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이대호 vs 15박병호

Q) 많은 사람들이 KBO의 연도별 wRC+ 지표를 다른 연도의 선수들을 비교하는 데 이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5년 박병호와 2010년 이대호를 비교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KBO리그는 리그의 최고 인재가 항상 유출되어 왔다는 리그 환경의 특수성으로 인해(90-00년대 일본, 10년대 미국), 매 시즌 리그의 환경이 크게 바뀌어 표본이 바뀌게 됩니다. 따라서 저는 리그 평균에 대한 표준편차 성적인 wRC+, ERA+를 토대로 다른 연도의 선수들을 비교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야구공작소에서 이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칼럼으로 다루어 주셨으면 합니다.

 

A) 얼마 전 한 독자께서 이런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바를 말씀하시면서 ‘검증’을 원하는, 주장이기도 하면서 질문이기도 한 내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다른 시기에 뛴 선수의 성적을 비교하는 데 있어서 wRC+, ERA+라는 지표를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복잡한 야구 기록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wRC+, ERA+가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행여 그렇지 못한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이 두 기록은 메시지를 보내주신 분이 설명하신 대로 ‘리그 평균에 대한 표준편차 기반 성적’입니다. wRC+는 타자 관련 기록, ERA+는 투수 관련 기록이고요.

저는 수능 표준 점수에 빗대어 설명하곤 합니다. wRC+와 ERA+ 모두 100이 평균, 100점보다 높으면 평균 이상입니다. 예를 들어 리그 ERA가 4.00이라면, ERA가 2.00인 선수의 ERA+는 200이 됩니다. wRC+도 비슷합니다.

이 지표의 장점은 한 시즌에서 어떤 선수가 남들보다 얼마나 잘하고 못했는지 파악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환경이 바뀌어도 쉽게 남들과 비교할 수 있다는 것도 또 다른 장점입니다. 같은 3.00의 ERA라도 저득점 투고타저 환경에선 평범하게 보일 수 있지만, 다득점 타고투저 환경이라면 높게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ERA 대신 ERA+를 참조하면 이렇게 환경에 따라 달라진 리그 내 위치를 좀 더 편하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다시 수능 비유를 가져오자면 ‘불수능’과 ‘물수능’에서 원점수 90점의 가치는 달라지지만, 표준점수 200점은 언제나 매우 대단한 성취인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단점이나 주의점이 없는 기록은 없습니다. 독자분이 보내주신 메시지에 담긴 것처럼, 리그 환경이 요동친다면 같은 wRC+, ERA+ 기록도 다르게 봐야 하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가 가능합니다.

예컨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전설로 꼽히는 베이브 루스는 1920년 wRC+ 239를 기록했습니다. 현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마이크 트라웃은 2018년 190을 기록한 게 최고 기록입니다. 그럼 루스가 트라웃보다 타격 실력이 더 뛰어난 선수일까요? 절대적인 실력을 놓고 보면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100년 동안 야구 기술이 발전했고, 선수들의 훈련 방식도 더욱 체계적으로 진화했으니까요.

한데 이건 매우 극단적인 예시입니다. 루스와 트라웃 사이에는 100년의 차이가 있지만, 독자분이 예시로 든 2010년의 이대호와 2015년의 박병호 사이에는 겨우 5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스탯티즈 기준으로 2010년 이대호의 wRC+는 192.4였고 2015년 박병호의 기록은 181.9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2010년 이대호가 2015년 박병호보다 좋은 성적을 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독자분은 wRC+로 다른 시즌의 선수 성적을 비교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하셨으니, 아마도 이런 주장을 반박하고자 하셨겠지요.

독자분은 KBO리그에서 수시로 최고 수준의 인재가 타 리그로 유출되기 때문에 매년 ‘다른 환경’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게 KBO리그의 고유한 여건, 고유한 환경일까요? 메이저리그에서도 매년 수준급 선수가 부상으로, 개인 사정으로 리그에서 이탈하곤 합니다.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로 많은 선수가 시즌을 포기하는 ‘옵트 아웃’을 택했습니다. 비단 메이저리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프로 스포츠 리그가 마찬가지로 리그 구성원의 변동을 매년 겪습니다.

선수 이름만 바뀌는 게 아닙니다. 선수들의 실력도 일정하지 않습니다. 비시즌에 훈련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갑작스럽게 부진에 빠지는 선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실력이 떨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렇게 보면 선수 실력의 변화, 구성원의 변화에 따른 전체적인 수준의 변화는 비단 KBO리그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닙니다. 수준 변화의 폭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숫자로 나타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시즌의 성적을 비교할 때 ‘환경의 차이’는 매우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전제입니다. 올해 기록한 30홈런과 내년 기록한 30홈런의 가치가 같을 것이란 법은 없습니다. 다만 큰 변화가 있지 않은 한, 어느 정도는 비슷한 가치가 있을 겁니다. 모든 기록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타율 3할’, ‘평균자책점 2점대’ 같은 기준이 전통적으로 뛰어난 선수의 증거로 남을 수 있던 것이고요.

2010년과 2015년, 5년 사이 KBO리그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구단이 2개 늘어났습니다. 정규시즌 경기 수는 11경기 늘어났습니다. 외국인 선수 정원이 3명이 됐습니다. 류현진이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5년 동안 바뀌지 않은 것도 있었습니다. 김현수는 5년 내내 좋은 타자였습니다. 부침이 있었지만, 김광현은 2010년과 2015년 모두 좋은 성적을 냈죠. 뛰어난 선수가 빠진 자리는 다른 뛰어난 선수가 차지했습니다. 류현진은 없지만, 니퍼트가 있었습니다.

혹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10개 구단으로 외연이 넓어졌지만 그만큼 선수 수준이 떨어졌다고요. 일견 맞는 말입니다. 전에는 1군에서 못 뛰던 선수들이 1군 경기를 뛰게 됐으니까요.

그런데 문의하신 wRC+, ERA+ 같은 ‘표준점수’로 그 비교를 한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여기서 야구와 수능의 차이가 생깁니다. 100명이 있던 집단에 하위권 수준 20명이 추가됐다고 해봅시다. 수능이었다면 평균 점수는 내려갈 것이고, 상위권 학생들의 표준점수는 저절로 상승했을 겁니다. 그런데 야구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원래 있던 선수들이 모두 새로 들어온 선수들을 상대하거든요. 쉽게 말해 전체적으로 기존 집단의 성적이 뻥튀기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나성범 같은 선수를 상대한다면 성적이 오히려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존 집단의 ‘표준 점수’가 무조건 높아진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런 변화는 매년 점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그 차이를 정량화하기 어렵습니다. 분명 작년의 180점과 올해 190점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을 거라는 건 알겠는데, 그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 알아내긴 쉽지 않습니다. 다른 기간의 기록을 비교할 때는 절대적인 수준에선 언제나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 10이라는 차이가 과연 그렇게 유의미한 차이인가 하는 점입니다.

다시 wRC+ 숫자로 돌아가 봅시다. 2010년의 이대호는 190, 2015년의 박병호는 180, 그러니까 2010년 이대호가 2015년 박병호보다 우월하다. 이렇게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애매한 얘기입니다. 맞은 절반은 ‘2010년 이대호의 wRC+ 값이 2015년 박병호의 그것보다 높았다’는 담백한 사실 그 자체입니다. 애매한 절반은 ‘2010년 이대호가 2015년 박병호보다 우월하다’는 가치 평가입니다.

사실 애매하다기보다는 모르겠다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만약 2010년으로 돌아가서 이대호가 20경기를 더 뛰었는데, 정말 재수가 나빠서 20경기에서 타율 1할에 그쳤고 wRC+가 170까지 떨어졌다고 해봅시다. 그럼 우리는 이대호의 ‘능력치’가 190이 아닌 170이라고 해석해야 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 한들 10번 중 7번은 안타를 치지 못하는 게 야구입니다. 능력치가 190인데 별다른 이유 없이 ‘정말 재수가 없어서’ 그냥 저렇게 못 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버스나 지하철이 4분 뒤에 온다고 안내가 나와도 정확하게 4분 뒤에 도착하는 것은 아닙니다. 월요일 통근시간이라면 좀 더 늦을 수도 있는 거고, 버스는 비가 와서 늦어질 수도 있겠죠. 하차하는 사람이 덤벙대는 바람에 늦어질 수도 있고요. 4분이라는 예측은 말 그대로 예측일 뿐, 정확하게 1분 1초의 오차도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유가 없는 상황이면 모를까, 대개 1분 안팎의 오차는 ‘그럴 수도 있지’ 정도로 받아들이고 넘기게 되어 있죠.

야구 기록도 마찬가지입니다. 190이라는 숫자가 나온 것은 선수의 능력치가 190 근처 어딘가에 있다는 뜻일 뿐 항상 190만큼의 결과가 나온다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능력치라는 표현도 조심스럽습니다). 혹시 모르죠, 이대호에겐 운이 따랐고 박병호에게는 운이 따르지 않은 걸지 말입니다. 그래서 사실 두 선수의 ‘절대적인 실력’은 근소하게 박병호가 앞섰는데, 실제 결과는 반대로 나온 걸지 누가 알겠습니까? 다만 180, 190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온 만큼 두 선수 모두 리그 최상위권의 실력을 갖췄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 정도 기록은 한 시즌에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나올까 말까 합니다.

여기서 10의 차이가 절대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걸까요? 손에 꼽을 만한 재능을 가진 선수가 1년 차이로 wRC+ 값이 170에서 180으로, 190에서 180으로 바뀐다고 해서 실력이 크게 요동쳤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2013년의 트라웃과 2018년의 트라웃의 존재감을 두고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하는 사람은 없겠죠. 그 5년 사이에 투수들의 구속은 하늘을 찔렀고, 홈런은 펑펑 늘어났으며, 트라웃의 wRC+ 값은 14만큼 올랐지만 말입니다. 트라웃은 트라웃이고, 위대한 선수는 위대한 선수일 뿐입니다. 숫자 10의 차이가 위대한 시즌의 품격을 크게 좌우하진 않습니다. 친구와 이야깃거리 삼기에는 좋겠지만 말입니다. 저는 무의미한 비교일 뿐이니 신경 쓰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야구공작소 박기태 칼럼니스트

에디터=김준업, 송인호

일러스트=홍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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