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끝판왕, 블레이크 트레이넨

<사진 출처: LA 다저스 공식 트위터>

2018 시즌 마리아노 리베라 상의 주인공은 시애틀의 마무리였던 에드윈 디아즈였다. 하지만 오클랜드의 블레이크 트레이넨도 임팩트만큼은 디아즈에게 뒤지지 않았다. 리그 역사에 남을 만한 기록을 남겼다는 점에서 트레이넨의 2018년은 그 어떤 시즌보다 의미가 있었다.

<2018 시즌 에드윈 디아즈, 블레이크 트레이넨 성적 비교>

*단일 시즌 80 이닝 이상 소화 투수 역대 최저 ERA

하지만 이후 트레이넨은 무너졌다. 제구력이 무너졌고, ERA는 급격히 치솟았다. 오클랜드가 트레이넨을 논텐더 방출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처사였을지도 모른다.

LA 다저스로 팀을 옮긴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8월까지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트레이넨은 9월 들어 급격히 무너졌고(9월 ERA 7.59) 아쉬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2021시즌 반전이 일어났다. 트레이넨은 재계약을 맺으며 자신을 믿어준 팀에 대한 감사함과 다음 시즌에 대한 각오를 내비쳤다. 그리고 트레이넨은 결국 다저스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지난 시즌 트레이넨은 항상 리그 최고를 다투던 다저스의 불펜에서도 핵심 전력이었다(다저스 불펜 내 ERA 1위, FIP 21위-30이닝 이상 소화한 투수 기준).

<블레이크 트레이넨 2021 시즌 성적>

업그레이드 된 슬라이더

달라진 트레이넨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큰 변화는 슬라이더에 있었다.

트레이넨의 슬라이더는 유망주 시절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던 그의 주무기였다. 특히 메이저리그 시절 초중반기 40% 초반에서 50% 초반 사이의 Whiff%를 .기록하는 등 빅리그에서도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2019년을 기점으로 슬라이더는 이전의 위력을 잃었다. 무너진 슬라이더와 함께 트레이넨은 몰락했다.

<블레이크 트레이넨 슬라이더 Run Value 변화>

트레이넨은 슬라이더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구종인지 알고 있었다. 슬라이더는 트레이넨이 구사하는 유일한 변화구였으며 위닝샷이었다. 그렇기에 트레이넨이 지난해 스프링캠프에서 가장 많이 공을 들인 부분은 바로 ‘슬라이더의 업그레이드’였다.

“예전과 똑같은 슬라이더를 던지며 같은 보직, 같은 성적 혹은 더 나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았습니다. 저는 새로운 슬라이더를 배우고 싶었어요.” – 2021년 9월 17일, LA 타임스

오프시즌동안 트레이넨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슬라이더의 횡 무브먼트를 극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블레이크 트레이넨 시즌별 슬라이더 무브먼트 변화>

트레이넨이 재작년까지 구사하던 슬라이더의 횡 무브먼트는 평균 3인치 초반에 불과했다. 하지만 트레이넨이 지난 시즌 던진 슬라이더의 평균 횡 무브먼트는 13.3인치에 달했다(vs AVG 9.1 Inch). 구속이 조금 느려지긴 했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트레이넨의 슬라이더는 여전히 리그 평균보다 빨랐고 이제는 남다른 무브먼트까지 갖게 됐다.

<달라진 트레이넨의 슬라이더>

타자들은 달라진 트레이넨의 슬라이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특히나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은 우타자들이었다.

지난 시즌 트레이넨은 우타자를 상대로 싱커와 슬라이더를 구사했다(싱커 49.9%, 슬라이더 39.2%). 트레이넨은 우타자 몸 쪽으로 싱커를 던진 후 슬라이더로 우타자 바깥쪽을 공략하는 전략을 취했다. 횡 무브먼트가 정반대인 두 구종의 특징을 이용한 이 조합은 제대로 성공을 거뒀다. 트레이넨은 지난 시즌 우타자를 상대로 총 45개의 삼진을 잡았는데 이중 38개를 슬라이더로 잡아냈다(84%).

좌타자를 상대로도 슬라이더는 위력을 발휘했다. 우타자에게 던질 때만큼 헛스윙을 유도하지는 못했지만(Whiff% 35.9%) 몸 쪽에 제대로 구사된 슬라이더에 좌타자들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xwOBA 0.156, xwOBA: 타구 속도, 발사 각도, 타구의 유형 등을 바탕으로 산출한 가중출루율(wOBA)).

<블레이크 트레이넨 2021 시즌 슬라이더 성적>

달라진 좌타자 상대법

<블레이크 트레이넨 커리어 좌우 타자 스플릿 성적>

두 번째는 바로 좌타자 상대 승부였다. 트레이넨은 커리어 전반적으로 우타자보다 좌타자에게 더 약한 모습을 보였다. 기존에 트레이넨이 좌타자를 상대로 가져간 전략은 포심 패스트볼 혹은 싱커를 주로 구사하고, 여기에 슬라이더를 섞어 던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타자에게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던 트레이넨의 패스트볼은 좌타자에게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트레이넨은 좌타자를 잡기 위해 새로운 무기를 꺼내들었다. 바로 커터였다. 트레이넨은 2018년부터  커터를 던지기 시작했지만 지난 시즌부터 좌타자 상대 커터 비율을 급격하게 높였다(51.9%).

<블레이크 트레이넨 좌타자 상대 커터 구사율>

결과는 성공이었다. 하이 존에 구사한 트레이넨의 빠른 커터(평균 93.3마일)에 타자들은 제대로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트레이넨의 커터는 지난 시즌 50 타석 이상을 소화한 투수 중 xBA 2위를 기록했을 만큼 위력적이었으며 좌타자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xBA: 타구 속도, 발사 각도, 타구의 유형 등을 바탕으로 산출한 타율)

<블레이크 트레이넨 커터 2021시즌 성적>

승부 초반 그리고 불리한 카운트에서 커터로 카운트를 잡은 트레이넨은 유리한 카운트(Batter Behind)에서는 슬라이더(43.5%), 커터(30%), 그리고 포심 패스트볼(25.3%)를 적절히 섞어 던지며 타자들을 상대했다.

다양한 구종에 타자의 머릿속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트레이넨은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의 확실한 로케이션 차이를 만들어냈다. 이는 타자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좌타자 상대 슬라이더의 Whiff%가 우타자보다 줄었음에도 트레이넨은 좌타자에게 많은 삼진을 뺏어냈다.(K% 31.7%) 이는 높게 던진 포심과 커터가 제 몫을 다했기 때문이다(좌타자 상대 삼진-슬라이더: 19개/커터: 12개/포심 8개/싱커 1개)

<블레이크 트레이넨 좌타자 상대 커터, 포심 패스트볼 피칭 히트맵>

트레이넨의 다음 시즌 과제, ‘성적 유지’

지난 날의 부진을 딛고 온 블레이크 트레이넨은 이제 단순히 재기를 넘어서 리그 최고의 불펜 투수 중 한 명이 되었다. 특히 트레이넨의 슬라이더는 이제 그 어떤 타자도 쉽게 건들 수 없는 구종이다.

이번 시즌 블레이크 트레이넨의 가장 큰 과제는 ‘개선’이 아닌 ‘유지’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트레이넨은 팀의 선택에 따라 계속해서 푸른 유니폼을 입고 뛸지 아니면 다시 한번 무직 상태가 될지 결정된다.

지난 2019년처럼 슬픈 결말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올해의 성적이 굉장히 중요한 상황. 게다가 성적만 좋다면 더욱 좋은 계약을 노려볼 수도 있다. 과연 이번 시즌 트레이넨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번에는 자신의 성적이 플루크가 아니었음을 증명할 수 있을까? 2022 시즌 블레이크 트레이넨의 투구를 기대해 보자.

야구공작소 원정현 칼럼니스트

에디터=오석하, 전언수

기록출처 및 참조=Fangraphs, Baseball Savant, LATIMES, SBNATION, M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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