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20시즌 리뷰] LG 트윈스 – 구슬이 서 말이니 꾀로써 꿸 때다.

시즌성적- 정규시즌 79승 4무 61패(4위, 준플레이오프 탈락)

지난 시즌을 기점으로 LG는 안정적인 4강권 전력을 구축했다. 투수진은 윌슨, 켈리 그리고 차우찬으로 이어지는 3선발이 활약했고, 고우석과 정우영이 필승조로 자리잡았다. 야수진에선 이천웅, 채은성, 이형종이 풀타임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취약점으로 꼽히는 2루와 선발진을 해결한다면, 짧은 기간 내에 대권 도전도 가능하단 긍정적인 시선도 따랐다. 시즌을 마친 후엔 내부 FA 단속과 외국인 투수 재계약에도 성공했다. 따로 전력보강은 없었지만, 경쟁팀의 전력누수가 겹쳐 조심스레 대권 도전 분위기가 형성됐다. 박용택의 은퇴시즌이란 점도 우승에 대한 동기부여였다. 뒤늦게 시작된 만큼, 기대도 부풀었던 시즌이 그렇게 개막했다.

시즌 전체적으로는 소위 ‘잘 나가는 팀’이었다. 연승과 연패를 반복한 점은 아쉽지만 시즌 내내 상위권에서 2위 싸움을 치렀다. 윌슨의 부진과 고우석, 이형종, 이천웅, 김민성, 라모스 등이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도 새 얼굴과 백업 선수들의 활약으로 버텨냈다. 10월 중순에는 2위 싸움에서 우위에 오르며, 사실상 플레이오프 직행을 확정하는 듯했다. 그러나 마지막 두 경기에서 크게 미끄러지며 4위까지 추락했다. 최종적으로 2년 연속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며 가을야구를 맛본 것에 만족해야 했다.

 

흔들린 외인 투수, 버텨준 토종 투수

일명 ‘윌-켈-차’의 활약은 LG가 상위권을 차지하는 데 기본 전제였다. 특히 윌슨과 켈리에 대한 믿음은 확신에 가까웠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자 3명 모두 흔들렸다. 자가격리의 여파인지, 이닝 누적의 영향인지 윌슨, 켈리는 전반기 내내 아쉬웠다. 3선발 차우찬도 기대 이하였다. 간간이 호투했지만 대량 실점한 경기도 잦았다. 설상가상으로 7월 중 부상까지 겹치며 남은 시즌 동안 마운드로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 시즌 철벽 마무리 고우석도 시즌 초반에 무릎 부상으로 이탈했다. 이런 주축 투수진의 부진을 덮은 것은 정찬헌, 임찬규, 이민호 등 반신반의했던 선수들의 활약이었다.

정찬헌은 선발투수가 체질인 듯 매 경기 호투를 펼쳤다. 팀의 연패를 끊는 완봉승, 개인 최다 탈삼진 경기 등 다양한 기록을 남기며 새로운 선발 자원으로 발돋움했다. 1차 지명으로 기대를 모은 이민호도 좋았다. 묵직한 패스트볼과 고속 슬라이더는 프로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당초 ‘원석’이라는 평가가 무색할 정도였다. 비록 10일 로테이션이었지만, 두 선수는 도합 11승을 거두며 기대를 넘어서는 투구를 보여줬다.

시범경기서 극심한 부진에 빠졌던 임찬규는 시즌이 시작되자 180도 변했다. 켈리 다음으로 많은 이닝을 소화한 임찬규는 평균자책점과 WAR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커리어하이를 달성했다. 이 밖에도 김윤식, 남호 등도 선발진에 힘을 보태며 팀 선발 평균자책점 2위에 공헌했다.

선발 투수진 성적표

특출난 에이스는 없었지만, 모두가 고르게 활약하며 팀 선발 ERA 2위, 팀 전체 ERA 1위에 올랐다.

 

요동친 외야진, 외국인 타자 흑역사는 중단

상수라고 생각했던 외야진도 예상과 달랐다. 김현수를 제외하고 외야 전체가 요동쳤다. 이형종, 이천웅, 채은성의 외야 3인방은 부상과 부진에 시달렸다. 이형종은 시즌 중반 부상에서 돌아와 맹활약했지만, 이천웅, 채은성은 끝까지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다. 다행히 지난 시즌의 부진을 지우는 김현수의 대활약과 홍창기의 등장으로 큰 타격은 없었다.

이번 시즌 타선에서 외국인 타자 라모스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계약 당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차선책이라는 의심을 받았지만 시즌 초반부터 놀라운 홈런 페이스를 뽐냈다. LG 역대 홈런 기록을 세우는 등, 그토록 갈망했던 외인 거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뽐냈다. 특히 시즌 초반에는 극적인 홈런으로 수차례의 역전승을 이끌었다. 잔부상도 있었지만 그간의 외국인 타자를 생각하면 눈감을 수 있었다.

 

시즌의 화두 ‘아쉬운 역전패’

이번 시즌 LG의 화두는 충격적인 역전패였다. 대첩으로 불릴 만한 5점차 이상 대역전패가 6번이었다. 불펜의 질이 나빴던 것은 아니다. LG는 이번 시즌 불펜 평균자책점 2위를 기록했다. 불펜 WPA도 리그에서 유일하게 양수를 기록했다. 그렇기 때문에 벤치의 대응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흔들리는 투수를 마운드에 오래 방치한다는 지적이었다. 물론 투수교체는 대개 결론적이기에 역전패를 온전히 벤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결국 남는 것은 결과다. 그것이 불운이었든, 기용 실패였든 간에 반복된 대역전패는 그 자체로 아쉬웠다.

굳이 운영에서 아쉬움을 찾는다면, 시즌 초반 가용할 불펜 자원을 확보하지 못했단 점이다. 이상규를 제외하고, 새 얼굴 중 위기상황에 지속적인 기회를 받은 투수가 없었다. 고우석이 부상으로 이탈하고 이상규가 무너진 후, 사실상 필승조는 정우영, 진해수가 도맡았다. 좌타라면 진해수가, 큰 위기라면 정우영이 올라왔다. 그렇게 2이닝~3이닝씩 던지다 무너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시즌 막판 ‘패동열’의 껍질을 깬 최동환이 필승조로 힘을 보탰지만 늦은 감이 있었다.

정우영 멀티이닝->정우영의 사사구->불펜 붕괴, 이번 시즌은 유독 데자뷔가 많았다.

 

결정적 순간도 역전패, 10월 28일 한화전 5회

10월 28일 한화와의 경기, LG는 3회와 4회 대거 6점을 뽑아내며 승기를 잡았다. 이기면 2위를 수성할 수 있었다. 시즌 최종전이 하루 휴식 후 열리는 것을 감안하면 총력전을 불사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5회, 6회 LG는 곧바로 6점을 내주고 만다. 벤치는 선발 임찬규가 110구를 던지며 4실점을 할 때까지 마운드에서 내리지 않았다. 같은 시간 기아가 KT를 상대로 리드하고 있었음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아쉬운 결정이었다. LG는 경기 막판 고우석의 3이닝 투구로 승부수를 뒀지만, 돌아온 것은 1점차 패배였다. 사실상 이 경기로 LG는 2위 싸움의 주도권을 내줬다.

 

핵심 선수- 센터라인 3인

신성, 홍창기

겨우내 질롱 코리아에서 맹활약한 홍창기는 시즌 초반 기회를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일단 기회가 주어지면, 신들린 듯한 출루 능력을 발휘했다. 타율은 저조했지만 4할이 넘는 출루율을 꾸준히 유지했다. 이천웅이 부상을 당해 이탈한 시점, 홍창기는 타율까지 끌어올리며 리드오프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시즌 끝까지 순항한 홍창기는 리그 중견수 WAR 2위, 출루율 6위, BB% 2위에 오르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공격에 비해 아쉬웠던 수비도 경기를 거듭할수록 급격히 개선됐다. 시즌 초반 미숙했던 타구판단은 시즌 막판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여기에 경기 후반에는 외야 전 포지션을 소화하며 엔트리 운용에 유동성까지 더했다.

대체불가, 오지환

지난 겨울 오지환은 FA로 4년 40억의 계약을 맺었다. 이번 시즌 오지환의 활약은 돈값을 한참 상회했다. 공수에서 맹활약하며, 대체불가의 면모를 확실히 했다. 뛰어났던 수비력엔 완숙함까지 더하며 경지에 올라선 모습을 보였다. 공격에서도 wRC+ 120을 기록하며, 16년 이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그간 지독하게 따라다니던 ‘타율 낮은 선수’라는 인식도 데뷔 첫 3할 타율과 함께 날려버렸다.

금강불괴, 유강남

유강남은 프레이밍에 강점을 가진 포수다. 이번 시즌엔 여기에 더해, 약점이던 블로킹 능력까지 극적으로 개선했다. 9이닝당 폭투/포일 비율인 PASS/9은 0.392로 리그 4위를 기록했고, 바운드당 블로킹률은 1위로 올라섰다. 도루 저지가 아쉽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는 상대 주자들이 윌슨, 정우영 등 주축 투수의 느린 투구폼을 적극적으로 파고든 탓이 크다.

다만 공격에서는 아쉬웠다. 2년 연속 120에 가깝던 wRC+가 리그 평균인 100 수준까지 떨어졌다. 포지션 특성상 충분히 좋은 기록이나, 유강남이 공격에서 강점을 보여온 포수인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성적이다. 변명거리를 찾는다면 포수 최다 이닝을 소화했단 점이다. 이번 시즌 유강남은 포수 1000이닝을 돌파한 유일한 선수다. 코로나로 인한 빡빡한 경기일정을 감안하면 체력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내년 시즌의 키, 그리고 대권 도전

박용택은 시즌 시작과 함께 팬들이 우승을 꿈꾼 가장 큰 이유였다. 수많은 기록을 남긴 그의 손에, 반지 하나가 남지 못했다.

팬들은 그가 우승 없는 마지막 프랜차이즈이기를 바란다.

최종 성적 4위, 류중일 감독 재임 3년의 마지막 해가 다소 허무하게 마감됐다. 그래도 지난 3년, 과정이야 어쨌건 야수진은 짜임새를 갖췄다. 외야진은 3년 연속 WAR 1위을 기록했고, 주전 선수의 부상에 대비할 수 있는 뎁스도 풍부해졌다. 시즌 막판에는 신민재까지 깜짝 활약하며, 대주자를 넘어 외야 백업 자원으로 올라섰다.

내야도 준수하다. 유격수 오지환은 커리어 내내 리그에서 가장 꾸준한 선수다. 3루수 김민성은 공수에서 안정적이고, 2루수 정주현은 공격력은 부족하지만 수비력은 탄탄하다. 김민성의 부상이 잦아지는 것은 걱정거리지만 양석환, 손호영, 장준원 같은 백업 자원도 버티고 있다. 라모스와 재계약에 성공한다는 가정 하에 공수에서 계산이 선다.

선발진 구축은 남은 숙제다. 먼저 윌슨을 대신할 외인 투수의 성공 여부가 중요하다. 대권을 노리기 위해선, 최소 켈리 수준의 투수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3선발이 필요하다. 이번 시즌 3선발은 정찬헌과 이민호가 번갈아 맡았다. 그러나 10일 로테이션은 선수가 등록일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전략이다. 이번 시즌의 10일 로테이션은 부상에서 복귀한 정찬헌과 19세 신인 이민호의 특수성이 만든 단발성 전략에 가깝다. 결국 내년엔 LG도 5인 로테이션을 돌 수 있는 5명의 선발 투수가 필요하다. 차우찬의 부상으로 3선발 자원이 불투명한 가운데, 키는 이민호가 잡고 있다. 내년 시즌 이민호의 성장 여부가 LG의 향방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류지현 감독에게 주어진 계약 기간은 2년이다. 보통의 국내 감독 계약이 3년이라는 점에서 2년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는 주축 선수의 나이를 고려한 결정일 가능성이 높다. LG는 유망주로 구성된 팀이 아닌, 주선 선수 대부분이 전성기에 접어든 팀이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이들의 전성기가 끝나기 전에 승부를 내야 한다. 따라서 향후 2~3년간은 적극적으로 대권 도전을 이어나갈 가능성이 높다. 류지현 감독은 LG의 찬란했던 영광부터 길었던 무관의 시기까지 모두 함께했다. 류지현 감독이 자신에게 주어진 구슬을 꿰어 가장 빛나는 팀을 만들 수 있을까? 바로 내년부터 그 도전이 시작된다.

 

야구공작소 이승호 칼럼니스트

에디터=야구공작소 나상인

일러스트=야구공작소 송인호

기록 출처=스탯티즈

사진 출처=LG 트윈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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