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20시즌 리뷰] 두산 베어스 – 한끗 차이로 놓친 미라클

시즌 성적 – 79승 61패 4무(정규 3위, 최종 2위)

두산 베어스의 2020시즌은 준우승으로 마무리됐다. 지난 6년 가운데 가장 힘겹고 극적인 과정을 거쳐 6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또 한 번의 미라클을 이뤄냈으나, 미라클의 완성에는 단 2승이 모자랐다. 그럼에도 KBO 리그 역대 3번째로 이뤄낸 6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의 대업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드라마 같은 2019시즌을 보낸 두산은 김태형 감독과의 재계약으로 2020시즌 스토브리그를 시작했다. 역대 KBO 감독 최고 규모(3년 총액 28억 원) 계약으로, 지난 5년간 3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을 차지한 김태형 사단의 기조를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겼다. 외국인 타자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 내부 FA 오재원과의 재계약으로 집안 단속에도 나섰다. 리그 MVP 조쉬 린드블럼이 메이저리그로 갔지만, 새로 영입한 크리스 플렉센과 라울 알칸타라 모두 나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에 많은 전문가들이 두산의 연패를 점쳤다.

 

대반전을 이뤄낸 마운드, 그 중심에 선 ‘뉴 페이스’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기대와 달리, 시즌 초반 두산은 선두권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6월 30일, 시즌의 33%를 소화한 시점에서 성적은 28승 20패로 리그 3위. 1위 NC와의 격차는 4.5게임이었다. 타선은 해당 기간 득점 2위로 제 몫을 해냈으나, 마운드가 무너졌다. 해당 기간(5~6월) 평균자책점은 5.19로 리그 8위. 불펜의 집단 부진이 먼저 시작됐다. 5월 한 달간 두산 불펜의 평균자책점은 7.58로 리그 9위였다. 특히 마무리 이형범은 5월 한 달간 8이닝 12실점으로 최악의 부진 끝에 2군으로 내려갔다. 연이어 6월에는 선발진마저 평균자책점 5.13(리그 8위)을 기록하며 부진했다. 이용찬(ERA 8.44)은 극도의 부진 끝에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했고, 지난해 17승을 거둔 이영하(5~6월 ERA 6.29) 또한 끝없는 부진에 시달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산이 선택한 돌파구는 트레이드였다. 이승진과 홍건희를 잇달아 영입하며 마운드 보강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주전급 백업 이흥련-류지혁을 내주며 팬들의 질타도 받았지만, 두 투수 모두 실력으로 질타를 찬사로 바꿨다. 홍건희는 이적 직후부터 뛰어난 활약(이적 후 56.2이닝 ERA 4.76)으로 함덕주와 함께 전반기 필승조를 지탱했고, 미래를 내다본 영입이라던 이승진도 9월부터 필승조에 합류했다(불펜 30이닝 ERA 4.50). 김태형 감독은 이번 시즌을 돌아보며 두 선수 덕분에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었다고 극찬했다.

 

2020시즌 두산 베어스 주요 투수 성적

이처럼 올 시즌 두산 마운드의 키워드는 ‘이 없으면 잇몸으로’ 정신이었다. 불펜에선 지난해와 비교해 최고 WAR을 기록한 5명의 선수 가운데 4명이 바뀌었다(2019년 윤명준 최원준 이형범 김승회 함덕주/2020년 이영하 박치국 함덕주 홍건희 이승진). 선발진에선 최원준(선발 93이닝 ERA 3.29)이 이용찬의 공백을 완벽히 메웠다. 최원준은 김태형 감독이 꼽은 올 시즌 MVP다. 전반기에는 롱릴리프로, 후반기에는 선발로 활약하며 동료들의 부상과 부진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마운드의 버팀목이 됐다. 이와 같은 잇몸들의 활약으로 7월 이후 두산 마운드는 평균자책점 3.98(리그 1위)을 기록했다. 시즌 전 기대와는 달리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가진 못했으나, 기존 자원의 부진과 부상이 겹치는 상황에서 새로운 얼굴의 활약으로 버틴 것은 두산표 화수분의 위력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김태형 감독의 선택과는 별개로 올 시즌 두산 마운드의 MVP를 뽑는다면 라울 알칸타라. 알칸타라는 WAR 8.3을 기록하며 2020시즌 KBO 리그 전체 1위에 올랐다. 린드블럼에 이어 또 한 번의 ‘두산표 재활용’ 대성공 사례가 나왔다. 박세혁, 정상호 등을 필두로 한 포수진과 함께 지난 시즌 약점으로 지적받은 변화구를 가다듬었고, 이용찬과 코치진에게 배운 포크볼은 쏠쏠한 3번째 구종으로 자리 잡았다. 평균 구속 151.6km/h의 포심 구사율을 대폭 늘린 것 또한 효과를 봤다(2019년 33%→ 2020년 51%).

 

뛰어났지만, 두산이기에 아쉬웠던 타선

2020시즌 두산 베어스 주요 야수 성적

시즌 초반 부침을 겪은 마운드와는 달리, 두산의 타선은 비교적 꾸준했다. 9월을 제외하곤 매달 팀득점 4위 이상을 기록했으며, 최종 성적 역시 팀득점 2위, wRC+ 1위였다. 그런데도 올 시즌 두산의 타선은 2%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김태형 감독은 “전체적인 타선 짜임새가 없다. 타율은 1위인데, 전체적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무게감은 없다. 특히 장타가 예전에 비하면 부족하다고 느낀다”라는 말로 어딘가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시작됐던 두산의 장타 부재는 올해도 이어졌다. 두산의 장타율은 2016~2018년 1위에서 2019~2020년 4위로, 홈런은 2위에서 8위로 추락했다. 타팀이 보기엔 배부른 소리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두산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을 법 했다.

 

올 시즌 두산이 가장 큰 위기를 겪었던 9월에도 타선의 침묵이 있었다. 두산은 해당 기간 11승 13패 1무로 유일하게 월간 승률 5할을 넘기지 못했고, 6년 만에 후반기 6위를 기록하는 수모를 겪었다. 9월 한 달간 득점은 리그 9위. 타격에는 사이클이 있다곤 하지만, 두산이 월간 득점에서 9위를 기록한 것은 2014년 9월 이후 6년 만이었다. 그만큼 올 시즌 두산 타선은 예년과 비교했을 때 어딘가 아쉬운 느낌을 줬다.

 

올 시즌 두산 타선의 MVP는 최주환과 페르난데스. 두 선수는 타격감의 기복을 겪은 동료들 사이에서 꾸준히 자기 몫을 해냈다. 이들은 올 시즌 두산에서 매달 OPS 0.760 이상을 기록한 유이한 존재였다. 또한 두 선수는 별다른 부상 없이 시즌을 소화하며 각각 140경기, 144경기에 출전했다. 특히 최주환은 시즌 초반 오재일, 허경민, 김재호, 오재원 등 내야 핵심 자원들이 잇따른 부상으로 자리를 비울 때 유격수를 제외한 내야 전포지션을 차례로 소화하며 내야의 구멍을 메웠다.

 

포스트시즌- 10월부터 시작된 미라클, 아쉬웠던 한끗 차이

두산 베어스를 상징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는 ‘미라클’이다. 그만큼 지난 몇 년간 두산은 수많은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냈고, 특히 가을에 강팀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올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6위로 10월을 맞은 두산은 10월 마지막 날 정규 시즌이 마무리됐을 때 3위에 위치했다. 10월 한 달간 성적은 16승 7패로 압도적 1위. 월간 득점은 2위, ERA는 1위로 완벽한 투타 균형을 보여줬다. 특히 역대 가장 치열했던 2~5위 싸움의 최종 결말이 걸린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키움 히어로즈를 2-0으로 누르며 가을야구 베테랑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두산과 상대팀의 포스트시즌 기록

포스트시즌에서도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LG 트윈스, KT 위즈와 정규 시즌에서 보여준 전력은 비슷했으나(*피타고리안 기대 승률 두산 0.580, LG 0.572, KT 0.564), 포스트시즌 경험의 차이는 거대했다. 김재호, 허경민, 오재원 등 두산의 백전노장들은 KT와 LG 선수단 사이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포스트시즌에 대한 여유와 자신감을 뿜어냈다. 사실 포스트시즌 기간 두산의 팀타율은 0.229로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으나(정규 시즌 0.293) 수비, 주루, 작전 등 세밀한 부분에서 우위를 점하며 가을야구 백전노장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피타고리안 기대 승률: 득점과 실점을 통해 승률을 예측하는 지표.

 

그러나 결국 한국시리즈에선 타선의 끝없는 침묵을 이겨내지 못했다. 한국시리즈 6경기 동안 두산의 타율은 0.219, 득점은 17점. 4차전부터 6차전까지 25이닝 연속 무득점으로 역대 포스트시즌 최다 기록의 불명예도 안게 됐다. 우승을 내준 6차전에서 1~5회 동안 4번의 득점권 찬스를 모두 놓친 것은 두산 타선의 포스트시즌 침묵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결국 두산은 6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대업을 완성한 무대에서 다소 허무하게 우승을 내주었다. 그렇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즌에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온 게 소득이다. 선수들에게 고맙고 박수 보내주고 싶다”라는 김태형 감독의 말처럼, 두산의 2020시즌 ‘라스트 댄스’는 박수 받기 마땅했다.

 

두산의 포스트시즌 MVP는 단연 크리스 플렉센. 플렉센이 포스트시즌에서 남긴 기록은 5경기 2승 1패 1세이브 28.1이닝 32탈삼진 ERA 1.90으로, 32개 탈삼진은 역대 단일 포스트시즌 2위 기록이었다(1위 1984년 최동원 35개). ‘가을의 전설’로 불리기에도 충분했으나, 두산의 준우승으로 빛이 바랬다. 플렉센은 정규 시즌 이전 타 구단 감독들이 뽑은 경계 1순위 외국인 투수로 꼽히며 기대를 모았으나, 7월 타구에 맞는 부상으로 2달간 자리를 비우며 아쉬움을 남겼다. 부상 이전에도 6~7월 6경기에서 ERA 5.06으로 다소 부진했는데, 당시 김태형 감독은 멘탈 문제를 원인으로 꼽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러나 플렉센은 부상 이후 본인이 어떤 투수인지 유감없이 보여줬다. 부상 복귀 이후 정규 시즌에서 52.2이닝 ERA 2.05를 기록한데 이어, 포스트시즌에서도 대활약했다. 이제 플렉센은 메이저리그의 관심을 받는 투수가 됐다. 플렉센을 포함해 외국인 선수 3명 모두와 재계약 방침을 세운 두산의 2021시즌 스토브리그도 시작됐다.

 

두산의 2021시즌 스토브리그, 대규모 엑소더스의 시작?

두산의 주전 야수진. 이들 가운데 내년에도 두산에서 보게 될 선수는 몇 명일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번 겨울은 두산에게 가장 잔인한 계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코치진, FA, 외국인 선수까지 대규모 엑소더스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이미 올 시즌 1군을 이끌던 코치 4명이 타 구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전 내야수 4명을 포함한 7명의 주전급 선수가 FA 시장에 나왔으며, 모기업 두산의 자금난을 고려하면 FA 선수들의 잔류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올 시즌 가장 높은 WAR을 합작했던 외국인 선수 3명 가운데 플렉센은 메이저리그, 알칸타라는 일본프로야구로 떠났다. 이번 겨울 두산이 FA 및 외국인 선수들을 얼마나 많이 지키는지, 만약 지키지 못한다면 얼마나 적당한 대체 자원을 구해내는지가 두산 왕조의 지속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2020시즌 두산 베어스 유망주 성적

마운드는 그나마 미래 사정이 괜찮다. 앞서 언급한 최원준(26)-이승진(25)-홍건희(28) 모두 3~4년은 힘을 보탤 수 있는 젊은 자원이며, 이외에도 올 시즌 두산은 김민규-채지선-박종기와 같은 젊은 보석을 발견했다. 특히 김민규는 포스트시즌에서 12이닝 1실점이라는 경이로운 활약으로 야구팬들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올 시즌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확실히 자리잡지 못한 이영하(23)와 함덕주(25)가 어느 보직이든 간에 마운드의 중심을 확실히 잡아줘야 한다. 문제는 야수진인데, 마운드에 비해 마땅한 젊은 자원이 없다. 올 시즌 두산 주전 야수 9명의 타석 소화 비율은 84%로 리그 1위였는데, 이 가운데 6명의 선수가 내년 거취를 알 수 없다(FA 5명, 외국인 1명). 특히 주전 내야수 4명이 모두 FA 자격을 얻은 가운데, 타격에서 검증된 백업 자원이 없다는 게 큰 걱정거리다.

 

과거 6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의 대업을 이루며 왕조의 칭호를 받았던 SK와 삼성은 이후 상당한 후유증을 겪었다. SK는 한국시리즈 복귀까지 6년의 세월이 걸렸으며, 삼성은 5년째 포스트시즌에도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과연 두산은 이들과 다른 모습으로 7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뤄낼 수 있을까. 왕조의 종말이 다가올지, 또 한 번의 미라클이 일어날지, 두산의 2021시즌을 지켜보자.

 

야구공작소 당주원 칼럼니스트

에디터=야구공작소 이상평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홍영준

사진 출처=두산 베어스

기록 출처=스탯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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