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야구장이 없다

출처: Pixabay, 일러스트: 야구공작소 도상현

작년부터 야구 리그 운영을 돕기 시작했다. 서울권 대학의 야구 동아리가 참가하는 리그로 서울의 한 야구장에서 대회가 진행된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은 아니다. 대부분이 대학생인 10명 남짓한 운영진은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남들도 편하게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뭉쳤다. 열정과 애정으로 시작한 리그는 어느덧 4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상금도 없고 규모도 작은 리그에 매년 5~6개 동아리가 참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서울에서 야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호회 경기를 할 수 있는 야구장은 주로 경기도에 있다. 이중 대부분은 접근성이 좋지 않아 면허나 차가 없다면 가는 길이 험난하다. 지하철과 버스를 넘나드는 환승의 굴레는 기본이다. 고생 끝에 정류장에 내려도 20분을 더 걸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늦지 않으려면 2시간 전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가는 도중 비가 내려 경기가 취소되기라도 하면 왕복 4시간이 증발한다.

이처럼 야구 한번 할 때마다 ‘원정길’에 올라야 하는 서울권 야구 동호인에게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서울에서 정기적으로 야구할 수 있는 기회는 매력적이다. 몸담고 있는 리그 역시 이 같은 환경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찬밥 신세인 서울의 야구장

최근 여름 대회를 마치고 참가팀들의 피드백을 받았다. 그중 노량진 야구장에서도 대회를 열어줄 수 있겠냐는 문의가 눈에 들어왔다. 올해 6월 개장한 노량진 야구장은 옛 노량진 수산시장 부지에 들어선 생활체육 시설이다. 노량진역 9번 출구와 연결돼 있고 올림픽대로와 인접해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다. 인조잔디와 조명도 설치되어 있다. 사용료가 평일 기준 2시간에 10만 원으로 공공체육시설로 분류된 서울시내 다른 야구장보다 비싼 편이지만 시설과 접근성을 고려하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노량진 야구장은 철거 날짜가 정해진 ‘시한부 야구장’이다. 본래 옛 수산시장 부지는 상업 용도로 개발될 계획이었다. 지난 몇 년간 초고층 오피스텔, 카지노, 테마파크 등 다양한 개발안이 논의됐다. 그런데 각종 절차를 감안하면 계획을 확정하고 개발에 착수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결국 부지를 소유한 수협이 개발 전까지 보유세와 종합부동산세를 최소화하고자 동작구와 협의해 생활체육시설을 세웠다. 협의에 따라 야구장은 개발계획이 확정되기 전까지 3년간 임시로 운영된다.

노량진 야구장의 시한부 판정을 곱씹다 보니 올해 초 이슈가 됐던 용산 미군 기지 내 야구장 철거 소식이 떠올랐다. 지난해 12월 반환된 부지 중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에 의해 공원 조성지구로 개발할 수 있는 ‘본체부지’는 용산 기지 남쪽에 위치한 소프트볼 경기장과 스포츠 필드 두 가지였다. 이 가운데 스포츠 필드에는 미군이 사용하던 야구장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용산공원 국제공모 당선 조성 계획안’에 따르면 용산 미군 기지 내의 야구 및 소프트볼 구장 6면 중 대부분이 철거된다. 특히 이촌역과 가까워 접근성이 좋고 천연 잔디와 이동식 펜스, 조명을 갖춰 국제 대회까지 열렸던 ‘포 코어(Four Core)’ 구장도 철거 대상에 포함됐다. 야구장이 있던 지역엔 야외 공연장이 들어설 계획이다. 이에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와 일구회가 야구장 존치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서명 운동을 벌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구회: 은퇴 야구인의 권익 보호를 위해 전, 현직 야구 지도자들이 설립한 단체

 

서울 시민을 위한 야구장은 없다

서울에서 야구 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추첨이나 선착순으로 이뤄지는 야구장 예약 경쟁은 콘서트 티켓팅만큼 치열하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19년 기준 서울 동호인 야구팀은 10,361팀, 선수는 170,291명에 달했던 반면 서울시 공공체육시설로 등록된 야구장은 19개에 불과했다. 축구장이 74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최고 인기 종목이라는 프로야구의 명성과 달리 생활체육 야구 인프라는 초라하다.

이런 상황에서 노량진 야구장과 용산 야구장 소식은 안타깝기만 하다. 노량진 야구장의 운명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강변에 위치한 약 5만 m2의 초역세권 땅에 프로 경기가 열리는 것도 아닌 생활체육 시설을 신축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서울에 생활체육 야구 인프라가 들어서기 힘든 현실을 다시금 마주하는 것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용산 기지 내 야구장 철거 계획은 더욱 아쉽다. 서울에 구장을 신축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멀쩡한 시설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장 하나하나가 귀한 시점에서 생활체육이 고려되지 않은 개발안으로 야구 인프라가 축소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흔히 야구의 진입 장벽이 높은 까닭은 장비 때문이라고 말한다. 필요한 장비가 많아서 야구를 시작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나 서울에선 공간이 더 큰 걸림돌이다. 치고 던질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글러브와 배트를 빌려서라도 야구를 하지 않겠는가. 언젠가 서울에서도 지선 버스를 타고 야구하러 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야구공작소 김진우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오주승, 당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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