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19시즌 리뷰] AL 서부 – 답정너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선영)

[야구공작소 신하나]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는 시즌 시작 전부터 순위표가 어느 정도 그려지는 지구였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압도적인 전력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지구 2위급’ 전력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LA 에인절스가 매년 비슷한 성적에서 공전 중이고 텍사스 레인저스의 흐름이 2017년부터 꾸준히 좋지 못했다는 점, 여기에 시애틀 매리너스가 리빌딩을 선언해버렸다는 점에서도 시즌 이후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시애틀발 트레이드 폭풍과 연장계약 광풍

2019 메이저리그를 앞두고 가장 바쁘게 움직인 팀은 제리 디포토 단장이 이끄는 시애틀이었다. 디포토 단장은 일찌감치 포수 마이크 주니노를 탬파베이 레이스로, 좌완 에이스 제임스 팩스턴을 뉴욕 양키스로 보냈다. 대신 유망주들을 받아오는 한편 진 세구라와 로빈슨 카노 등 잔여 계약이 비싸게 남아 있는 선수들은 보다 낮은 수준의 계약들로 바꿔나갔다. 미래의 구단 페이롤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시애틀이 분전하는 사이 나머지 팀들은 FA 계약을 통한 선발 보강에 힘썼다. 휴스턴은 저스틴 벌랜더와 연장계약에 성공했고 지난 시즌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웨이드 마일리와는 단년 계약을 맺었다. 오클랜드는 지난 시즌 팀에 합류한 마이크 파이어스와 브렛 앤더슨을 묶어두는 동시에 마르코 에스트라다를 영입했다. 에인절스는 개럿 리차즈가 빠진 자리를 맷 하비로 메우고자 했다. 텍사스는 지난 시즌 양키스에서 반등한 랜스 린을, 시애틀은 포스팅 시스템으로 일본인 선수 유세이 기쿠치를 영입했다.

하지만 그 어떤 계약보다 뜨거웠던 딜은 현역 최고의 선수 마이크 트라웃의 연장계약이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 팬들은 에인절스와의 계약 종료 이후 트라웃이 그의 고향과 인접한 필리스에 합류하길 바랐지만, 트라웃은 에인절스를 선택했다. 12년간 총액 4억 3,000만 달러 규모의 초대형 계약이었다.

이외에도 홈런왕 크리스 데이비스가 오클랜드와, 옵트아웃 조항을 가지고 있던 저스틴 업튼이 에인절스와 연장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단꿈을 꾸었다

오클랜드와 시애틀은 도쿄돔에서 이번 시즌 개막전을 장식했다. 이 시리즈의 의미가 단순히 장소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본 야구의 전설이자 메이저리그의 전설인 이치로 스즈키의 고별 경기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배려로 일본 팬들이 보는 앞에서 메이저리그 은퇴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개막전에서 힘을 받은 덕분일까? 시즌 초반 시애틀은 리빌딩을 선언한 팀답지 않게 엄청난 기세를 탔다. 특히 제이 브루스, 에드윈 엔카나시온, 도밍고 산타나, 다니엘 보겔백 등이 연일 홈런을 쏘아 올리며 홈런 공장으로 거듭났다. 시애틀은 초반 17경기에서 13승 4패를 기록하며 지구 선두를 달렸고 4월이 끝날 때까지 지구 2위 자리를 지켰다.

5월부터는 텍사스가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이크 마이너와 FA로 팀에 합류한 린이 이끄는 선발 마운드가 굳건했고 잠재력을 폭발시킨 조이 갈로의 방망이는 식을 줄 몰랐다. 이에 텍사스는 6월 말 46승 38패를 기록하며 와일드카드 진출권을 따낼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기도 했다.

시애틀과 텍사스의 단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시애틀의 마운드가 연일 무너지는 가운데 디포토 단장의 확고한 리빌딩 의지로 초반 돌풍을 이끌던 홈런 타자들도 타 팀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텍사스는 갈로의 부상이라는 악재를 이겨내지 못했다. 부실한 팜에서 갈로의 빈자리를 메워줄 선수는 없었고, 장기계약 키스톤 콤비 엘비스 앤드러스와 루그네드 오도어의 방망이도 뜨거워지지 않았다.


무난한 순위 속 다사다난

시애틀, 텍사스를 제외한 팀들의 성적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전반기 종료 후 휴스턴, 오클랜드, 에인절스의 성적은 시즌이 시작하기 전 예상한 그대로였다. 다만 팀 내부적으로 몇몇 사건들이 있었다.

오클랜드는 시즌 초반 선수들의 부진 및 부상에 시달렸다. 주전 1루수 맷 올슨이 시즌 시작 전부터 부상으로 6주 결장했고, 빠른 콜업이 예상됐던 미래의 선발 에이스 헤수스 루자도 역시 어깨 부상을 입으면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말썽인 선수들은 홈런왕 크리스 데이비스와 마무리 투수 블레이크 트레이넨이었다. 특히 데이비스는 부상 복귀 후에도 타격감을 상실해 팀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오클랜드에는 이들의 부진을 만회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중견수 라몬 로리아노, 3루수 맷 채프먼과 부상에서 돌아온 올슨이 제 역할을 해줬다. 트레이넨의 부진을 틈타 마무리를 꿰찬 리암 헨드릭스의 활약은 발군이었다. 한때 팀으로부터 지명할당까지 당했던 선수의 기분 좋은 반전이었다.

에인절스는 시즌 중에 슬픈 소식을 접해야 했다. 팀의 미래를 책임질 선발로 꼽혔던 타일러 스캑스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것이다. 에인절스 선수들은 추모 경기로 열린 사고 이후 첫 홈 경기에서 ‘팀 노히터’라는 기록을 세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식으로 스캑스를 기렸다.

스캑스를 추모한 에인절스 선수들(출처 = MLB.com)


트레이드 데드라인 그리고 킹 펠릭스

휴스턴은 이번 트레이드 데드라인의 주인공이나 다름없었다. 유일한 약점으로 꼽혔던 ‘하위 선발 로테이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 휴스턴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최고의 선발투수 잭 그레인키를 영입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는 애런 산체스, 조 비아지니를 데려오며 월드시리즈 우승을 향한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트레이드 데드라인에서 텍사스의 행보는 아쉬움을 남겼다. 오클랜드, 시애틀, 에인절스와 달리 선수를 팔아야 하는 이유도, 팔 선수도 충분했지만 필요한 트레이드를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마이너는 타 팀으로의 이적설이 계속 불거졌음에도 팀에 잔류하고 말았다.

트레이드 데드라인 이후에는 휴스턴이 압도적인 지구 선두를 지키는 가운데 오클랜드가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분전을 펼쳤다. 막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여러 악재를 이겨내지 못하고 미끄러지면서 시즌 막판 와일드카드 진출권은 오클랜드에 돌아갔다. 하지만 오클랜드는 와일드카드 경기에서 탬파베이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쳐야 했다.

이 시기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킹’ 펠릭스 에르난데스였다. 그는 계속해서 현역 연장의 의사를 밝히고 있으나 이번 시즌을 끝으로 시애틀과의 계약이 종료된다. 최근의 성적과 팀의 리빌딩 기조를 고려하면 ‘원 클럽 맨’ 에르난데스의 자리가 시애틀의 남아 있을 가능성은 낮다. 구단과 팬들은 물론 본인도 이를 직감했는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경기에서 팬들은 에르난데스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고 그는 모자를 들어 화답하기도 했다.


터브만 같은 걸 끼얹나?

오클랜드가 떨어진 플레이오프 레이스에서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를 유일하게 대표한 휴스턴은 계속 전진했다. 아메리칸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오클랜드를 꺾고 올라온 탬파베이에 2:2까지 몰렸으나 최종 스코어는 3:2로 마무리했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을 가리는 ALCS 6차전에서는 간판타자 호세 알투베가 뉴욕 양키스의 마무리 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을 상대로 끝내기 2점 홈런을 치며 월드시리즈행 티켓을 따냈다.

월드시리즈에 오른 워싱턴 내셔널스와 휴스턴은 연일 명경기를 펼쳤다.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워싱턴이 4:3으로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휴스턴의 부단장 브랜드 터브먼이 가정폭력 혐의로 징계를 받은 로베르토 오수나에 대해 욕설 섞인 옹호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야구 외적으로 더 주목 받은 휴스턴은 결국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며 터브먼 부단장을 해고했다.


이변 없는 2020년?

이변이 없다면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의 내년 시즌은 올해와 같이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사이영상 후보인 게릿 콜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벌랜더와 그레인키가 휴스턴의 선발 로테이션을, 알렉스 브레그먼과 알투베가 타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오클랜드가 지구 선두를 위협하는 복병이 될 가능성이 있다. 시즌 후반 팀에 합류한 루자도와 또 다른 좌완 유망주 A.J. 퍽이 콜업돼 제 몫을 해줄 경우 유일한 약점인 선발 리테이션을 보강할 수 있어서다. 물론 이번 시즌 부진했던 데이비스의 반등도 필수적이다.

에인절스는 시즌 직후 브래드 어스머스 감독을 경질하고 전 시카고 컵스 감독인 조 매든을 선임했다. 이후 미키 캘러웨이 전 뉴욕 메츠 감독을 투수코치로, 컵스에서 매든과 함께했던 브라이언 버터필드를 3루코치로 영입했다. 빠르게 감독과 코치 인선을 끝낸 에인절스는 이제 선수들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구단주인 아트 모레노가 “내년 연봉 총액을 올리겠다”고 발언해 팬들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텍사스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이번 시즌 트레이드 데드라인에서 컨텐딩을 망설이다가 이미 한 번의 선수 판매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이제 마이너와 추신수 모두 계약 마지막 해에 접어들어 내년 시즌에 대한 결정을 빠르게 해야 한다. 텍사스의 빈약한 팜 상태를 고려하면 2020 시즌 우승에 도전할 경우 외부 FA 영입을 통한 연봉 불리기가 불가피하다.

시애틀이 에르난데스를 떠나 보내면 마지막 남은 고액 연봉자는 기쿠치와 카일 시거뿐이다. 그 중 공수 양면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fWAR 2.9를 기록한 시거는 시애틀의 선택지를 넓혀주게 됐다. 팀에 잔류를 해도, 다른 팀에 팔아도 좋은 카드가 됐기 때문이다. 올 시즌 시애틀이 유망주 팜을 잘 가꿨다는 점도 내년 성적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다만 모자챙에 ‘파인타르’를 발랐다는 의혹 이후 부진에 빠진 기쿠치가 반등할 수 있을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에디터 = 야구공작소 박효정
기록 출처: Fangraphs, M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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