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히트노런 달성 이후에는 부진하다?

유네스키 마야 노히트노런 시상식 당시 모습

2010년대에 KBO에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투수는 4명이다. 그 영광의 주인공은 찰리 쉬렉(2014년), 유네스키 마야(2015년), 마이클 보우덴(2016년), 덱 맥과이어(2019년). 그런데 이들은 노히트노런 직후 등판에서 도합 15.2이닝 31자책 ERA 17.81이라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했다. 마야는 부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며 노히트노런 이후 불과 2달 만에 방출되기도 했다. 이처럼 투수들이 노히트노런 이후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일부 미디어들은 이를 ‘노히트노런 징크스‘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투수들이 노히트노런 이후로 부진하는 경향은 실제로 있었을까. 이를 검증하기 위해 필자는 ‘노히트노런 직후 경기, 노히트노런 이후 5경기, 해당 시즌 전체 경기’ 3가지 상황의 *게임 스코어를 조사했다.
*게임 스코어: 선발 투수의 개별 경기 퍼포먼스를 평가하는 지표. 소화 이닝, 실점, 자책점, 피안타, 탈삼진 등 투구 기록을 종합해 점수를 매긴다. 50점이 기본 점수이며, 그보다 높은 점수를 기록할수록 좋은 퍼포먼스를 보인 것이다. 해당 글에서는 빌 제임스의 버전을 사용했다.

KBO 정규 시즌 노히트노런 기준

*가중 평균: 경기 수를 고려해 각각의 가중치를 곱하여 구한 평균값. 예를 들어 1984년 방수원의 선발 등판 횟수는 14번, 1986년 김정행은 18번이었다. 이 경우 두 투수의 시즌 전체 게임 스코어 가중 평균은 (50*14+55*18)/(14+18)=52.8점이 된다.


KBO에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14명의 투수는 직후 등판에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시즌 전체 게임 스코어와 비교하면 7점가량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다만 최근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4명의 투수가 워낙 부진했는데, 이들을 제외한 노히트노런 직후 경기의 게임 스코어는 57점으로 시즌 전체 게임 스코어(55점)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2002년 이후 MLB 정규 시즌 노히트노런 기준

표본이 좀 더 많은 MLB에서는 어땠을까. 2002년 이후 나온 42번의 노히트노런 이후 게임 스코어를 조사한 결과, 노히트노런 이후 경기와 해당 시즌 간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KBO와 MLB의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KBO에서 최근에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투수들이 직후 등판에서 유독 부진한 모습을 보였을 뿐, 전체적으로 보면 노히트노런 징크스는 없었다. 최근 KBO에서 부진했던 4명의 투수들도 직후 등판에서만 부진했을 뿐, 이후 5경기로 범위를 넓히면 시즌 성적과 비슷했다. 노히트노런 이후 2달 만에 방출된 마야, 3달 만에 방출된 맥과이어는 그냥 성적이 안 좋아서 방출된 것이지, 노히트노런 여파로 부진해서 방출된 것이 아니었다.

과다한 투구수는 다음 등판에 악영향을 끼칠까?

주제를 조금만 틀어보자. 실제 사례를 조사한 결과 노히트노런 징크스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그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필자는 그 원인을 과다한 투구수로 생각했다. 대부분의 노히트노런 경기에서는 한계점 이상의 투구수가 기록되고, 이로 인해 투수의 체력이 소진돼 다음 등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9월 KT 위즈 윌리엄 쿠에바스가 완투에 1아웃을 남겨둔 상황에서 투구수 118개를 기록하고 교체됐을 때, 이강철 감독은 마야가 노히트노런 당시 120개 이상의 투구수를 기록했음을 언급했다.

그렇다면 투수들이 과다한 투구수를 기록한 이후로 부진하는 경향은 실제로 있었을까. 필자는 노히트노런과 마찬가지로 직후 경기, 이후 5경기, 시즌 전체 경기 3가지 상황의 게임 스코어를 조사했다.

2002년 이후 MLB 정규 시즌 기준

2002년 이후 MLB 데이터를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투구수 130개까지는 다음 등판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 투구수가 130개를 넘었을 때는 약간의 영향이 있었으나, 그 차이가 크진 않았다.

그렇다면 등판 간격에 따라 나눠 조사한 결과는 어땠을까. 혹시 과다한 투구수가 다음 등판에 영향을 주지 않았던 원인이, 감독이 그만큼 휴식일을 부여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2002년 이후 MLB 정규 시즌 기준. 투구수 120개 초과 기준

조사 결과, 우선 MLB 감독들은 많은 투구수에 따른 추가 휴식일을 부여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투구수 120개를 넘긴 직후 경기의 등판 간격이 7일 이상이었던 경우는 540번 가운데 44번(8.1%)에 불과했다. 이처럼 추가 휴식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과다한 투구수는 여전히 다음 등판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등판 간격이 7일 이상으로 길어진 직후 경기에서 약간의 영향이 있었다.

야구 중계를 보다 보면, 선발 투수가 경기 후반부까지 노히터를 이어갈 때 감독의 표정이 복잡미묘한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감독의 심정을 짐작해보면, 본인 팀 투수가 대기록에 도전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혹시라도 그로 인해 무리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 것이다. 지난 9월 삼성 라이온즈 벤 라이블리가 7회까지 노히터를 기록했을 때, 허삼영 감독은 투구수가 108개였던 점을 고려해 교체를 결정했다. 당시 허삼영 감독은 과욕을 부리다 몸에 무리가 갈 수 있음을 언급했다. 그런데 통계를 살펴본 결과 투수가 노히트노런을 해서, 혹은 과다한 투구수를 기록해서 다음 등판에 악영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몸에 무리가 가는 것과 다음 등판에서 부진하는 것은 조금은 결이 다른 이야기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허삼영 감독의 판단에 더 마음이 쏠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선수 보호’가 감독의 매우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비록 통계는 다음 등판에 악영향이 없다고 말하지만, 필자의 경우에는 무리한 투구수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 입장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과다한 투구수가 누적된다면 투수 몸에 무리가 가겠지만, 노히트노런 같은 대기록에 도전할 때 한 번쯤은 눈감아 줄 수도 있는 법이다. 또한 투수 개인에게는 평생 한 번 맞이하기 어려운 기회이기 때문에, 그 기회를 끝까지 맡김으로써 투수의 사기 진작과 충성심을 얻을 수도 있다.

이처럼 감독은 선발 투수의 교체 여부 하나를 결정할 때도 수많은 근거를 고려해야 한다. 다음 등판에 악영향은 없을지, 부상 위험은 없을지, 투수 사기에 악영향은 없을지 등 고려 사항은 수없이 많다. 노히트노런과 과다한 투구수가 다음 등판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통계는 판단 근거 가운데 하나는 되겠지만, 판단 근거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여러분이 허삼영 감독과 같은 상황에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필자는 투수가 간절히 원한다면 끝까지 맡길 것이고, 아니라면 교체할 것이다.


야구공작소 당주원 칼럼니스트

에디터=야구공작소 장원영, 홍기훈
사진 출처= instagram.com/goldmackerel/
기록 출처=스탯티즈, Baseball savant, Fangrap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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