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하이 패스트볼 피치 시퀀스 2편– 하이 패스트볼 다음에는 어떤 공을 던져야 할까

하이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조합을 즐겨 던지는 이재학 (사진=NC 다이노스 제공)

[야구공작소 이승호] 지난 칼럼에서(1편 링크)는 하이 패스트볼의 셋업 피치로 효과적인 구종과 그 코스에 대해 살펴봤다. 이번에는 하이 패스트볼 이후에 어떤 구종을 어떤 코스로 던졌을 때 가장 효과적이었는지를 알아볼 차례다.

참고로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데이터는 초구일 때의 결과를 제외한 값이다. 선행된 셋업 피치가 존재하는 경우의 결과만을 계산에 반영했다는 뜻이다.

하이 패스트볼 이후에는 헛스윙이 늘어났을까

우선 하이 패스트볼을 구사하고 나면 정말로 결정구의 효과가 커졌는지를 확인해보자. 먼저 전체 투구를 대상으로 구종별 헛스윙 비율을 계산한 다음, 이를 각 구종이 하이 패스트볼에 이어 구사됐을 때의 구종별 헛스윙 비율과 비교해봤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구종별 하이 패스트볼 이후 헛스윙 비율 변화

하이 패스트볼을 던진다고 해서 그 다음 공에 대한 스윙 결과가 극적으로 좋아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부분의 구종에서는 헛스윙 비율이 하락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커브와 포크볼에서는 3%P에 가까운 하락 폭이 관찰됐고, 슬라이더와 체인지업도 1%P 넘게 헛스윙 비율이 떨어졌다. 유일하게 헛스윙이 늘어난 구종은 투심이었다. 하이 패스트볼에 이어 들어갔을 때, 투심의 헛스윙 비율은 2%P 정도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면 코스까지 고려해서 봤을 때는 어떤 변화가 드러났을까.

구종·코스별 하이 패스트볼 이후 헛스윙 비율 변화

코스별로 살펴봐도 헛스윙 비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간간이 1%P 안팎의 차이가 나타날 뿐,이렇다 할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하지만 몇몇 구종에서는 양상이 조금 달랐다. 앞서 비교적 큰 변동 폭을 보여준 투심과 커브 그리고 포크볼의 경우, 코스별로 봤을 때도 헛스윙 비율이 크게 달라지는 지점들이 있었다.

구종과 코스를 모두 고려했을 때 하이 패스트볼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헛스윙 비율이 높아진 공은 스트라이크 존 중단 높이로 들어간 투심이었다. 이 공은 평상시에 비해 무려 4%P나 헛스윙 비율이 높아졌다. 흥미롭게도 가장 큰 폭으로 헛스윙 비율이 줄어든 공 역시 투심이었다. 하이 패스트볼 다음에 상단·최상단 코스로 들어간 투심은 평소보다 4%P가량 줄어든 헛스윙 비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포크볼의 경우에는 모든 코스에 걸쳐 헛스윙 비율이 줄어들었다. 특히 무릎 높이 이하의 하단 코스에서는 헛스윙 비율이 3%P나 줄어드는 모습이 관찰됐다. 커브도 마찬가지였다. 3%P가량이 하락한 중단 코스를 필두로 모든 코스에서 헛스윙이 줄어들었다. 나머지 구종은 코스별로 봐도 큰 차이가 없었다. 하이 패스트볼 이후라고 타자들의 배트가 꼭 쉽게 끌려 나오지는 않았던 셈이다.

하이 패스트볼을 셋업 피치로 던지면 헛스윙 비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예측은 이처럼 실제와는 차이가 있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구종에서는 헛스윙 비율이 줄어드는 경향마저 나타났다. 그럼에도 투수들이 하이 패스트볼을 셋업 피치로 즐겨 구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전 칼럼에서 헛스윙 비율은 상대의 타격 성적과 의외로 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던 바가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지 한번 살펴보자.

하이 패스트볼 이후의 타격 결과

하이 패스트볼 이후의 구종별 피안타율/피장타율

포심의 타격 결과는 하이 패스트볼 구사 이후에도 뚜렷하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변화를 보여준 구종들이 있었다. 투심의 경우에는 피안타율과 피장타율 모두가 큰 폭으로 뛰어올랐다. 헛스윙 비율은 높아졌지만, 타격이 이뤄졌을 시에는 훨씬 위협적인 타구를 허용했다는 뜻이다. 헛스윙 비율이 줄었던 커브는 타격 결과 측면에서도 좀처럼 하이 패스트볼의 덕을 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역시 피안타율과 피장타율 모두가 평상시보다 눈에 띄게 상승했다.

결과가 가장 좋아진 구종은 체인지업이었다. 지난 칼럼에서 살펴본 바로는 체인지업 이후에 하이 패스트볼을 구사했을 경우 대체로 결과가 좋지 못했는데, 반대로 하이 패스트볼 이후에 체인지업을 구사했을 경우에는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포크볼 역시 헛스윙 비율은 떨어졌지만 타격 시의 결과는 소폭이나마 개선된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코스까지 감안해서 타격 결과를 살펴볼 차례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지난 칼럼에서는 각 구종·코스의 투구에 이어 들어간 하이 패스트볼의 타격 결과를 다뤘기 때문에 코스별 인 플레이 비율이 대체로 비슷하게 형성됐다. 하지만 하이 패스트볼에 이어 들어간 투구의 타격 결과를 분석한 이번 칼럼에서는 인 플레이 비율이 코스별로 큰 편차를 보였다. 일례로 최상단 코스의 인 플레이 비율은 1%대에 불과했지만, 반대로 중단 코스의 인 플레이 비율은 30%가 넘는 수준이었다. 왜곡을 피하기 위해 인플레이 비율이 극도로 낮은 최상단과 최하단 코스를 제외한 나머지 코스의 타격 성적만을 놓고 살펴봤다.

구종·코스별 하이 패스트볼 이후 타격 성적 변화

포심의 경우에는 역시 별 차이가 없었다. 커브는 모든 코스에서 결과가 나빠졌다. 지난 칼럼에서는 ‘커브-하이 패스트볼’ 시퀀스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를 뒤집은 ‘하이 패스트볼-커브’ 시퀀스는 여러모로 결과가 좋지 않았다. 하이 패스트볼 이후 커브를 결정구로 삼는 선택은 코스를 불문하고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체인지업은 어느 코스에서나 좋은 결과를 보였다. 하이 패스트볼을 던진 뒤라면 어느 코스로 던지더라도 평상시보다 결과가 좋았다.

하이 패스트볼 다음에는 체인지업?

‘하이 패스트볼 이후 체인지업’이 유독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관해 몇 가지 가설을 고려해봤다.

1. 하이 패스트볼과 피치 터널

특정 구종과 하이 패스트볼을 조합했을 때 결과가 좋았다는 것은 두 구종이 유난히 구별하기 어렵게 들어온다는 뜻일 수 있다. 이러한 ‘피치 터널’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체인지업은 패스트볼과 비슷한 궤적을 그리다가 홈 플레이트 근처에서 구속 차이를 내며 떨어지는 구종이다. 이 과정에서 낮은 체인지업과 하이 패스트볼의 궤적이 절묘하게 피치 터널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두 구종의 타이밍 차를 고려하면, 타자가 두 구종을 뒤늦게 구분해낸다고 해도 이미 타이밍을 빼앗긴 상태라 정타를 만들지 못했다는 추측도 가능할 것이다.

다음은 지난 3년간 KBO리그에서 하이 패스트볼-체인지업 시퀀스를 가장 즐겨 사용한 이재학과 양현종의 투구 분포도다.

이재학과 양현종의 투구 분포도

두 선수의 투구 분포는 상당히 흡사하다. 포심은 높은 코스에, 체인지업은 낮은 코스에 주로 형성됐다. 이들 외에도 이번 시즌 체인지업으로 높은 구종 가치를 기록했던 투수들은 대체로 비슷한 형태의 투구 분포를 보였다. ‘하이 패스트볼-체인지업’ 시퀀스의 원리와 위력을 추측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다만 이 가설로는 체인지업 구사 시 헛스윙 비율이 줄어든 이유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피치 터널이 잘 형성됐다면 헛스윙 비율도 높아지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투구 순서만 반대로 뒤집은‘체인지업-하이 패스트볼’ 시퀀스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 역시 불분명하다.

2. 볼 카운트의 영향

볼 카운트의 문제도 고려해볼 법하다. 타자들의 타격 성적은 투수에게 유리한 볼 카운트에서 급격하게 나빠지기 마련이다. 만약 투수들이 체인지업을 유리한 카운트에서만 주로 투구했다면 그 여파로 지표가 개선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실제 양상은 달랐다. 유리한 카운트에서 체인지업 구사율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는 다른 변화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체인지업의 카운트별 구사율은 슬라이더와 커브, 포크볼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3. 타자들의 타격 타이밍

타자들이 기본적으로 빠른 공에 타이밍을 맞추고 타격에 임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일 수도 있다. 체인지업은 다른 구종들보다 ‘구속의 차이’에 초점을 맞춰 던지는 구종이다. 패스트볼 이후 체인지업의 위력이 한층 높아지는 것은 그저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포심을 아무 코스로나 구사한 다음 체인지업을 던져도 그 위력이 배가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포심 전체를 놓고 보면 이후에 들어간 체인지업의 위력은 평상시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셋업 피치가 하이 패스트볼이었을 때 유독 위력을 발휘했다는 얘기다. 단순히 타이밍 덕분만은 아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해봤지만 정확한 원인 하나를 끄집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다양한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모두의 정답이 아닌 각자의 시퀀스를 찾아야

지금까지의 연구는 KBO리그 투수 전원의 하이 패스트볼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낸 조합들을 몇 가지 발견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어느 투수에게나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결론은 아니다. 투수들의 구질과 궤적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결국 효과적인 시퀀스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투수 개개인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트래킹 기술’이 새로운 화두로 부상하면서 구단들도 트랙맨, 랩소도, 플라이트스코프 등의 다양한 투구 추적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피치 시퀀스는 이러한 기술 발전의 대표적인 수혜자 가운데 하나다. 새로운 데이터를 통해 구종 간의 효과적인 조합을 찾아낼 수 있다면, 투수의 성장과 발전에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부록1. 초구 하이 패스트볼

본문의 내용은 하이 패스트볼이 다른 구종과 시퀀스를 이룬 경우만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은 다른 구종과의 시퀀스 없이 초구에 하이 패스트볼을 구사했을 경우에는 어땠을까. 다음은 초구 하이 패스트볼이 기록한 성적이다.

초구 전체와 초구 하이 패스트볼의 기록 비교

초구 하이 패스트볼의 헛스윙 비율은 9.6%로 전체 하이 패스트볼의 헛스윙 비율에 비하면 다소 낮았다. 하지만 초구 전체의 헛스윙 비율과 비교하면 3%P나 높은 기록이었다. 타격 생산성 억제라는 측면에서도 준수한 성과를 거뒀다. 일반적인 초구에 비해 피안타율과 피장타율 모두 유의미하게 낮았고, 존 안에 형성된 하이 패스트볼로만 한정했을 때도 결과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초구 하이 패스트볼은 볼 카운트를 잡기 위한 선택으로도 나쁘지 않았다. 이들이 기록한 47.9%의 스트라이크 비율은 초구 전체의 스트라이크 비율(47.6%)과 비교해봐도 거의 동일한 수준이었다. 초구는 무조건 스트라이크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배터리가 아니라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정도의 수치다.

부록2

하이 패스트볼 구사 후의 구종·코스별 지표 변화 추이

에디터 = 야구공작소 오연우, 이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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