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두 번째 스무살] 2006년 – ‘철벽 갈매기’가 될 줄 알았는데…

  • 이 연재물은 ‘KBO 박스스코어 프로젝트’와 함께 합니다.

2005년 여름, 전년도 KBO 리그 꼴찌 팀 롯데 자이언츠는 그 대가로 받은 신인 드래프트 2차 지명 전체 1순위 지명권을 두고 장고에 빠졌다. 각 팀의 1차 지명 선택이 마무리된 가운데 이미 부산고 내야수 손용석을 1차 지명 선수로 정한 롯데는 8월 31일 열리게 될 2차 지명을 앞두고 후보군을 추리기 시작했다.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는 강정호, 차우찬, 황재균, 민병헌, 양의지, 최주환 등 훗날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가 된 이름들이 줄줄이 나왔다. 그럼에도 롯데는 드래프트를 앞둔 시점에서 1순위 후보 선수를 두 명으로 추렸다. 바로 동산고 좌완 류현진과 광주일고 사이드암 나승현이었다.

두 선수는 모두 청소년대표로 선정될 정도로 고교 시절부터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증명한 선수였다. 류현진의 경우 1학년 때부터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고 신체 조건도 뛰어나 당시 언론에서는 ‘대형스타로 클 자질이 충분하다’라는 평을 내렸다. 그러나 2학년 때 토미 존 수술(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고 1년을 통째로 쉰 후 기복 있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 마이너스였다. 이 때문에 한 학년 아래 김광현(안산공고)을 이듬해 1차 지명에서 선택할 수 있었던 SK 와이번스는 류현진 대신 인천고 포수 이재원을 1차 지명으로 선택했다.

나승현은 비록 키는 179cm로 투수치고는 다소 작았지만 사이드암 투구폼에서 나오는 140km/h 후반대의 뱀직구가 일품이었다. 류현진과는 다르게 3년 내내 부상 없이 투구를 이어갔고, 특히 3학년 때는 18경기 98이닝 동안 단 9자책점만을 내주며(평균자책점 0.83) 그야말로 ‘언터처블’의 모습을 보여줬다. 하필 같은 해 같은 지역에서 나온 ‘역대급 유망주’ 한기주(광주동성고)의 존재로 인해 KIA 타이거즈의 1차 지명을 받지는 못했지만 2차 지명에서 1번 아니면 2번으로 불릴 것이 유력한 선수였다.

롯데는 당시 4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면서 계속 2차 1라운드 1번 지명권을 받게 됐다. 그러나 2003년 김대우, 2004년 김수화, 2005년 조정훈 세 선수가 모두 당시에는 활약이 미미한 상황이었다. 김대우는 대학 입학과 해외 진출 시도, 군 복무 등으로 인해 2008년에서야 입단했고, 팀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입단 후 1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김수화는 아마추어 시절 혹사로 인해 2군에서 재활 중이었고, 1년 차였던 조정훈 역시 훗날 주 무기가 되는 포크볼을 습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누굴 뽑아도 대박’이라는 평을 들은 2006년 2차 지명 전체 1순위 지명권을 롯데는 신중히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명일이 다가올수록 롯데는 조금씩 나승현으로 무게중심이 기울고 있었다. 당시 이상구 롯데 단장은 “류현진의 기량은 뛰어나지만 수술 경력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고, 양상문 롯데 감독도 “류현진은 기복이 크다는 약점이 있지만 나승현은 1학년 때부터 꾸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라는 말로 나승현을 높이 평가했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50대 50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롯데는 결국 드래프트를 일주일 앞둔 8월 23일, 나승현을 2차 1순위에서 지명하겠다고 발표했다. 8월 31일 열린 본 지명에서 롯데는 예고대로 나승현의 이름을 불렀고, 류현진은 바로 다음 순번이었던 한화 이글스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이듬해 시즌 개막을 앞두고 롯데 신인 선수를 대표해 미디어데이에 참가한 나승현은 “올해 가을에 야구할 수 있도록 팀에 도움이 되겠다”라는 말로 각오를 드러냈다.

기대를 모았던 나승현은 4월 12일 사직 SK전에서 첫선을 보였다. 팀이 4대 9로 뒤지고 있던 9회 초 상황이었다. 긴장한 탓이었는지 나승현은 0.2이닝 3피안타 2실점으로 다소 아쉬운 기록으로 데뷔전을 마감했다. 전날 류현진이 7.1이닝 10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 것에 비하면 다소 초라한 신고식이었다. 이후로도 나승현은 이렇다 할 활약 없이 8경기에 나와 평균자책점 4.15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 나승현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5월 23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KIA와의 경기였다. 이날 경기는 손민한(롯데)과 세스 그레이싱어(KIA), 양 팀의 에이스가 출격한 경기였다. 기대대로 두 투수는 6회까지 한 점도 내주지 않는 불꽃 튀는 투수전을 펼쳤다. 3일 전 경기에서 갑작스럽게 구원등판해 세이브를 거둔 손민한은 오른손 중지에 멍이 든 상황에서도 8회까지 무실점으로 버텼다. 그 사이 그레이싱어에게 틀어막혔던 롯데 타선도 7회 강민호가 2타점 2루타를 터트리며 손민한에게 득점지원을 안겨줬다.

투혼을 보여준 손민한이 내려갔지만 롯데는 새로 경기를 시작해야 했다. 전년도 마무리 투수였던 노장진이 시즌 전 무단 이탈하면서 롯데는 2년 차 이왕기에게 뒷문을 맡겼다. 그러나 이왕기가 기대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롯데는 경기 막판 큰 리스크를 안게 됐다. 이날 롯데는 가득염과 이정훈으로 경기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원포인트 릴리프 가득염이 안타를 맞고 내려간 데 이어 이정훈 역시 홍세완에게 적시타를 맞으며 한 점 차로 쫓기게 됐다. 상황은 여전히 무사 1, 2루였다. 그러자 롯데는 과감한 선택을 한다. 바로 신인 나승현을 등판시킨 것이다.

처음으로 세이브 상황에 등판한 것이 부담이었는지 나승현은 첫 타자 김경언을 볼넷으로 내보내며 무사 만루를 만들었다. 이어 다음 타자 김종국과도 풀카운트 승부를 펼쳤다. 그러나 고교 시절 ‘싸움닭’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나승현은 여기서 피하지 않았다. 패스트볼로 정면승부를 펼친 나승현은 김종국을 2루수 뜬공으로 잡아냈다. 나승현은 8번 김상훈에게 3루수 땅볼을 유도하며 3루 주자를 아웃시켰다. 이제 2아웃이 됐다.

분위기를 탄 나승현은 대타 한규식을 상대로 과감하게 스트라이크 두 개를 꽂아 넣었다. 다시 한번 풀카운트를 만든 나승현은 한규식에게 3루 땅볼을 유도했다. 타구는 3루수 이원석의 글러브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긴장된 순간, 이원석이 침착하게 송구하며 한규식을 1루에서 잡아냈다. 투수진 막내의 배짱있는 투구에 사직야구장을 찾은 팬들은 ‘나승현! 나승현!’을 연호했다. 나승현의 데뷔 첫 세이브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후 나승현은 본격적으로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맡았다. 나승현은 첫 세이브를 기록한 경기부터 6월 6일 광주 KIA전까지 7연속 세이브에 성공하며 갑작스럽게 맡은 중책을 안정적으로 수행했다. 특히 시즌 7호 세이브는 무려 2.2이닝을 던진 끝에 얻어낸 수확이었다. 전반기에만 15세이브와 평균자책점 2.16을 기록한 나승현은 롯데 불펜진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등극하게 됐다. 이런 활약 속에 롯데 구단은 나승현의 애칭을 공모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팬 투표 결과 나온 ‘철벽 갈매기’가 나승현의 공식 별명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나승현의 영광의 순간은 여기까지였다. 팀 자체 징계에서 돌아온 노장진에게 마무리 자리를 내준 나승현은 후반기 고작 1세이브를 추가하는 데 그쳤다. 그마저도 8월부터는 세이브도 없었다. 8월 16일 LG 트윈스전에서는 2점 차로 리드하던 9회 말 2사 만루에서 등판했다가 노장진의 승계 주자를 모두 홈으로 불러들이면서 끝내기 패배를 허용했다. 전반기 2점대 초반이었던 평균자책점도 시즌 종료 때는 3.48까지 올랐다. 신인왕 투표에서도 무려 18승을 거둔 류현진(82표)은 물론이고 한기주(8표), 장원삼(2표)에게도 밀려 한 표도 받지 못했다.

2007년에도 마무리 투수 자리에 복귀하지 못한 나승현은 잦은 투구폼 변경으로 인한 혼란을 겪었고, 2010년 이후에는 아예 1군 마운드에 서지도 못했다. 결국 나승현은 2015시즌이 끝난 후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입단 전부터 기대를 모았고 데뷔 시즌에도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준 나승현은 2006년 이후 9년 동안 단 1세이브도 추가하지 못했다. 그와 지명 순서를 놓고 경쟁했던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 선발투수로 자리 잡으면서 팬들은 2006년 드래프트를 ‘류현진 거르고 나승현(류거나)’이라는 비아냥 섞인 단어로 요약했다.

PS. 2006년 신인 드래프트 2차 지명에서 롯데가 지명한 선수는 나승현을 포함해 9명이었다. 그런데 이 선수들 외에도 이 해 신인 중에는 롯데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많다. 두산의 1라운드 지명자였던 김용성은 훗날 김건국으로 개명한 후 트레이드를 통해 입단했다. 현대 유니콘스의 3라운더 황재균을 2010년 트레이드로 데려왔고, 두산 베어스의 2라운드 지명자인 민병헌은 2018년 FA로 롯데에 둥지를 틀었다. 이 외에도 2002년 지명을 받은 후 2006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현대 장원삼도 먼 훗날인 2020시즌 롯데에서 현역 마지막 시즌을 보냈다. 롯데가 지명한 선수 중에는 나승현을 포함해 김문호, 배장호, 황성용(개명 후 황동채) 등이 1군에서 활약했다.

2006년 5월 23일 KIA-롯데전 박스스코어(사진=박스스코어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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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롯데 자이언츠

야구공작소 양철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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