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선수들이 무관중 경기에 반대하는 이유

확산되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스포츠 세계는 ‘비상’

[야구공작소 나상인] 야구계가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이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3월 13일(이하한국시간)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시범경기 중단과 개막 연기를 선언했다. 파업이 아닌 이유로 개막이 연기된 것은 150년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이다(전쟁의 여파로 단축된 1919시즌은 평년보다 며칠 늦게 개막하긴 했다). 메이저리그에 앞서 KBO와 NPB 또한 개막 연기를 발표한 바 있다. 바야흐로 ‘야구 없는 3월’이다.

야구뿐만이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의 스포츠가 ‘일시정지’했다. 미국의 4대 프로스포츠 리그(MLB, NBA, NHL, NFL)가 중단되거나 개막을 연기했고, EPL과 프리메라리가 등 유럽의 5대 축구 리그도 진행 불가를 선언했다. 한국 역시 축구, 농구, 배구 등 사실상 모든 프로스포츠가 중단된 상태이다. 급기야 올림픽이 연기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전 세계에 걸쳐 5천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이 전염병 때문에 스포츠가 중단된 이유를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스포츠 경기장엔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수만 명의 관중이 운집한다. 그들은 수십cm 간격으로 붙어 앉고, 침을 튀기며 응원가를 부른다. 흥분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옆 사람과 손바닥을 부딪치거나 서로 얼싸안기도 한다. 경기장에 모인 사람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있다면 그곳이 전염병의 온상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팀 앤더슨의 일갈 ‘무관중 경기는 지루하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렇다면 관중 없이 경기를 진행하면 되지 않는가? 실제로 호주 A리그(축구)와 UFC(격투기) 등은 무관중 방침을 정하고 경기를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결정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비판의 논지는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관중 없이 진행한다고 해도 스포츠 경기에는 선수, 코치진, 심판 등 많은 인력이 동원되므로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관중 없이 하는 경기는 진정한 프로스포츠가 아니라는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비교적 상식적인 얘기이고, 스포츠 팬의 입장에서 보다 흥미로운 것은 두 번째 이유이다. 프로스포츠와 관중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팀 앤더슨(시카고 화이트삭스)은 MLB의 개막 연기가 결정되기 며칠 전,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팬들에게서 에너지를 얻는다. 팬들이 없는 경기는 지루할 것’이라며 관중 없이 시즌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종목은 다르지만 르브론 제임스(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역시 ‘내가 농구경기에 출전하는 이유는 팬들 때문’이라고 말하며 무관중 경기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팬의 입장에서 야구장 ‘직관’은 TV중계를 보는 것으론 얻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 준다. 상대팀 강타선에 외로이 맞서 싸우는 에이스를 위해 응원의 함성을 지르고, 역전 홈런을 친 신인 타자의 이름을 연호하고, 같은 팀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옆에 앉은 낯선 이와 유대감을 갖게 되는 일들.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런 작은 경험들을 소중히 여기기에 빈 야구장에서 시즌을 시작하는 것을 가능한 한 피하고 싶어 한다. 특히 메이저리그는 다른 프로스포츠에 비해 지역 기반 성격이 강해 직관을 원하는 로컬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무관중 경기 결정이 쉽지 않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맞아, 프로스포츠로서의 야구에 대해 관중이 가지는 의미를 고찰해 보았다.


세계 최초의 프로 스포츠, 야구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프로스포츠는 존재하지 않았다. 스포츠는 유희 또는 오락으로 여겨졌을 뿐, 그것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야구는 미국 여러 곳에서 소일거리로 행해지다 1840년대에 규칙이 정립되고 스포츠로써의 면모를 갖추게 된 종목이다. 야구는 유럽의 테니스, 크리켓에 맞서 내세울 국민 경기가 필요했던 신흥 국가의 사정과 맞아떨어지면서 미국 전역에 빠르게 보급되었다. 야구는 침착함, 자립심, 공격성, 남자다움 등 ‘미국 정신’의 정수를 담고 있는 스포츠로 여겨졌다. 그러나 야구는 그 자체로는 어떠한 부가가치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공놀이에 불과하다. 따라서 야구가 프로스포츠로 발돋움하는 데는 자신의 돈을 내고 경기를 관람할 의사가 있는 대중의 존재가 필수적이었다.

1858년 뉴욕과 브루클린(당시에는 서로 다른 도시였다) 사이에 열린 야구 경기에서 처음으로 입장료가 부과되었다. 6년 뒤에는 A.J. 리치가 뉴욕에서 필라델피아로 이적하면서 최초로 구단과 프로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1871년에는 전미프로야구선수협회가 창립되면서 아홉 개의 팀이 리그의 짜임새를 갖추고 시즌을 치르게 되었다. 바야흐로 프로스포츠 시대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당시에는 텔레비전이 없었으므로 야구장에 직접 가서 경기를 보는 것만이 야구를 즐기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광고 역시 없었음은 물론이다(구장 내 광고판은 1900년대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등장했다). 따라서 텔레비전 중계권료, 광고수입 등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현재에 비해 구단들의 수입원이 제한적이었다. 선수들이 받는 봉급은 곧 관객들이 낸 입장료였다. 관중의 존재는 프로 스포츠의 본질 그 자체였던 것이다.


무관중 경기의 역사

2015년 4월 29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홈구장 캠든야즈에서는 아주 특별한 경기가 펼쳐졌다. 이 날의 경기가 특별했던 이유는 메이저리그 145년 역사상 최초의 무관중 경기였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경기가 치러진 날로부터 열흘 전 볼티모어에서 일어난 사건이 있었다. 불법으로 칼을 소지한 혐의로 체포됐던 흑인 청년이 경찰의 과잉 진압에 따른 부상으로 사망한 것이다. 이후에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진행됐고, MLB 사무국은 야구장에서 팬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태라 판단했다. 결국 월말에 캠든야즈에서 열리기로 예정돼 있던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3연전 중 2경기가 취소됐고, 한 경기는 관중 없이 진행하는 특단의 조치가 내려졌다.

KBO는 1982년에 출범한 이후 시범경기, 정규시즌을 통틀어서 무관중 경기를 치른 적이 한 번도 없다. 1999년 10월 7일 전주야구장에서 현대 유니콘스와 쌍방울 레이더스 간에 열린 경기가 역대 최소관중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이 날 경기에는 오직 54명의 관중만이 참석했다. 한편 2002년 롯데 자이언츠의 암흑기 시절 사직야구장에서도 두 자릿수 관중의  ‘거의 무관중’ 경기가 두 차례 치러졌다. NPB(일본프로야구) 역시 무관중 경기가 열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빈 야구장에서 시범경기를 진행하다가 사태가 악화되자 이마저도 중단하기로 했다.

가장 오래된 프로스포츠이자 한 시즌에 팀당 100경기 이상을 치르는 야구에 무관중 경기 사례가 이토록 적다는 사실은 관중이 단순한 ‘구경꾼’을 넘어 야구 경기의 일부분임을 보여준다. 분야는 다르지만 야구와 관중의 관계는 음악 콘서트와 청중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청중이 없는 콘서트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가.


관중이 야구 경기에 미치는 영향

관중은 야구 경기의 내용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2013년 NL 와일드카드전에서 자니 쿠에토가 글러브에 들어있던 공을 떨어뜨린 사건을 기억하는가(사건 직후에 쿠에토는 러셀 마틴에게 홈런을 허용했다). 호세 바티스타의 배트플립으로 유명한 2015년 AL 디비전시리즈에서 텍사스 레인저스 내야진이 3연속 실책을 저지른 일은? (러셀 마틴은 이때에도 실책으로 출루에 성공했다) 선수들에게 압박감을 안겨준 관중이 없었다면 이 사건들은 아마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2010년에 E. Smith와 J. Groetzinger이 진행한 ‘MLB 게임의 결과에 관중 수가 미치는 영향’이라는 연구에 따르면 관중 수와 홈팀의 득점은 통계적으로 강한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관중 없이 하는 야구는 관중으로 가득 찬 경기장에서 하는 야구와 완전히 다른 종목인 것이다.

보다 직접적으로 경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팬들도 있다. 스탠드 너머로 팔을 뻗어 공을 잡으려 한 관중 때문에 홈런성 타구가 인정 2루타로, 아웃이 될 타구가 장타로 둔갑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2003년 시카고 컵스와 플로리다 말린스가 맞붙은 NL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스티브 바트만이라는 팬은 파울볼을 잡기 위해 팔을 뻗었다가 펜스 근처에서 점프한 컵스 좌익수와 부딪혔다. 그 사건을 기점으로 흐름을 빼앗긴 컵스는 경기와 시리즈에서 역전패했고, 바트만은 순식간에 ‘염소의 저주’의 화신이 되어 시카고 시민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기에 이른다. 전후 사정을 살폈을 때 컵스의 패배가 오로지 바트만의 잘못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관중과 선수의 접촉은 엄연히 프로야구 경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역할, 그리고 다가오는 결정의 순간 

스포츠는 공동체의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해준다. 20여년 전 외환위기 때 박세리와 박찬호의 선전 소식은 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 2017년 허리케인 하비로 큰 피해를 입었던 휴스턴의 시민들은 ‘휴스턴 스트롱’을 외친 애스트로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사인훔치기 논란은 잠시 넘어가자).

그러나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위 예시들과는 형편이 전혀 다르다. 스포츠가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는커녕,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선 ‘하나로 뭉치는 행위’ 자체를 하면 안 되는 상황이다. 스포츠는 우리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주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따라서 생명을 위협하는 전염병의 대유행 사태 속에서 스포츠의 존립 기반은 약화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16일(한국시간) 향후 8주간 50명 이상의 모임 및 행사를 진행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전몰장병 기념일(5월 25일) 즈음까지 개막을 미루는 방안을 논의 중이지만, 현지에서는 6월까지도 정상적인 스포츠 행사가 열리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되면 162경기의 정규시즌 일정을 모두 소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진다. 결국 사태가 이른 시일에 진정되지 않는다면, 빈 경기장에서 시즌을 시작하는 특단의 조치가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 현재로선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각별히 주의하면서 추이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에디터=야구공작소 오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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