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판 ‘스토브리그’ 데이터 분석원이 되려면

드라마 ‘스토브리그’ 속 백영수의 캐릭터를 통해 프로야구단 데이터 분석원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백영수는 야구선수 출신이지만 ‘로빈슨’이 드림즈에 채용되기까지는 ‘야구도 안 해 본 놈’이란 편견을 극복해야 했다.

똑같이 ‘야구도 안 해 본 놈’인 나도 모 구단의 데이터 분석원으로 채용된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백영수와 달리 고심 끝에 최종 입사를 포기했다.

이 글을 통해 내가 경험한 데이터 분석원 준비과정을 공유하고 싶다. 구체적인 근무환경이나 분위기를 논하기는 어렵지만, 프로야구단 채용 문턱을 넘기까지 얻은 정보와 느낀 점을 풀어보고자 한다. 오히려 입사를 포기했기에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 야구공작소도 흔적을 남기는 곳이다 >

흔적 남기기

무엇보다 중요하며 필수적이다. 블로그, 팟캐스트, 스터디, 공모전, 세미나 등 뭐라도 좋다. 꼭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특출난 활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어떤 형태든 간에 꾸준히 야구에 대해 고민했다는 흔적을 남기면 충분하다. 기간은 6개월 정도라도 좋다.

오히려 가장 추천하고 싶은 건 개인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이다. 내가 아는 10여 명의 전·현직 데이터 분석원 중 자기만의 글을 써 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드라마 ‘스토브리그’가 보여준 것처럼, 구단은 지원자가 쓴 글에 관심을 보인다. 야구에 대한 지원자의 생각과 역량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은 지원자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야구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데이터로 풀어낼 수 있다면 이미 데이터 분석원의 소양을 갖춘 셈이다. 여기에 정기적으로 쓰는 성실함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다만 일일 소식 전달, 이슈 정리, 기록 나열 등 오직 성실성만 보여주는 글쓰기는 권하지 않는다. 글쓴이의 생각이 들어가지 않을 뿐더러, 들어간다 해도 단편적일 가능성이 크다. 한 달에 한 편을 쓰더라도 야구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려고 노력한 결과물이 좋다. 자기만의 논리와 분석이 들어가면 더 유리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사회인 야구나 직관 동아리 경험 등은 이목을 끌기 힘들다. 조직생활에 능하다는 식의 어필은 가능하겠지만, 야구에 대해 고민했음을 드러내기는 어렵다. 아무리 많은 사회인 경기를 뛰어도 그건 프로야구와 무관하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야구도 안 해 본 놈들’이다.


< 스탯티즈는 대표적인 기록 사이트다 >

데이터에 대한 이해

직함이 데이터 분석원인 이상 필수불가결하다. 통계와 데이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범위를 좁히면 야구 기록과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즉 야구를 데이터로, 데이터로 야구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추가로 데이터 분석 툴을 다룰 줄 알면 좋다. 구단은 트랙맨 데이터와 같이 일반인이 접할 수 없는 다양한 자료를 활용한다. 이에 데이터를 필요에 맞게 가공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요즘 널리 쓰이는 R이나 파이썬이면 더할 나위 없다.

따라서 통계학 전공자가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독학으로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학부 교양 수준의 통계지식과 엑셀 실력만 있다면 비전공자여도 좋다. 실제로 현직 데이터 분석원 중에는 가정교육과 출신도 있다. 학문적 지식보다 야구 데이터 자체를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

다만 이는 기계적으로 야구 지식을 욱여넣는 것과는 다르다. 지난 시즌 홈런 순위를 외우고 다닐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wOBA 계산 공식을 암기할 필요도 없다. 각 기록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찾아서 활용할지만 알면 충분하다.

데이터에 대한 이해는 본인만 이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데이터 분석 결과로 현장과 소통하는 영역까지 포함한다. 데이터 분석원이라고 해서 일반적인 연구직 풍경을 상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영업사원에 가까운 활발한 성격과 자세가 요구된다고 한다.


< 작년 5월 NC 다이노스의 데이터 분석원 채용 공고 >

소소한 팁

첫째는 전공이다. 최근 여러 구단에서 낸 데이터 분석원 채용 공고를 보면 주로 통계학 전공자를 우대한다. 그 외에 우대하는 전공은 수학, 컴퓨터공학, 물리학 등이 있다. 여력이 된다면 관련 학과로의 복수 전공을 추천한다.

자신이 문과인데 학부에 통계학과가 없거나 자연계에 있어 부담된다면 상경계 복수 전공을 권한다. 물론 채용 공고에 필수요건으로 명시되지 않는 한 필수는 아니다. 전공의 불리함은 야구단이라는 특수성 덕분에 상기한 흔적 남기기와 독학으로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

둘째는 영어다. 구단은 이미 검증된 메이저리그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을 선호한다. 팬그래프, 드라이브라인 등에 올라오는 영문 칼럼을 읽고 유행도 함께 읽을 수 있으면 좋다.

비슷한 맥락에서 팬그래프, 베이스볼 서번트 등 메이저리그 관련 웹사이트에 익숙해질 것을 추천한다. 메이저리그 구단의 분석 시스템을 우리 프로야구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셋째는 네트워크다. 우리나라 모든 업계가 다 그렇지만, 프로야구 업계는 특히 더 좁다고 한다. 이에 스터디, 세미나 등 네트워크를 구축할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관계자들을 만나보는 것이 좋다.

좀처럼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면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관계자들에게 정중히 메일이나 메시지를 보내보는 것도 방법이다. 운이 좋다면 채용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채용 공고가 정기적으로 나지 않기 때문에 프로야구단 취업만 고집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 이런 삶과는 안녕이다 >

생각해 볼 점

위 내용은 어디까지나 프로야구단 데이터 분석원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확고한 경우를 전제로 한다. 그 열망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이런저런 이유로 흔들리게 된다.

프로야구단에서 원하는 통계, 프로그래밍, 영어 능력자에 소통 능력이 좋고 성격까지 활발한 사람은 사실 어느 필드에 가도 환영받는다. 이들이 프로야구단을 선택하는 것은 그저 야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로야구단 직원은 대부분 비슷한 스펙의 다른 직장인보다 낮은 대우를 받는다. 이는 메이저리그 구단 직원도 마찬가지다. 야구에 대한 열정을 빼고 연봉이나 워라밸을 위해 프로야구단을 지망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데이터 분석원을 꿈꾸기에 앞서 자신에게 야구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야구단에 입사하면 덕업일치를 이룬다는 기쁨이 가장 크겠지만, 그만큼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다. 무엇보다 맥주를 마시면서 편히 야구를 보는 삶과는 안녕이다.

내가 최종 입사를 포기한 이유는 단 하나다. 며칠간 출근하며 생각해 보니 예전만큼 야구를 좋아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떠올라 즐겁게 일할 자신도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데이터 분석원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했다.

다른 가치들을 포기할 만큼의 열정이 있는가? 그리고 그 열정이 지속될 것이라 확신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프로야구단 데이터 분석원을 꿈꾸는 이들을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


참고 = SBS, STATIZ, NC다이노스

에디터 = 야구공작소 배고재, 서주오, 이도삼, 오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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