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포토 단장의 위험한 스토브 리그

[야구공작소 오상진] ‘스토브 리그’는 정규시즌이 끝난 겨울철에 야구팬들끼리 난로(stove) 주위에 모여 선수의 계약, 이적 소식 등을 이야기 한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야구 경기가 없는 기간 동안 구단은 미래를 위해 시즌보다 더 바쁘게 움직인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전해지는 많은 소식들은 야구팬들에게 일종의 ‘땔감’이 되어 추운 겨울을 뜨겁게 달구는 역할을 한다.

구단은 대개 ‘윈나우(win now)’ 혹은 ‘리빌딩(rebuilding)’이나 ‘리툴링(retooling)’ 등 목표에 맞춰 스토브 리그를 보내기 때문에 선수 이동이 많은 시즌이 있고 큰 변화 없이 겨울을 보내는 시즌도 있다. 2015년 9월 제리 디포토가 신임 단장으로 부임한 시애틀 매리너스는 최근 2번의 스토브 리그에서 어느 팀보다도 뜨거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쉴 새 없이 전해지는 트레이드 소식은 ‘난로’를 넘어 ‘사우나’ 수준으로 팬들을 후끈하게 만들고 있다.

디포토 단장은 시애틀 부임 후 올해 1월 11일(이하 현지 시간)까지 무려 35건의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이는 애초 방향을 리빌딩으로 잡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23건)보다 12건이나 많고 A.J. 프렐러 단장(그는 이틀간 5건의 트레이드를 성사시켜 ‘매드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이 이끄는 샌디에이고 파드레스(19건)의 약 2배에 달하는 파격적인 행보다. 아직 스토브 리그가 끝나지 않은 가운데 시애틀은 올 겨울에도 이미 11차례의 트레이드를 완료했다. 여기에 FA 계약과 마이너 계약까지 포함하면 약 2달 사이에 트레이드 상대팀 포함 30명이 넘는 선수가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2016시즌 ‘보이는 단점만 가리기’ 전략, 그 결과는?

유망주를 내주고 즉시 전력감인 선수를 데려오곤 하는 디포토 단장의 행보를 살펴보면 시애틀의 방향성은 ‘윈나우(win now)’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의 성적이나 이름값을 보면 시애틀이 월드시리즈 우승은커녕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도 목표를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이런 의구심이 생기는 이유는 시애틀의 영입 전략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선수단의 퍼즐을 맞춰나가기보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단점만 급하게 메우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입한 선수들은 확실하게 팀에 도움이 된다는 느낌보다 적당한 선에 맞춰서 선택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2015시즌 시애틀은 76승 86패(승률 0.469)로 아메리칸리그(AL) 서부지구 4위에 머물렀다. AL 팀타율(0.249), 득점(656개) 모두 13위를 기록한 빈약한 공격력의 가장 큰 책임은 포수와 1루수 포지션에 있었다.

2015시즌 시애틀에는 타율 2할이 넘는 포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최고 타율(0.174)의 주인공 마이크 주니노는 11개의 홈런을 때려냈지만 타점은 겨우 28점이었고 나머지 포수 4명은 1홈런 10타점을 합작하는데 그쳤다.

1루수 역시 크게 다를 바 없었다. 2015시즌 146경기에 출전한 로건 모리슨은 0.225/0.302/0.383의 형편없는 타격 슬래시라인으로 규정타석을 채운 1루수 20명 중 19위에 해당하는 -0.2의 fWAR를 기록했다. 특히 좌투수를 상대로 큰 약점을 드러내며 팀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좌투수 상대 0.190/0.253/0.246, 0홈런).

디포토 단장은 시애틀에서 맞은 첫 스토브 리그에서 포수 크리스 아이아네타와 FA계약(1년 420만 달러)을 맺었고 스티브 클레빈저를 백업 포수로 트레이드 영입했다. 그러나 2016시즌 아이아네타와 클레빈저는 각각 fWAR 0.9, -0.2로 디포토 단장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특히 AL 홈런왕 마크 트럼보의 반대 급부로 데려온 클레빈저는 부상으로 시즌을 거의 소화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인종차별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며 여러모로 팀에 폐를 끼쳤다. (오히려 트리플A에서 절치부심하고 돌아온 주니노가 55경기에서 12홈런 31타점 fWAR 1.2로 포수 중 가장 좋은 모습을 보였다.)

1루에는 3명의 유망주를 내주고 애덤 린드를 영입했다. 또 좌투수에게 약한 애덤 린드의 플래툰 상대로 이대호를 선정, 스플릿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1루수 전력 보강 역시 썩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애덤 린드는 20홈런을 기록했지만 좌투수(0.240)보다 오히려 우투수(0.239)를 상대로 낮은 타율을 기록하며 기대에 어긋나는 모습을 보였다. 플래툰 파트너 이대호 역시 전반기(0.288/0.330/0.514, 12홈런)에 비해 후반기(0.200/0.287/0.296, 2홈런) 성적이 크게 떨어지며 체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두 선수의 기록을 합하면 전년도에 비해 홈런(34개)과 타점(107개)은 늘었지만 wRC+와 fWAR는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결국 2016시즌 1루수 성적도 이전 시즌에 비해 크게 나아지지 않은 셈이다.

2015시즌 경기 후반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불펜 역시 디포토의 수술 대상이었다. 방화범이 된 마무리 페르난도 로드니(16세이브 6블론 평균자책점 5.68)와 나름대로 선방했던 셋업맨 카슨 스미스(13세이브 5블론 평균자책점 2.31)를 내보내고 불펜의 판을 새롭게 짰다.

결과적으로 불펜에선 패가 줄고 승수가 늘었으며 평균자책점과 fWAR에서 더 좋은 결과를 냈다. 하지만 디포토가 데려온 불펜 투수들은 아쉽게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1000만 달러(2년 계약)를 투자한 스티브 시섹(25세이브 7블론 ERA 2.81)은 로드니보다 1개 더 많은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며 마무리 자리를 22살의 신인 에드윈 디아즈에게 넘겨줬고, 샌디에이고에서 데리고 온 닉 빈센트(3세이브 6블론 ERA 3.73)도 여름에 부상과 부진이 겹쳐 아쉬운 시즌을 보냈다

 

2017시즌에도 계속되는 디포토의 영입 전략

이러한 방식의 트레이드는 결과적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달콤한 과실을 맺지 못했다. 나름 긍정적인 점은 와일드카드를 놓고 끝까지 경쟁을 펼치며 1년 전에 비해 10승을 추가(86승 76패 승률 0.531), 시애틀을 지구 2위에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이에 부족함을 느껴서일까. 시애틀은 2016시즌 후 스토브 리그가 열리자마자 또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아쉬움을 남겼던 포수와 1루수를 비롯해 여러 포지션에서 선수 이적과 영입 소식이 들려왔다.

※ 2016-17 스토브 리그 주요 이적 현황

IN : 카를로스 루이즈(C), 대니 발렌시아(1B), 진 세구라(SS), 제로드 다이슨(OF), 요바니 가야르도(RHP), 드류 스마일리(LHP), 마크 젭친스키(LHP) 등
OUT : 케텔 마르테(SS), 세스 스미스(OF), 네이선 칸스(RHP), 비달 누뇨 (LHP) 등

2016시즌을 마친 시애틀의 가장 큰 약점은 ‘유격수’였다. 브래드 밀러(2016시즌 30홈런)가 떠난 시애틀의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하며 2016년 풀타임 첫 시즌을 치른 케텔 마르테는 기대했던 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0.259/0.287/0.323, AL 유격수 중 최다실책 21개). 이에 디포토 단장은 이제 풀타임 첫 시즌을 치렀고 나이가 어려(올해 23세) 성장가능성이 큼에도 불구하고 마르테를 과감하게 트레이드해 버렸다. 팀의 에이스로 성장할 잠재력을 지닌 우투수 타이후안 워커까지 애리조나로 보내며 진 세구라를 데려온 것이다. 세구라는 지난해 타율 0.319 20홈런 64타점 33도루를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142경기를 2루수로 뛰었기 때문에 다시 유격수로 돌아갔을 때 어떠한 성적을 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외에도 부족했던 기동력(팀 도루 50개, AL 12위)과 수비(외야수 DRS -27 / UZR -16.2, AL 12위)를 보강하기 위해 영입한 제로드 다이슨은 최근 5시즌 동안 매년 25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했지만 주로 백업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풀타임 주전으로서의 능력에는 물음표가 붙어있다. 선발진 보강 차원에서 데려온 요바니 가야르도는 지난해 어깨부상으로 데뷔 후 최악의 성적(6승 8패 ERA 5.42)을 기록했다는 점이 불안요소다. 물론 모든 트레이드는 뚜껑을 열어봐야 결과를 알 수 있지만 다이슨과 바꾼 네이선 칸스는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투수였고 가야르도와 트레이드한 세스 스미스는 장타를 기대할 수 있는 외야수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디포토가 지나간 자리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트레이드가 팀의 미래를 담보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1시즌 개막을 앞둔 시점에서 LA 에인절스는 베이스볼 아메리카(BA)가 선정한 팜 랭킹 순위 15위에 올라있었다. 2011년 10월, 43세의 젊은 단장 디포토가 부임한 뒤 에인절스의 팜 랭킹은 19위로 떨어졌고 이후 3시즌 동안은 바닥을 벗어나지 못했다.

시애틀에서도 디포토 단장은 팀 내 최고 유망주 10명 가운데 8명을 다른 팀으로 떠나 보냈다. 물론 시애틀의 팜 랭킹은 디포토 단장의 부임 전 25위로 그다지 높지는 않았지만 메마른 땅이었던 시애틀 팜이 이제는 거의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사막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2015시즌 개막 전 시애틀 유망주 TOP 10 *BA 기준>

  1. 알렉스 잭슨(OF): 애틀랜타로 트레이드
  2. D.J. 페터슨(3B)
  3. 케텔 마르테(SS): 애리조나로 트레이드
  4. 패트릭 키블리한(1B/3B): 텍사스로 트레이드(*현재 신시내티)
  5. 오스틴 윌슨(OF): 룰-5 드래프트 세인트루이스 이적
  6. 에드윈 디아즈(RHP)
  7. 가비 게레로(OF): 애리조나로 트레이드(*현재 신시내티)
  8. 루이스 고하라(RHP): 애틀랜타로 트레이드
  9. 라이언 야브로(LHP) 탬파베이로 트레이드
  10. 카슨 스미스(RHP):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지난해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한 시카고 컵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선수단 운영 방식은 지금의 시애틀과 궤를 달리 한다. 두 팀은 팜에서 육성한 유망주들이 팀의 핵심으로 자리잡으면서 탄탄한 전력이 갖춰졌고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최종목표에 도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었던 것도 트레이드 카드로 쓸 수 있는 유망주들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2019년까지 매년 5000만 달러에 가까운 연봉을 두 선수(로빈슨 카노, 펠릭스 에르난데스)에게 지불해야 하는 시애틀이 갑자기 리빌딩으로 노선을 바꾸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컵스, 인디언스와의 단순비교도 위험할 수 있으며 디포토 단장도 현 상황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당장 포스트시즌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팀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를 내주는 방법을 고수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른다. 매년 스토브 리그가 돌아오는 것처럼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미래에도 시애틀은 야구를 계속 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출처 : Baseball America, Baseball-Reference, Fangraphs, MLB.com

 

※ 이 글은 ‘엠스플뉴스’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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