기를 얻게 된 것이다.

 

나비효과 : 태풍을 부른 SSW

SSW은 ‘확실히’ 싱커의 움직임에 혁신적인 변화를 주었다. 하지만 SSW로 얻어낸 움직임만으로 포심과의 역전을 끌어내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이 SSW의 바람은 싱커와 포심을 넘어 변화구에도 도달했다. 횡 움직임을 가지면서 실밥을 의도적으로 빗겨 잡는 변화구, 바로 슬라이더이다. 이 바람은 슬라이더를 만나 MLB에 ‘스위퍼’라는 폭풍을 몰고 왔다. 이 폭풍으로 말미암아 싱커볼러들은 드디어 시대의 흐름에 올라탈 수 있었다.

다음 글에서는 어떻게 SSW가 스위퍼를 탄생시켰는지와 싱커볼러들은 어떻게 스위퍼를 활용하여 주류로 올라설 수 있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역전재판 : 싱커의 역습 (2)

참고 = Fangraphs.com, Wikipedia, Drivelinebaseball, The Athletic

야구공작소 조광은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양재석,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선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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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마그누스 힘(파란 화살표)이 작용한다.
  2. 거친 면에 닿은 난기류에 접촉 시간이 늘어나면서 공에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3. 공의 두 면이 대칭을 이루는 포심과 달리 싱커의 경우 이 균형을 무너뜨려 횡 움직임을 창출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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