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넷의 홍수는 어디에서 터졌나

KBO 리그의 볼넷 비율이 심상치 않다. 현재 리그 볼넷 비율은 11.2%로 리그 출범 이후 가장 높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지난 시즌과 비교하면 2%P나 증가했다. 작년보다 경기당 2개에 가까운 볼넷이 더 나오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른 언론 보도도 굉장히 잦은 상황이다.

야구는 투수와 타자가 스트라이크존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두고 겨루는 데서 시작한다. 때문에 야구에서의 사건은 투수와 타자 그리고 스트라이크존까지 어느 하나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기사는 스트라이크존 축소 하나만을 지적하고 있다. 혹은 리그 투수의 질적 하락이라는 매우 추상적인 지점에 목을 매기도 한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서는 스트라이크존과 투수, 그리고 타자의 영향까지 두루 살펴보고자 한다. 

 

스트라이크존

사실 최근 주목받듯 가장 유력한 범인은 스트라이크존이다. 한 시즌만에 선수들의 기량이 통째로 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선수보다는 스트라이크존이 변화했다는 추측이 가장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넓이가 줄었는가? – 사실, 하지만 다소 애매함.

(위)2020/2021 스트라이크존, (아래) 2020/2021 50% 이상 스트라이크로 판정되는 구역

최근 몇 년간 시즌을 거치면서 스트라이크 존이 점점 좁아진 것은 사실이다. 16시즌부터 비교해보면 스트라이크 존의 좌우 폭은 매년 줄어들었다. Shadow 존(보더라인)의 스트라이크 판정률도 매년 떨어져 과거 50%에 육박하던 스트라이크 판정률은 4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위의 그림에서 보듯 직전 시즌인 20시즌과 이번 시즌을 비교하면 크게 변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좁아진 것은 사실이기에 볼넷 증가의 원인으로 꼽을 수는 있겠다. 투수들은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에도 스트라이크존은 좁아지고 있었기에 볼넷 비율이 올해 들어서만 갑자기 높아진 것은 쉽게 납득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볼넷 증가에 있어 스트라이크존을 단독 범인으로 꼽기는 어려워 보인다.

 

투수

투수의 제구력이 과거보다 별로인가? – 사실 아닐 가능성 높음.

볼넷이 많이 나오는 경기를 보고 있자니, 이번 시즌 유독 날리는 공이 많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실제로도 투수의 제구력이 떨어져 전반적으로 날리는 공이 많았다면 스트라이크존을 한참 벗어난 공의 비율이 늘었을 것이다. 실제로는 어땠을까? 전체 투구의 구역별 투구된 비율을 살펴봤다.

존별 투구 비율

구역은 메이저리그에서 자주 사용되는 Heart/Shadow/Chase/Waste 구분을 활용했다. 결과를 보면 알겠지만, 20시즌과 21시즌 구역별 투구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특별히 빠지는 공이 많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것도 아니라면 불리한 카운트에서 유독 빠지는 공이 많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3-0, 3-1, 3-2, 볼넷이 나올 수 있는 카운트에서 존 구사 비율도 확인해 봤지만 거의 차이는 없었다.

이밖에 3-0 카운트 비율 등 여러 데이터를 찾아봤지만, 투수들의 투구 내용이나 제구력이 달라졌다고 볼만한 직접적인 근거는 찾지 못했다.

 

타자

타자들의 대처가 과거와 다른가? – 사실, 다소 복합적임.

최근 타자들을 덮친 수비 시프트라는 시련도 이유가 될 수 있다. 특히 좌타자들은 시프트로 인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메이저리그는 시프트 공략법으로 담장을 넘기는 것을 선택했지만 국내 타자들 중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타자는 많지 않다. 오히려 볼넷을 노리는 것이 현실적이었을 수도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리그에서 ‘출루율’의 가치가 대두되고 이에 따른 선수 평가가 다수 이루어지고 있다. 거의 매일 정은원, 홍창기, 조용호 등 타율은 높지 않아도 출루율이 매우 높은 유형의 선수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장의 지도자들도 출루율의 가치를 점차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타자들이 볼넷을 목적으로 타석에 서는 경우가 과거보다 많아졌을 수도 있다.

이처럼 공을 때려서 얻는 이득은 줄고, 반대로 공을 보게 하는 요인은 생기면서 타자들의 공격성이 감소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공에 대한 전체 스윙 비율은 20시즌 43.2%에서 21시즌 40.8%로 감소했다. 존에 들어온 공에 대한 스윙 비율도 70.1%에서 66.3%로 4P%정도 감소했다. 큰 차이로 보긴 어렵지만 타자들이 과거에 비해 배트를 내지 않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외각, Shadow 존에서 스윙 비율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Shadow 존에 대한 스윙 비율은 20시즌 48.2%에서 21시즌 46.6%로 조금 낮아졌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Shadow 존의 스트라이크 판정 비율은 40%대 초반으로 매년 줄어 과거보다 10%P 가까이 줄어든 상황이다. 존 자체가 좁아지면서 타자들이 아예 스윙을 줄인 것일 수도 있다. 특히 외곽은 쳐봐야 좋은 타구가 나오지 않고, 치지 않으면 볼이 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볼의 비율이 느는 것은 필연적이다.

정리하면 과거보다 존이 좁아져 투수들은 스트라이크를 잡기 어려워졌다. 동시에 타자들이 좁아진 존, 그리고 여러 요인으로 스윙을 줄이면서 전반적으로 볼넷이 늘었다는 것이다.

 

볼넷 증가, 이례적이어서 어렵다.

볼넷의 증가가 득점의 증가로 이어지진 않았다. 홈런이 줄고, BABIP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즌 초반에는 투고에 더 가까웠다. 투구의 질이 떨어졌다면 필연 장타도 늘어야 하는데 리그 장타율은 최근 5시즌 중 4번째다. 볼넷 증가가 투수 수준 저하 같은 단순한 이유보다는 복합적인 이유일 가능성을 더 높게 보는 이유다. 위에서 살펴봤지만 스트라이크존, 투수, 타자라는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만들어낸 현상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번 시즌은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출국길이 막히면서 10개 구단이 국내 전훈을 실시했다. 투수들은 실내 연습장 훈련을 통해 비교적 덜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나 투타 모두 지난 전훈과는 다른 환경에서 몸을 만든 것이다. 이 밖에 수비시프트도 하나의 변수로 떠올랐다. 이처럼 다양한 변수가 엮이면서 볼넷 증가 현상을 해석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은 시즌 초반에 해당하는 만큼 이 현상이 시즌 내내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어찌 됐든 과거와는 또 다른 흥미로운 현상을 목격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부록-판정의 문제

위에서 언급한 내용 외에 스트라이크 판정 방식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최근 한 기사에 따르면, 볼 판정 오심 중 80% 이상이 투수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오심률은 큰 변화가 없지만, 과거보다 투수들이 오심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이다. 아래는 볼 판정 오심이 일어난 코스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스트라이크존 내부의 오심은 투수 불리, 스트라이크존 외부의 오심은 타자 불리

위 그림을 보면 2020시즌과 2021시즌의 차이가 꽤 두드러진다. 2020시즌에는 존 바깥에서의 오심, 즉 빠진 공을 스트라이크로 판정한 경우가 2021시즌보다 많았다. 특히 상하보다는 좌우에서 이런 판정이 비교적 많이 발생했다. 2021시즌에는 존 안의 상단과 하단에서 볼 판정이 일어나는 경우가 늘었다. 

최근 기사를 통해 심판의 고과 산정 기준에 ‘일관성’ 항목이 들어가면서 심판들이 보더라인에 들어온 공을 외면하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된 바 있다. 생각해보면 확실한 스트라이크만 잡아주고, 나머지 공은 외면하면 일관성은 높게 유지할 수 있다. ‘정확도’도 큰 문제 없을 가능성이 높다. 존을 좁히면 반대로 과거 빠진 공을 잡아주던 오심이 줄어 오심의 총량은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판정 갈등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지금 같이 오심의 방향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도리어 공정성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판정 일관성에 대한 해결책이 단순히 판정의 편의를 향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일관성은 볼 판정에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진정한 일관성은 정확성에서 나온다. 규정에 맞게 정확한 판정을 내린다면, 일관성과 공정성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돼 있다.

 

야구공작소 이현승 칼럼니스트

에디터: 야구공작소 김지호, 당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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