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도 할 말 있다

4월 13일 한화 대 삼성의 경기 1회 말에 무척 보기 드문 상황이 발생했다. 1사 만루에서 삼성 이원석이 우익수 쪽 얕은 타구를 날렸다. 하지만 우익수가 한번 잡았다가 떨어뜨렸고, 1루심은 이를 아웃으로 판정했다. 그러나 1루심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선수, 심판이 이를 세이프로 생각하고 플레이해 버렸다. 이후 꼬여 버린 상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굵은 글씨=심판의 실수)

 

1. 우익수가 떨어뜨린 공을 2루수가 주워 2루의 유격수에게 송구했다.

2. 포스 상황이 아님에도 1루 주자가 포스아웃 되었다. (2루심 실수)

3. 3루 주자는 3루 리터치를 하지 않은 채 홈으로 달렸다.

4. ’포스아웃을 얻어낸’ 유격수는 3루에 송구했다.

5. 3루수가 송구를 받고 3루를 밟았을 때 3루 주자가 아웃되지 않았다. 따라서 여기서 이닝이 종료되어야 했으나 종료되지 않았다. (3루심 실수)

6. 5에서 이닝이 끝나지 않아 2루 주자가 태그아웃 되었다. (3루심 실수)

7. 5에서 3루 주자가 아웃되지 않아 3루 주자의 홈인이 인정됐다. (주심 실수)

 

비교적 최근에 학교생활을 한 독자라면 ‘조별 과제’의 악명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조원 한 명의 잘못으로 조 전체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그 모든 것을 포함해 성과를 내야 하지만, 성과를 내지 못한 주원인이 한 명에게 집중되어 있다면 나머지 조원들에게도 한마디씩 할 말은 있다. 1루심을 제외한 심판 3명의 말을 들어 보자.

 

2루심: “나는 당연히 우익수가 타구를 포구하지 못했다고 판단했지. 그러고 나서 1루 주자가 2루에 도착하기 전에 (우익수가 떨어뜨린 공을 주운)2루수의 2루 송구가 도착했고. 그러면 타자가 2루수 앞 땅볼을 친 것이나 같은 상황 아닌가. 그래서 당연히 1루 주자의 포스아웃을 선언한 거야.

물론 1루심의 아웃 판정을 확인하지 않은 건 내 잘못이지만, 우리라고 해서 아주 당연해 보이는 타구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다른 심판의 콜을 확인하진 못하는 것도 이해해 주면 좋겠어.”

 

3루심: “나도 1루심의 아웃 콜은 놓쳤어. 우익수가 포구에 실패했다고 생각했지. 거기에 2루심까지 2루에서 포스아웃을 선언했으니 말이야. 3루 주자가 리터치를 했는지는 확인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어.

1루 주자가 2루에서 아웃된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고. 내 입장에서는 1루 주자는 아웃되었으니 2아웃이고 2루 주자의 포스 상태는 풀린 게 아닌가. 2루 주자가 3루로 달려오고 있었고 3루로 송구가 이뤄졌네. 포스 상황이 아니니 태그 플레이였고, 2루 주자가 3루에 닿기 전에 태그가 이뤄져 아웃을 선언했을 뿐이야. 물론 처음 1루심의 판정을 놓친 건 내 잘못이지만 솔직히 정말 억울해.”

 

주심: “1루심이 그렇게 판단했을 줄 누가 알았겠나. 나도 당연히 노 캐치로 판단했지. 1루심도 아마 100번에 99번은 노 캐치라고 할 거야. 하필이면 100번에 1번이 오늘 나온 거지.

앞에서 2루심도 말했지만 우리 셋은 이 상황을 2루수 땅볼로 보고 있었어. 1사 만루에서 2루 땅볼이 나와 2루에서 1루 주자가 포스아웃되고 3루에서는 태그 플레이가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한 거지.

내가 하나 물어보세. 여기서 주심은 어디에 집중해야 하겠나?

2루 주자가 3루에서 세이프라면 상관없지만 아웃이라면 이닝이 끝나버린단 말이야. 그 와중에 3루 주자는 홈으로 달려오고 있고. 이런 경우에 주심은 2루 주자가 아웃될 경우에 대비해 2루 주자가 아웃되는 것이 먼저인지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는 것이 먼저인지를 예의주시하고 있어야 하네. 그리고 2루 주자가 아웃되는 것보다 3루 주자가 먼저 홈을 밟아서 득점을 인정한 거지. 3루 주자 리터치 여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고.

끝나고 나서 보니 애초에 뜬공부터 아웃이었더군. 시작부터 꼬인 거지. 1루 주자 포스아웃은 취소되어야 했고, 3루 주자가 리터치를 않았으니 3루수가 3루를 밟는 순간 이닝이 종료되어야 했네. 3루를 밟은 뒤에 태그한 2루 주자는 아웃될 일이 없었지.

그렇지만 1루심의 아웃 판정을 무를 수도 없었네. 이건 그야말로 고유 판정이니까. 그러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갖다 붙인 게 어필 규정이야. 누에 리터치하지 않고 진루한 주자를 아웃시키려면 수비 측에서 어필을 해야 된다는 규정이 있거든. 3루에 송구는 했지만 어필을 않았기 때문에 3루 주자의 아웃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면, 득점은 인정시키고 이닝은 끝낼 수가 있었던 거야.

말이야 바른말이지 어필을 동원하는 게 어거지인 건 우리도 알아. 예를 들어 1아웃 주자 1루에서 1루수 직선타로 더블아웃이 되는 경우에, 1루수가 일일이 심판에게 어필하는 경우는 없어. 하지 않아도 심판이 알아서 인정해 주는 게 관례고. 그렇지만 우리도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 했다는 점은 이해해 주게.”

 

기록원의 생각은 어떨까.

기록원: “저희야 심판 판정이 끝나고 나면 그에 맞춰서 기록하는 것이니까 심판만큼의 혼란은 없었습니다. 타자 기록이 우익수 뜬공이냐 2루 땅볼이냐의 차이가 있었는데 우익수 뜬공이 된 거죠. 3루 주자가 우익수 뜬공 때 홈인했으니 형식적으로 희생플라이가 됐고요. 타자는 덕분에 타율 아낀 셈이죠.

기록원으로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낙구한 것으로 판정되었으면 더 진귀한 상황을 볼 수도 있었으리라는 거예요. 만약에 우익수가 떨어뜨린 것으로 판정되고 우익수가 2루에 송구해 일련의 상황이 그대로 일어났다면 ‘우익수 땅볼 희생플라이’가 될 수 있었거든요.”

 

그러면 결국 어떻게 해야 했을까.

1루심: “처음에 제가 노 캐치로 판정했어야죠. 다 제 잘못입니다. 관중 여러분과 양 팀 선수단, 그리고 저 때문에 고생하신 동료 심판들께도 사과드립니다.

상황을 정리해서 말씀드리자면, 제가 아웃으로 판정한 시점에서 2아웃이 됐습니다. 이때 3루 주자를 포함한 모든 주자가 먼저 리터치를 했어야겠죠. 실제로 리터치한 건 2루 주자뿐이었습니다.

리터치하지 않는 장면을 2루수가 제대로 봤다면 2루가 아니라 3루에 던져야 했습니다. 그랬으면 리터치 실패에 의해 3루 주자를 아웃시켰을 것이고, 추가 실점 없이 이닝이 끝났을 겁니다.

아무튼 공은 2루로 갔습니다. 공은 1루 주자보다 먼저 도착했지만, 포스 상황이 아니었으니 2루심은 여기서 포스아웃을 선언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공을 받은 유격수가 1루 주자를 태그하지 않고 바로 3루로 송구한 건, 실제 의도는 2루 주자를 아웃시키려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해야 3루 주자를 리터치 실패로 아웃시킬 수 있으니 결과적으로 잘한 셈입니다.

3루로 온 공을 받은 3루수는 3루부터 터치하는 게 옳았고 다행히 (의도는 2루 주자를 막는 것이었지만)_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3루심이 여기서 3루 주자의 리터치 실패에 의한 아웃을 선언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주심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3루 주자의 득점을 인정하지 말아야 했지요.

제 판정 하나로 경기가 다 꼬여 버렸네요. 하필이면 한화가 1점 차이로 져서 더 죄송한 마음입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야구공작소 오연우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홍기훈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Be the first to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