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버 스테판의 위대한 도약, 그리고 날개가 되어준 스플리터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선홍>

트레버 스테판은 2017년 드래프트에서 뉴욕 양키스에 지명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3라운드 92순위). 대부분의 선수가 그렇듯 스테판도 핀-스트라이프를 입고 양키 스타디움의 마운드를 밟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2019년 팀 내 유망주 순위 8위에 이름을 올릴 때만 해도 그 꿈은 현실로 다가오는 듯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고, 결국은 좌절됐다. 스테판은 계속해서 마이너리그를 전전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0년에는 코로나 사태가 터져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이후 그는 룰5드래프트를 통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현 가디언스)로 향했다. 그리고 2년 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스테판은 메이저리그 최강의 불펜진인 클리블랜드의 핵심 불펜 투수로 자리 잡았다. 66경기에서 63.1이닝을 던지며 19홀드, ERA 2.69, SD(Shut Down, 투수가 등판해 WPA를 0.06 이상 증가시킨 경우) 25개를 기록했다.

 

브라이언 쇼, 블레이크 파커의 스플리터 수업 

드래프트 당시만 해도 스테판은 포심,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던지는 투수였다. 유망주 시절에도 포심은 플러스(+) 등급을 받았지만, 변화구는 아쉽다는 평이 주였다. 특히 체인지업은 드래프트 당시에도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고, 2021년에도 20-80 스케일에서 45점(리그 평균 수준)의 포텐셜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스테판은 체인지업을 과감하게 버렸다. 그의 선택은 스플리터였다. 스플리터는 리그에서 구사하는 투수가 몇 안 되는 흔치 않은 구종이었지만, 당시 클리블랜드에는 두 명의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 바로 브라이언 쇼와 블레이크 파커다.

“팀의 베테랑인 쇼는 스테판에게 스플리터의 그립을 알려주었고, 당시 클리브랜드 선수였던 파커는 그에게 스플리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 MLB.COM

쇼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마무리였던 J.J. 푸츠에게 스플리터를 배웠다. 쇼 자신은 구종에 적응하지 못해 스플리터를 던지지 않았지만, 그는 10년 전에 자신이 배운 그립을 스테판에게 전수했다. 쇼가 그립을 알려줬다면 파커는 스플리터 구사법을 알려줬다. 한때 최고의 스플리터였던 푸츠의 그립과 빅리그에서 스플리터로 생존에 성공한 파커의 노하우는 스테판을 바꿔놓았다.

* J.J. 푸츠의 경우, 2007년 스플리터 구종 가치 리그 4위를 기록했다. 블레이크 파커는 빅리그 통산 스플리터 구사율이 26.3%였으며 통산 383개의 탈삼진 중 183개를 스플리터로 잡아냈다.

“2년 전 스프링캠프에서 스테판의 투구를 처음 봤습니다. 첫 라이브피칭에서 스플리터를 던졌는데, 와, 진짜 죽이더라고요”

– 셰인 비버, MLB.COM과의 인터뷰에서

하지만 데뷔 첫 시즌은 쉽지 않았다. 43경기에서 3승 1패 ERA 4.41을 기록했고 HR/9는 2.13으로 50이닝 이상 던진 투수 338명 중 325위였다. 그나마 희망적인 부분은 스플리터가 빅리그 레벨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이었다. 전체적인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스테판의 스플리터는 피안타율 0.143과 Whiff %(스윙 중 헛스윙한 비율) 52.5%를 기록했다.

 

스플리터의 구사율을 높이고 날개를 펴다

변화는 결정구인 스플리터의 비율을 높이면서 시작되었다. 2021년 스테판의 스플리터 구사율은 8.1%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이 수치를 27.6%까지 끌어올렸다.

<스테판 스플리터 구사율 변화>

자신이 잘 던지는 구종을 택한 스테판의 변화는 놀라웠다. 첫해 지적받던 대부분의 문제점이 개선됐다. 리그 하위 18%에 해당하던 BB%(볼넷 비율)은 리그 평균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리그 꼴찌 수준이었던 HR/9는 리그 상위권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스테판 BB/9, HR/9 변화>

볼넷과 홈런은 FIP(수비 무관 평균자책점)을 이루는 3가지 요소에 들어간다. 그만큼 운의 영향을 받지 않는 투수의 고유영역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스테판은 어떻게 이 2가지 부분에서 급격한 성장을 이뤄낸 것일까. 먼저 볼넷과 관련된 부분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트레버 스테판 Plate Discipline 스탯>

스테판의 제구력이 1년 만에 급격히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스트라이크 존 밖으로 빠지는 공이 늘었고, Edge %(스트라이크 존 가장자리에 제구된 공의 비율) 이 줄어든 만큼 제구가 더 불안해졌다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Chase %(존 밖으로 빠지는 공에 스윙한 비율)이 10%나 증가했다. 원래는 볼이 될 공에 타자들이 스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스플리터가 있었다.

<트레버 스테판 구종별 Chase%>

작년 스테판이 구사한 3가지 구종 중 가장 높은 Chase%를 기록한 구종은 스플리터였다. 또 다른 변화구인 슬라이더와 10%P 가까이 차이 날 정도로 스테판의 스플리터는 위력적이었다. 스테판은 스플리터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포심은 높게, 스플리터는 낮게 던지며 두 구종의 로케이션을 철저히 분리했다. 특히 앞서있는 카운트에서 스테판의 로케이션 분리는 더욱 뛰어났다.

<Ahead In Count에서의 피치 아스날(베이스볼 서번트)>

<스테판 피치 플링코(베이스볼 서번트)>

<스테판 구종 무브먼트 그림(베이스볼 서번트)>

승부 초반 슬라이더와 포심으로 빠르게 카운트를 잡고, 유리한 상황에서 낮게 스플리터를 던지는 스테판의 전략은 주효했다. 타자들은 포심과 똑같이 오다가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결과적으로 삼진은 늘어났고 볼넷은 줄어들었다. 2021년 리그 224위였던 스테판의 K/BB는 2022년 46위까지 상승했다.

줄어든 홈런 또한 스플리터의 영향이 크다. 2021년 스테판이 기록한 피홈런 15개 중 11개는 우타자에게 기록한 것이었다. 우투수임에도 불구하고 스테판은 우타자에게 훨씬 약한 모습을 보였다.

<2021시즌 스테판 좌우 타자 스플릿 성적>

우타자와 좌타자를 상대하는 데 있어 그의 가장 큰 차이는 스플리터 구사율이었다. 위의 표에서도 언급했지만, 2021년 스테판의 우타자 상대 스플리터 구사율은 1.2%에 불과했다. 포심과 슬라이더 두 가지 구종으로 우타자를 상대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지난해 스테판의 우타자 상대 스플리터 구사율은 21.4%였다. 변화는 실로 엄청났다. 우타자를 상대로 허용한 홈런은 단 1개에 불과했으며 장타율도 0.525에서 0.293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스테판이 우타자에게 스플리터를 던져 허용한 타구 34개 중 배럴 타구는 단 1개에 불과했다.

 

평범한 유망주에서 승리의 보증수표로

룰5드래프트 당시만 하더라도 스테판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그는 트리플 A 경험도 없었고, 더블 A에서조차 ERA 5.24를 기록하던 평범한 선수였다. 하지만 스테판은 위기 속에서도 돌파구를 찾으려 노력했고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방황은 길고, 시작도 늦었지만, 이제는 그도 궤도에 올랐다. 당시 1라운드에 지명된 헌터 그린, 맥켄지 고어, 셰인 바즈 등이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스테판의 퍼포먼스는 실로 놀랍다.

스테판은 이제 야구선수에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27세에 접어든다. 이미 테리 프랑코나 감독의 1순위 불펜투수인 그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룰5드래프트의 역사를 쓴 투수 요한 산타나처럼, 그도 역사에 남을 불펜투수가 되어 클리블랜드의 전설이 되길 바란다.

 

참고 = Baseball America, Baseball Savant, Fangraphs, MLB.com

야구공작소 원정현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재성,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선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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